[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대한민국의 B형 간염, 다 나았나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2026. 6. 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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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의식 못하는 사이
한국은 오랫동안 침몰했고
윤석열 정부 3년간
급격히 아래로 처박혔다
이재명 정부 1년간
아래로 처박히던
한국에 중대한 변곡점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붕괴 사태서 빠져나와
새로운 경로를 찾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중한 3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잃은 기회를
찾아내고 활용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병 가운데는 죽음에 이를 수 있지만 저절로 나아 자신이 앓은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병이 있다. B형 간염이 그러하다. 잘못 진행되면 간경화증을 거쳐 간암에 이르게 되지만, 감염된 성인들의 70% 이상이 자연 치유된다고 한다.

이는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윤석열 정권 3년과 2024년 말의 계엄 사태는 많은 이들이 윤석열 집단을 위시한 일부 인물들의 엽기적인 일탈 행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윤석열 정권 3년간 우리는 나라 전체가 붕괴할 위험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고 진단해야 한다. 이재명 정권이 출범한 지 꼭 1년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 3년간의 위기를 다시 복기해보아야 하며, 과연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 중병을 떨쳐버리고 완쾌되었는지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2010년대 말과 2020년대 초는 1990년대의 지구화와 거기에서 생겨난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격랑의 시기였다. 첫째, 1990년대에 마련된 미국 주도의 일극 세계 질서와 거기에서 나오는 자유무역과 ‘평화배당금’의 혜택이 미국과 중국의 대립 격화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둘째, 인공지능(AI)의 출현과 제조업의 위상 변화로 인해 기존의 산업 기술 패러다임이 근본적인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셋째, 선진 산업국 전체의 잠재성장률 저하가 나타나고 있었다. 넷째, 어느 나라라 할 것 없이 국내의 민주주의 질서가 극심한 혼란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정학적인 위치로 보나 국내 경제의 체질과 산업구조로 보나 대외적 환경에 극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으로서는 큰 경각심을 안고 사회 전체가 단결해 새로운 적응의 활로를 뚫고 나가야 할 비상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그 전 몇십년 동안 굳어져 있는 정치 경제 질서의 체질을 바꾸는 심기일전의 도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에서 윤석열 정권의 출범은 혁신과 적응은커녕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먼저 경제를 보자. 첫해인 2022년의 경제성장률은 2.6%로 선방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해 5월에 출범한 윤석열 정권에 그 공을 돌리기는 힘들다. 그다음 해인 2023년에는 잠재성장률 추정치에도 크게 미달하는 1.4%였다. 물론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때는 그 전에도 있었지만 이는 오일쇼크, 외환위기, 글로벌 경제위기, 팬데믹과 같은 특수 상황에 기인한 것이었으니, 평시에 이와 같은 일을 겪은 것은 사실상 초유의 사태이다.

그리고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시대착오적인 감세 정책에 돌릴 수밖에 없다. 이 당시는 반도체 순환 주기의 하락이 일부 겹쳐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이 필요한 때였으나,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대적인 감세 및 긴축 정책을 행했다. 액셀을 힘차게 밟아야 할 시점에 브레이크를 밟는 것도 모자라 사이드브레이크까지 걸어버린 셈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러면서도 재정은 파탄이 나버렸고, 2024년에 발생한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100조원을 넘어버렸다. 별다른 외부 요인이 없는데도 국가 스스로가 경제성장을 내리눌렀을 뿐만 아니라 나라 살림까지 파탄을 내버린 것이다.

