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 면책 힘주는 거래소 vs. 무과실 배상 검토하는 당국 [크립토360]
스테이킹 보상 관련 거래소 면책 범위 주목
디지털자산기본법, 배상 체계 적용 가능성
![국내 5대 원화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각사 제공]](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01/ned/20260601144320512hriv.png)
[헤럴드경제=경예은 기자] 디지털자산 거래소가 스테이킹 서비스 약관을 손질하며 면책 범위를 구체화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디지털자산 2단계 법안에 ‘무과실 책임배상’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향후 이용자 보호를 둘러싼 책임 기준이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코빗은 자사 서비스인 ‘스테이킹 플러스’ 이용약관을 개정했다. 스테이킹이란 이용자가 보유한 디지털자산을 블록체인 네트워크 검증 과정에 맡기고 그 대가로 보상(이자)을 받는 것으로 5대 거래소 모두 관련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개정된 약관에는 스테이킹한 디지털자산 수량이 원칙적으로 유지되지만 슬래싱, 네트워크 오류, 외부 해킹 등 회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사유로 수량이 감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또 이로 인해 발생한 손실에 대해 회사의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경우 책임지지 않는다는 내용도 약관에 담겼다.
슬래싱은 지분증명(PoS) 방식 블록체인에서 검증자가 부정행위를 저지를 경우 예치된 코인의 일부를 몰수하는 제재를 뜻한다. 디지털자산 투자자 입장에서는 거래소를 통해 스테이킹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블록체인 프로토콜 자체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닌 셈이다.
코빗은 이번 개정이 서비스 제공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코빗 관계자는 “슬래싱과 같은 리스크는 프로토콜 자체에 내재된 구조적 특성”이라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이용자 보호 및 정보 제공 의무가 강화된 규제 환경에 맞춰 약관의 명확성을 제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자산 출금 지연 가능성에 따른 면책 조항도 정비됐다. 약관에는 ▷고객 출금 요청이 단기간 증가해 시스템 또는 유동성 확보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 ▷관계 법규, 수사·사법기관 또는 국가기관 요청·제재·명령·방침 등에 따라 출금 제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회사 귀책 없이 출금 처리가 지연될 수 있다는 내용이 반영됐다. 코빗은 자금세탁방지(AML) 및 특정금융정보법상 가상자산사업자의 법적 의무를 실은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빗썸 오지급 사태’ 이후 커진 책임 강화론=코빗뿐 아니라 다른 거래소들도 모두 면책 조항을 이용약관에 두고 있다. 업비트는 스테이킹 보상이 블록체인 네트워크 상황에 따라 상시 변동하며 회사는 이에 관여할 수 없고 보상 수준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안내하고 있다. 또한 해당 서비스는 자본시장법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상 보호를 받는 금융상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코인원은 스테이킹 중인 자산의 가치가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상승하거나 하락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손실은 회원에게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빗썸 역시 재단 정책 변경, 블록체인 네트워크 오류, 노드 운영사 문제 등으로 보상 지급이 지연되거나 불가능한 상황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안내한다.
반면 거래소 약관과 별개로 금융 당국은 디지털자산 2단계 입법 과정에서 시장 신뢰 제고를 위한 안전장치 도입을 고려중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무과실 책임배상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며 “전자금융거래법상 조항도 참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2단계 법안은 시장 및 영업자 규율을 세분화하는 동시에 이용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이라고 언급했다.
이 같은 논의의 배경에는 지난 2월 빗썸의 비트코인 오지급 사태가 있다. 당시 빗썸은 고객 이벤트 보상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비트코인 62만개를 잘못 지급했다. 이 중 1788개가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9500만원대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8111만원까지 떨어졌다. 이 여파로 코인 대여 서비스 ‘렌딩플러스’ 이용자 일부가 담보 가치 하락으로 강제청산을 당한 사례도 확인됐다.
금융위는 지난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정경제부, 법무부, 금감원 등 관계부처 및 기관과 함께 ‘2026년 제1차 가상자산위원회’를 열고 빗썸 오지급 사태와 디지털자산기본법 정부 검토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새로운 관리와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제도 정비와 시장 저변 확대라는 ‘두 축’으로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당시 회의에서는 거래소 내부통제 기준, 무과실 손해배상책임 등 안전장치 도입 필요성이 거론됐다.
▶전금법 참고 땐 약관 효력도 쟁점=관건은 무과실 책임배상의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느냐다. 현행 전자금융거래법 제9조는 위조·변조, 전자적 전송·처리 과정 사고 등으로 이용자 손해가 발생한 경우 금융사가 원칙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용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에 한해 책임을 줄일 수 있으나 이를 입증할 부담도 사업자에게 있다.
가상자산사업자는 전금법 적용대상이 아니라 현재로서는 같은 책임을 묻기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전금법의 무과실 배상 체계를 참고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거래소 해킹이나 전산사고, 내부통제 실패처럼 사업자가 관리해야 하는 영역에서 사고가 났을 때 지금보다 무거운 책임을 질 수 있어서다.
특히 국내에서는 이미 디지털자산 예치 서비스에서 대규모 이용자 피해가 발생한 전례도 있다. 고팍스는 2022년까지 ‘고파이’를 운영하면서 고객 자산을 글로벌 운용사 제네시스 글로벌 캐피탈에 맡겼다. 그러나 FTX 파산 여파로 제네시스가 파산하면서 고파이 이용자들의 채권 상환이 중단됐다. 고파이 투자자들이 지금까지 변제받지 못한 손실액은 17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다.
고팍스는 당초 고정형·자유형 고파이 서비스를 운영했으나 현재는 운용을 중단한 상태다. 다만 바이낸스가 고팍스 인수 추진 과정에서 상환이 완료되지 않은 고파이 예치 자산의 이자 지급까지 책임지기로 한 만큼, 현재 홈페이지에 표시되는 누적 예치금에는 미상환 예치 자산의 평가액과 이자가 함께 반영돼 있다.
법조계에서는 약관상 면책 조항의 효력이 향후 법제화 방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한 법조 전문가는 “통상적인 보호 조치를 모두 취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한 경우라면 약관이 거래소의 방어 논리를 보강하는 요소가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사고 예방 의무를 다했다면 약관상 면책 조항이 고의·과실 여부를 다투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그는 “무과실 책임 배상 도입 이후 발생한 대형 사고가 연쇄 피해로 번질 경우 배상 가능성은 물론 손해배상 규모도 커질 수 있다”고 봤다.
또 다른 전문가는 “거래소 입장에서는 약관이 구체적일수록 향후 면책을 주장할 때 유리하기 때문에 약관을 정비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무과실 책임 조항이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담기거나 강화된다면 약관을 개정해도 법에 반하는 범위에서는 효력이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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