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파 관측 10년…'2세대 블랙홀' 존재 첫 확인

조가현 기자 2026. 6. 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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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파로 발견된 블랙홀과 중성자별의 질량 분포. 붉은색·노란색 점은 전자기파로 관측된 블랙홀과 중성자별을 비교해 나타낸 것이다. 전자기파 관측 60년치 성과를 중력파는 9.5년 만에 넘어섰다. LIGO-Virgo-KAGRA 협력단, Aaron Geller, 노스웨스턴대 제공

중력파 신호를 이용해 블랙홀 합병에서 탄생한 '2세대 블랙홀'의 존재를 처음 확인했다. 역대 최고 선명도 신호를 포착하고 신호 발생 위치도 역대 가장 정밀하게 파악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이 참여한 라이고-비르고-카그라(LVK, LIGO–Virgo–KAGRA) 협력단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새로운 중력파 사건 목록’을 발표했다고 1일 밝혔다.

LVK 협력단이 운영하는 국제 중력파 검출기 네트워크는 2024년 4월부터 2025년 1월 말까지 탐지된 161건을 추가해 누적 탐지 건수를 390건으로 늘렸다. 2015년 첫 탐지 이후 10년 만의 성과다. 연구팀은 '중력파 현상 카탈로그 5.0(GWTC-5.0)'이라는 명칭으로 전체 관측 목록을 온라인 공개했으며 관련 논문을 ‘천체물리학 저널’과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스’에 발표했다.

연구에는 20여 개국 150여 개 기관 소속 3000여 명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천문연구원 등 35개 기관 100여 명으로 구성된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이 함께했다.

중력파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같은 무거운 천체들이 서로 공전하거나 충돌할 때 발생하는 시공간의 파동이다. 빛의 속도로 우주를 가로질러 전파되며 지구에 도달하면 공간을 극도로 미세하게 늘이거나 줄인다. 중력파 검출기는 이 변화를 측정해 신호를 포착한다.

이번 목록에 담긴 주요 성과는 세 가지다. 2세대 블랙홀 존재 첫 확인, 위치 결정 정밀도 신기록, 역대 최고 선명도 신호 포착이다.

2024년 10~11월 한 달 간격으로 탐지된 'GW241011'과 'GW241110'은 각각 지구에서 7억 광년, 24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합병하며 발생했다. 두 블랙홀의 회전 방향과 속도가 별이 붕괴해 탄생한 일반적인 블랙홀과 달라 블랙홀끼리 충돌·합병을 거쳐 탄생한 '2세대 블랙홀'로 분석됐다. 블랙홀이 밀집한 성단 환경에서 반복 충돌로 형성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측 건수가 쌓이면서 연구자들은 2세대 블랙홀이 독자적인 집단을 이루고 있음을 점점 더 명확히 규명하고 있다.

2024년 6월 포착한 신호 'GW240615'는 지구에서 30억 광년 이상 떨어진 곳에서 태양 질량의 26배, 30배짜리 블랙홀 두 개가 충돌·합병하며 발생했다. 미국의 라이고 검출기 두 대와 유럽의 비르고가 동시에 신호를 잡아 세 지점에서 삼각 측량한 결과 발생 위치를 역대 가장 좁은 범위로 특정했다. 발생원 위치를 좁힐수록 빛·전파 망원경으로 같은 지점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어 천문학적 가치가 높다.

마리 안 비주아르 비르고 협력단 대변인(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은 "중성자별 병합 같은 사건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 신호를 좁은 하늘 영역에서 찾아내려면 발생 위치를 최대한 정밀하게 파악해야 한다"며 "천구 위치 정밀도 향상은 천문학계 전체가 최우선으로 추구해온 목표"라고 밝혔다. 

2025년 1월 포착한 신호 'GW250114'는 신호대잡음비(SNR) 76.9를 기록하며 역대 가장 선명한 중력파 신호로 기록됐다. 신호대잡음비는 잡음 대비 신호의 강도로 수치가 높을수록 분석 정밀도가 올라간다. 선명한 신호 덕분에 아인슈타인 일반상대성이론을 역대 가장 엄밀하게 검증했고 블랙홀 합병 후 면적이 줄어들 수 없다는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면적 정리도 확인했다.

에드 포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연구원은 "현재 검출기 감도로는 매주 3~4건의 중력파 신호를 포착할 수 있다"며 "블랙홀 집단 구성 분석, 극한 조건에서의 일반상대성이론 검증, 허블 상수 추정 정밀화 등 10년 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던 연구가 이제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이형원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장(인제대 교수)은 "2015년 중력파가 최초로 검출된 이후 검출기 감도의 획기적인 향상으로 중력파 상시 관측 시대가 도래했다"며 "다중신호 천문학을 통해 중력파·빛·중성미자 관측 자료를 종합적으로 연구하면 우주에 대한 새로운 물리적 이해와 과학적 발견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리 이화여대 교수는 "불과 10여 년 사이 중력파 과학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며 "수백 건의 블랙홀·중성자별 관측·분석 결과는 킬로미터급 레이저 간섭계가 중력파로 우주를 탐구하는 데 얼마나 효과적인지 입증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라이고와 카그라 성능 향상에 기여하고 2035년 완성 목표인 아인슈타인 중력파 망원경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며 "차세대 중력파 망원경 시대에는 매일 수백 건의 관측을 통해 일반상대성이론 한계 검증, 허블 상수 난제 해결 등 물리학과 천문학의 새로운 도약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조가현 기자 gahy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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