윤석열 정권의 3년은 재앙

거시 지표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의 도래로 산업 기술의 대격변이 시작되고 나라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던 이 시기에 윤석열 정권은 무엇을 했던가? AI와 소프트웨어 연구 과제는 오히려 줄었고, 2024년에는 33년 만에 처음으로 연구 및 개발 예산이 삭감되어 대형 국책 과제가 감소하고 연구자들과 산업계가 어려움을 겪으며 위축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은 칩스법으로 인텔에 100억달러를 지원하고 일본도 소프트뱅크에 거대한 보조금을 지급한 반면, 한국의 세계 AI 거점연구소 조성 사업 예산은 연간 80억원뿐이었다. 특히 2024년은 AI 전환이 가장 절실했던 시점이었으나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을 연구·개발 예산 삭감으로 메운 셈이었고 그 직격탄을 AI와 첨단 기술 분야가 맞아야 했다. 그야말로 ‘골든타임’을 놓친 정도가 아니라 엉뚱한 방향으로 헛짓을 하고 만 셈이다.

외교 노선을 생각하면 더욱 아찔하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고 복잡한 지정학적 대립 구도가 출현하기 시작하던 그 시점에 윤석열 정권은 감세 정책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인 ‘가치외교’를 내걸고 전 세계를 돌며 천방지축의 위험한 행보를 보였다. 2024년 말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이 확인되자 윤석열은 북한군의 관여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우크라이나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한다면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언급했고, 이에 러시아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메드베데프 안보회의 부의장은 한국이 무기를 지원하면 러시아는 북한에 무기를 지원하겠다는 입장까지 내놓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방문한 시점에서는 이란을 ‘UAE의 적’이라고 표현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역사와 종교 등이 복잡하게 얽힌 중동 내 역학 구도에서 섣불리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는 한국 외교의 오랜 문법을 깨버리면서 한국과 이란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고, 이란은 한국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출에 반대하는 나라가 되어버렸다.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계엄 사태는 이러한 붕괴가 표면으로 드러나는 균열이 필연적으로 가져온 파국이었을 뿐이다. 서두에 이야기한 전환기, 총체적인 위기와 재적응의 시기는 집단 내 갈등을 신속히 해결하면서 의지의 총화와 가장 효율적인 해결책의 모색과 힘의 결집을 위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며, 이때야말로 정치가 결정적인 열쇠를 쥐는 때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오랜 진영 간의 대립으로 인해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국가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비토크라시’로 전락한 상태였다. 윤석열 정권은 이러한 막다른 골목의 상태에 처한 정치를 풀어내기는커녕 일방적인 거부권 행사와 의회를 우회하기 위한 행정명령 남발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과정과 절차의 최소한의 합리성과 신중함을 갖추어야 할 행정기구의 일부 상층은 그러한 소수 권력 집단의 전횡에 휘둘리는 정도가 아니라 부화뇌동하는 하수인이 되어버렸고, 국가기구의 마비에 가까운 상태를 만들어버렸다.

털 수 있는 건 털고 넘어가야

이러한 재앙에 가까운 정권이 5년 임기를 채웠다면 대한민국의 붕괴는 어디까지 계속되었을까. 많은 이들이 느끼듯 계엄 사태는 그 정권을 절반 정도로 끝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을 본다면 이는 우연적인 행운이 아니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윤석열 정권 그리고 나아가 그전 십몇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시스템 전체의 낙후와 기능부전이 누적되어 벌어진 필연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그 오랜 기간 동안 계속 침몰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3년간 급격히 아래로 처박혔던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진단이었을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큰 병을 앓았던 것이며, 그것이 각혈과 고름으로 터져나오면서 병의 진행에 일정한 전환점을 가져올 수 있었던 셈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되었다. 아무리 박하게 평가하는 이라고 해도 그렇게 아래로 처박히던 우리나라에 중대한 변곡점을 가져왔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후하게 평가하는 이라고 해도 그러한 붕괴 사태에서 우리나라가 완전히 빠져나와 새로운 경로를 찾아냈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던 그 소중한 3년의 시간 동안 우리가 놓치고 잃은 기회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찾아내고 또 활용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번주는 정부 출범 1주년이자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이제 국가 전체의 미래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일로 눈을 돌리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새로이 정비된 대한민국은 갈등과 분란만을 낳는 과거의 퇴행적인 문제들에 붙들려 있지 말고 털 수 있는 것들을 과감히 털고 넘어서야 한다. 이제는 미래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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