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라에서 꽃피우고 싶어요”

정문영 기자 2026. 6. 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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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찾아 한국 투어로 온 에리카 윤 스미스 인터뷰
IQT 준우승으로 올해 KLPGA 2부 드림 투어서 활약
“외할머니표 집밥이 힐링, 한식 중엔 감자탕이 최고”
美와 다른 잔디에 적응 중…“韓 선수 스윙에 큰 배움”
“올해 목표는 드림 투어 우승과 내년 정규 투어 입성”
최근 서울 강남 말본6451 도산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에리카 윤 스미스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한국은 늘 제 마음속에 있던 뿌리 같은 곳이었어요. 언젠가는 꼭 이곳에서 살아보고, 골프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한국계 미국인 골퍼 에리카 윤 스미스(25)는 최근 서울 강남 말본6451 도산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드디어 어머니의 역사이자 제 이야기이기도 한 한국에서 투어 생활을 하게 돼 기쁘다”며 이같이 말했다.

에리카 스미스는 올 시즌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드림(2부) 투어에 데뷔했다.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출신으로 2023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 엡손 투어에서 활약했다. 그런 그가 한국행을 선택한 것은 ‘뿌리’에 대한 인식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해 엡손 투어 시즌을 치르던 중 머릿속에 ‘어머니의 나라 한국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확신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에리카 스미스는 지난해 8월 태국에서 열린 KLPGA 투어 인터내셔널 퀄리파잉 토너먼트(IQT)에 출전해 준우승하면서 올해 드림 투어 시드를 확보했다. 그는 “시드를 따낸 순간은 마치 꿈만 같았다”면서 “두렵기도 하면서 동시에 정말 설레는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딸의 한국행이 확정되자 어머니는 물론, ‘딸 바보’ 미국인 아버지도 기꺼이 짐을 싸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청주 출신 어머니의 성을 따 중간 이름이 ‘윤(Yoon)’인 에리카 스미스는 몇 해 전 생일에는 한글로 ‘에리카’가 새겨진 목걸이를 스스로에게 선물했을 만큼 뿌리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그런 그가 이제 어머니의 나라에서 새로운 골프 인생을 꽃피우려 한다. 그는 “올해 한국 팬분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코스 안팎에서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에리카 윤 스미스가 최근 서울 강남 말본6451 도산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외할머니표 ‘K-집밥’ 먹으며 힐링...감자탕에 볶음밥은 필수”

에리카는 올 3월 말부터 청주의 외조부모 집에서 지내며 드림투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엡손 투어 시절 하루 10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하고 길게는 5개월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던 ‘떠돌이 삶’에 비하면, 경기 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한국 생활은 행복 그 자체다.

“미국에서 투어 생활할 때랑 정말 차이가 커요. 예전에는 계속 떠도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정감이 있어요. 그리고 외할머니가 해주는 집밥을 먹어서 음식 걱정은 전혀 없어요. 요즘엔 새로운 곳에 가면 맛집을 찾아다니는 취미도 생겼어요. 특히 한식 중에 감자탕을 정말 좋아하는데, 마지막에 밥을 볶아 먹는 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코스예요.”

한국인 어머니 덕분에 한국 생활에 큰 문화 충격은 없지만 딱 하나 적응이 필요했던 건 ‘침대’였다. 에리카는 “한국의 침대는 미국보다 매트리스가 훨씬 단단해서 처음엔 낯설었다”며 “단단한 매트리스가 허리나 고관절 등 몸에는 더 좋다고 하는데, 사실 가끔 집에서 쓰던 푹신한 침대가 그립기도 하다”며 웃었다.

에리카 윤 스미스. 사진 제공=말본

“한국 선수들의 정교한 골프, 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

올해 KLPGA 정규 투어 개막전인 리쥬란 챔피언십과 E1 채리티 오픈, 드림 투어를 경험한 에리카는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잔디를 꼽았다. 그는 “미국에서는 보통 벤트그라스나 버뮤다 잔디에서 플레이했는데 한국은 대부분 중지(한국 잔디)였다”며 “공이 페어웨이에 떠 있는 느낌이라 처음에는 아이언 샷을 할 때 애를 먹었다. 그래도 현재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그린에서도 많은 차이를 느껴서 앞으로 한국 투어를 뛰면서 퍼트를 많이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에리카는 투어를 뛰면서 한국 선수들의 정교한 스윙에서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 여자 선수들의 스윙을 몇 시간씩 보면서 따라 하고 분석하곤 했다”는 그는 “한국에 와서 직접 그 모습을 보니까 선수들의 스윙이 얼마나 일관되고 정교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모든 선수들의 플레이가 리듬감 있고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라고 했다. 이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이 된다”고 말했다.

에리카는 자신의 무기는 “장타와 4번 하이브리드 샷”이라고 했다. “올 1월 무릎 수술을 해서 지금은 비거리가 많이 줄었지만, 그전에는 드라이버 샷으로 캐리(날아간 거리) 260야드 정도는 보냈어요. 또 하이브리드로 낮은 궤도로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스팅어 샷’을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고요.”

“한국 팬들은 모두 ‘골잘알’…팬 문화도 인상적”

에리카는 한국 골프 팬들에 대해 “모두 골잘알(골프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는 “미국인들도 엡손 투어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런데 한국 골프 팬들은 모두 엡손 투어에 대해 알고 있어서 놀랐다”며 “또 한국 골프 팬들의 응원 문화는 정말 인상적이다. 엡손 투어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피켓을 들고, 특정 색 옷을 입고 응원하는 팬들이 있어 정말 신기했다”고 했다.

팬들, 그리고 동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한국어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에리카는 “한국어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읽는 것도 가능하지만 아직 유창하게 대화하는 것은 부족하다.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있다”며 “동료 선수들이 간단한 영어와 제스처로 도와줘서 정말 고맙다. 그리고 주변 분들이 저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언어 때문에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이런 점이 오히려 한국어를 더 빨리 배우고 싶은 동기부여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서울 강남 말본6451 도산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난 에리카 윤 스미스가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올해 목표는 정규 투어 입성…부모님께 우승 트로피 안겨드리고파”

에리카에게 가족은 골프 인생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엡손 투어를 뛰던 시절 어머니는 14시간을 운전해 대회장을 다니기도 했고, 에리카의 골프백까지 멨다. 아버지는 딸의 한국 투어 도전을 위해 지난해 퇴직 후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까지 동행하며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부모님께 더 우승을 선물하고 싶다. 올 시즌 첫 번째 목표가 드림투어 우승인 이유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이 오면 정말 울 것 같아요.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과정들이 너무나 선명하거든요. 저 혼자가 아니라 부모님과 이 여정을 함께해서 더 특별해요. 부모님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할 것 같아요. 부모님께 올 시즌 우승 트로피를 꼭 안겨드리고 싶어요.”

에리카는 드림투어 우승과 더불어 상금 순위 20위 안에 들어 내년 정규 투어 시드 확보를 노린다. 언젠가 다시 LPGA 투어 무대에 도전하는 꿈도 가슴 한편에 품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한국 팬들에게 당부했다. “언젠가 제 이름을 기억해 주신다면, 에리카라는 선수는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주변에 따뜻했던 선수로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낯선 도전을 선택한 제 여정이 가치 있었다는 것을, 반드시 실력으로 증명해 보일 거예요.”

골프먼슬리

정문영 기자 my.j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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