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3000억 증발… 선 넘은 마케팅 청구서 [이슈&트렌드]

사회적 감수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마케팅엔 가차없이 이탈을 선언하는 ‘개념 소비’, ‘윤리 소비’ 시대가 도래했다.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선택을 받으려는 기업들은 이제 제품의 품질, 가격 조건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적 감수성도 챙겨야 하는 것이다.
◇소비자 ‘역린’ 건드리면 역풍
이른 바 스타벅스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크리에이티브(창의성)를 우선시 해 온 기업의 마케팅에 대한 철저한 내부 검증이 요구되고 있다.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대, 소비자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프로젝트가 ‘프리패스’ 되는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자칫 소비자들의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요소는 없는지, 철저하면서도 세심한 모니터링이 필수가 됐다.
지난달 26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허리 굽혀 사과한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이벤트를 포함해, 최근 10년간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몇몇 마케팅들이 간과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전문가들은 사회적 감수성을 놓친 마케팅에 대한 소비자들의 저항감이 커지고 있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정태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부적절한 마케팅으로 유사한 현상이 발생하더라도 단기간에 원상 회복되곤 했는데, 요즘 소비자들 사이에선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여파가 지속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발표 이후 초기 3~4개월간 소비자들의 ‘탈팡’이 지속됐듯이 이번에 나타나고 있는 ‘탈벅’ 움직임 또한 일정 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며 “기업은 이 기간이 길어지지 않도록 다시 소비자들을 불러들일 확실한 회복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개념·윤리 소비 시대에 사회적 감수성을 거스르는 마케팅은 기업의 주가 흐름까지 바꿔놓을 정도로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
실제로 스타벅스코리아의 최대주주인 이마트는 탱크데이 사태 이후 일주일 새 시가총액이 3000억원 넘게 증발했다.
정 교수는 “고객이 외면하는 기업은 앞으로 벌어들일 돈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들이 이런 위험을 미리 감지하기 때문에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선 넘은 마케팅 전력, 끝까지 ‘꼬리표’ 돼
더 심각한 것은 선 넘은 마케팅 전력은 SNS, 유뷰트 등 다양해진 소통채널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엔 큰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사회적 감수성과 동떨어진 광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일을 7년만에 다시 사과한 무신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스타벅스 ‘탱크데이’ 사태를 계기로 무신사의 과거 광고 사례가 이재명 대통령의 엑스(옛 트위터)에서 유사 사례로 소환돼 지목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엑스에 관련 게시물을 공유하며 “돈이 마귀라지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 그로 인해 시작된 6월 민주항쟁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광고”라고 지적했다.
앞서 무신사는 2019년 7월 고(故) 박종철 민주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인용해 SNS 마케팅에 활용했다. 무신사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가 들어간 ‘속건성 양말’ 광고를 내보낸 것이다. 당시 무신사는 국가 폭력을 희화화했다는 여론이 확산하자 뒤늦게 사과하고 게시물을 삭제했었다.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상황에, 브랜드 평판이 깎일 수 있는 과거의 잘못이 다시 수면 위로 끄집어올려지자, 무신사는 자사 뉴스룸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시 사과했다.
무신사는 최근 사과문을 통해 “2019년 7월, 무신사는 故 박종철 민주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케 하는 문구를 인용해 SNS 마케팅에 활용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희생하신 열사님의 뜻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사건 발생 직후, 무신사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은 (사)박종철기념사업회를 직접 찾아 진심으로 사죄드리며 용서를 구했다”며 “하지만 7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내부 프로세스의 부재와 경솔한 판단이 남긴 상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새기고 있다”고 했다.
무신사는 재발 방지 조치를 즉시 실행했으며 현재도 이행 중이다.
이와 관련해 무신사 관계자는 “당시 무신사는 임직원의 윤리 의식과 사회적 감수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최태성 강사를 초빙해 역사 교육을 진행했다”며 “마케팅 콘텐츠, 홍보물 제작 과정 전반에서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더욱 엄격히 검토할 수 있도록 다중 검수 체계를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의 엑스에 게재된 무신사 광고. [이재명 대통령 엑스 캡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6/02/dt/20260602002820102grtb.jpg)
기업의 과도한 마케팅이 논란이 된 것은 이뿐이 아니다. 광고·이벤트를 개시했다가 비판 여론이 커지면 그제서야 중단, 황급히 사과하는 식의 패턴이 반복돼 왔다.
실제로 GS25는 2021년 모바일 앱에 올린 이벤트 포스터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포스터에 들어간 소시지를 잡는 손 모양의 이미지가 남성 혐오 사이트의 로고와 비슷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각종 남성 이용자 중심의 커뮤니티에서 GS계열사 제품에 대한 전체 불매운동이 퍼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GS리테일 관계자는 “이 사건 이후, 회사는 홍보물을 포함해 모든 마케팅 콘텐츠에 대한 사전 검수 프로세스를 정립했다”며 “표현·문구·이미지 가이드를 수립해서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콘텐츠 업로드 후에는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이슈 발생 가능성을 상시 점검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동안 기업들이 보여 온 사후약방문식 대응은 근본적인 처방전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리스크 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은 기본이고, 사회적 감수성에 반하는 아이디어를 마케팅 아이디어로 아무렇지 않게 내놓는 것이 허용되는 비상식적인 조직문화를 상식적으로 바꿔놓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안희경 한국소비자학회 공동회장은 “굉장히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시대상이 된 지금, 기업들이 이를 좇아 마케팅에 무리수를 두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크리에이티브를 강조한다는 미명 하에 더 자극적인 것만 추구하다가 사회적 감수성을 놓치고, 이로 인해 리스크를 키워 그동안 쌓아 온 기업 평판과 브랜드 이미지를 한번에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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