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된 발달장애 청년 작가들…1년 뒤에도 계속 붓 잡을 수 있을까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게 가장 신기하고 좋아요."
최근 구미 '행복한화가 갤러리카페'에서 만난 스무 살 청년작가 이한선씨가 자신의 작품 '따뜻한 햇살 아래 창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박민서 작가(20) 역시 자신이 그린 화사한 색감의 '행복이 가득한 집'을 가리키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제 그림을 보러 와주셔서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도 열심히 그려서 훌륭한 작가가 되고 싶어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이들은 경북지역 특수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 청년들이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가운데 최초로 '순수미술' 분야 교육공무직으로 정식 채용된 장애인미술단 '온그림'의 단원들이다. 현재 온그림에는 이한선·박민서 작가를 비롯해 조동국·이사랑 작가까지 총 4명의 발달장애 청년작가가 소속돼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창작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이날 '색으로 빛을 피워낸 삶의 향기 이야기'를 주제로 열린 첫 전시 '루미나 전(展)'은 이들이 사회에 던진 첫 명함이었다.
◆'전국 최초'의 타이틀, 창단까지의 험난했던 여정
온그림은 학교 현장에서 쌓아온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의 미술적 역량이 졸업과 동시에 단절되는 현실을 막기 위해 창단됐다.
선례가 없는 사업이다 보니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이용희 경북도교육청 행복교육지원과장은 "예술적 재능을 직업으로 연결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시도였다"며 "장애 학생들에게도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설득한 끝에 예산을 확보해 대망의 창단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번 전시는 공공과 민간기업의 협력(ESG)이 빛을 발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단원들의 작품 일부는 포스코휴먼스의 첨단소재인 'PosART(포스아트)' 컬러강판에 3D 프린팅 액자로 제작돼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선보였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출근길이 바꾼 기적
지난 4월부터 단원들은 구미 형남초등학교에 마련된 전용작업실로 매일 아침 출근한다. 하루 4시간씩 주 20시간을 근무하며 최저임금과 4대 보험을 보장받는다.
출근을 시작한 지 불과 두 달 남짓이지만, 이들이 보인 성장은 함께 생활하는 지도강사도 놀랄 정도다. 현장에서 단원들을 지도하는 황수련 온그림 강사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직장생활에 훨씬 잘 적응하고 있다"며 "단순한 미술교육이 아니라, 프로작가로 자립할 수 있도록 개인의 개성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단원들 스스로 나름의 노력을 멈추지 않아 작품의 완성도가 기대 이상으로 높다"고 칭찬했다.
가장 큰 변화를 체감하는 것은 역시 가족들이다. 박민서 작가의 어머니 서영재씨(구미시 남통동)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아이가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일을 할 수 있을까 장래가 너무 막막했다"며 "그런데 지금은 매일 갈 수 있는 직장이 생겼고, 책임감을 느끼며 일하는 모습을 보니 훌쩍 커버린 것 같아 대견하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서씨는 "민서가 월급을 쓰지 않고, 통장에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나중에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 독립 자금으로 쓰기 위해서"라며 흐뭇해 했다.
직장인으로서 맛본 '자립의 맛'은 청년들을 춤추게 했다. 이한선 작가는 취직 후 받은 첫 월급으로 다른 곳에서 바리스타 또는 운동선수 등으로 일하는 학교 친구들을 불러 모아 고기를 한턱내며 어엿한 사회인으로서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낯선 고용 모델의 과제…"고용률 꼼수 막고 직접 고용 늘려야"
다만 선례가 없는 파격적인 고용 모델인 만큼,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단원들의 신분이 1년 기한의 계약직이며, 교육청 내 정식 직렬로 채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나운환 한국장애인재활협회장(전 대구대 직업재활학과 교수)는 "단기 계약직 형태의 일자리는 자칫 기관의 장애인 의무고용률 수치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나 회장은 "단원들이 안정적인 직장에 온전히 정착하고 진정한 자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기존 조직의 정식 직렬 안에 발달장애인 맞춤형 채용절차를 도입해 직접 고용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교육청 "단순 노무 넘어선 시도…안정적 고용 전환 노력 중"
이러한 지적에 대해 경북도교육청은 단순 노무를 넘어선 '재능의 직업화'라는 방향성을 강조하며, 고용 안정을 위한 중장기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단순히 장애인 고용률 수치를 높이려 했다면, 청소나 사무보조 같은 직무로 고용했을 것"이라며 "재능이 뚜렷한 장애 학생들이 졸업 후 어쩔 수 없이 단순 노무로 밀려나는 현실을 개선하고, 본인의 강점으로 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도"라고 반박했다. 이어 "현재는 계약직 신분으로 첫발을 떼었지만, 내년에는 이들이 시간선택제 임기제 공무원 등 보다 안정적인 신분으로 전환돼 근무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온그림 단원들은 오는 9월 대규모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지역 교육시설 외벽을 꾸미는 벽화 봉사활동도 계획 중이다. 보호받는 대상에 머물렀던 청년들이 이제는 자신의 재능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 노동의 주체'로 서기 시작한 네 명의 청년작가들. 이들의 첫걸음이 일회성 실험에 그치지 않고, 장애인 고용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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