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역사 신안 비금도 돌담, 섬 소멸에 허물어진다

광주일보 2026. 6. 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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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섬, 기회의 섬] 4. 사람 떠나니 문화유산도 소멸위기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됐지만
고령화·인구 감소에 보존 ‘빨간불’
조선 후기 원형 간직 공동체 생활유산
예산 부족에 문화재 복구 엄두도 못내
마을 전통 설화·제례 전할 젊은이 없어
신안군 비금면 비금도 내월리 내촌마을 옛 돌담길. <신안군 제공>
신안군 비금면 비금도 내월리 내촌마을 옛 돌담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수백년간 거센 갯바람을 막아내며 섬마을 주민들의 삶과 함께 해온 유산이지만 주민들은 떠나고 나이든 노인들만 남아 있다보니 이대로 지켜질 지 모르는 상황이다.

빈집이 늘어나면서 마을의 옛 이야기와 역사,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민간신앙과 구전 설화를 전해줄 주민들도 찾아보기 힘들어지는 섬마을의 소멸 위기는 비금도도 빗겨가지 않았다.

◇주민은 없는데 문화재만 남을까=정춘산(74) 내촌마을 이장은 31일 “내촌마을 실거주 인구는 40명이 채 되지 않고, 주민 평균 연령도 70세를 훌쩍 넘겼다”며 “머지않아 돌담을 지켜온 주민들과 함께 마을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고 토로했다.

내촌마을 옛 돌담은 지난 2006년 완도군 청산면 상동리, 신안군 흑산면 사리 등 5곳 돌담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으며, 2024년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비금도 내월리에 소재한 4개 섬마을 중 하나인 내촌마을은 사시사철 거센 갯바람이 불어온다고 한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돌담이 집집마다 쌓여 있고,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옥 높이도 낮게 지어졌다.

현존하는 담장은 대게 마을 형성 시기인 17~18세기 조선 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길게는 400여년 역사를 지닌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담장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골목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40~60도 각도로 세우는 방식으로 돌담을 물려쌓는 등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담장의 형식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촌마을 돌담의 특징은 자연석을 깎거나 깨지 않고 그대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돌의 형태는 둥글기보다 길쭉하고 날카로우며, 산이나 하천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납작한 돌과 각형 막돌을 그대로 사용했다.

담장 높이는 낮게는 1.5m, 높은 곳은 어지간한 성인 남성 키를 넘는 1.8m 이상에 이르며 폭은 40~60㎝ 안팎이다. 마을 곳곳에 이어진 담장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총 길이가 2.138㎞에 달한다.

정 이장은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이 뒷산인 선왕산에서 돌을 지게로 지고 내려와 담을 쌓았다”며 “한번에 진 돌 무게가 족히 300~400㎏은 됐을 텐데 변변한 장비도 없이 내려와 돌담을 지었던 것을 생각하면 신기하기만 할 따름”이라고 회상했다.

신안 등지에서는 흙이나 돌로 담을 쌓거나 수목을 조성해 바닷바람과 액운, 산짐승 등의 위험을 막는 울타리를 ‘우실’이라 부른다. 내촌마을 돌담은 흙을 사용하지 않고 돌만으로 메쌓기 한 ‘강담’과 막돌과 흙을 교대로 쌓아 올린 담, 시멘트 모르타르를 사용한 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내촌마을 돌담은 굽은 마을 안길과 어우러져 이웃의 집터와 경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섬마을 특유의 공간 구조와 오랜 민속문화, 바람을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간직한 공동체 생활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정 이장은 “갯바람이 강한 섬마을엔 어디든 돌담이 쌓아져 있지만, 내촌마을만큼 정교한 곳은 드물다고 자부한다”며 “증조부 때 지은 돌담을 울타리 삼아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돌담은 주민들의 자랑이자 삶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들어서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돌담이 허물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관리당국의 예산 부족 등으로 복구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주민들이 고령이기도 하고, 국가유산이라 애초에 함부로 보수하거나 손을 댈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섬마을 문화도 흐릿해지나=인구 소멸 역시 심각하다. 주민등록상 비금면 인구는 지난해 말 기준 3704명, 내월리는 236명이다. 내촌마을만 봤을 땐 54명으로, 이중 실거주 인구는 30명대에 머문다고 한다.

정 이장은 “연인이나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지만, 언제까지 마을이 유지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며 “자녀들은 서울이나 광주 등 도시로 떠났고, 마을엔 빈집만 늘어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 만한 여건이 부족한데 서운해도 어쩌겠나. 결국 마을은 텅텅 비고 돌담만 남게 되거나, 마을 자체가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주민 감소와 고령화 여파로 할머니, 할아버지 입을 통해 대대로 내려오던 마을 전설과 민간신앙도 점차 축소·소멸되고 있다.

내촌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뒷산 이름과 같은 ‘선왕신’을 모시는 당제가 열린다. 마을에 내려오던 구전에 따르면 선왕신은 과거 비금도에 귀양 온 선비의 딸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간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딸은 선왕산에 올라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끝내 숨졌다고 한다. 이후 원혼이 마을을 떠돈다고 여긴 주민들이 혼을 달래기 위해 제를 올리며 선왕신으로 모시게 됐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당제와 거리제를 지내고 있다.

정 이장은 “어릴 적에는 제관(祭官)과 화주(貨主)를 뽑아 사흘 동안 음식을 준비하고 청수를 떠다 바치는 등 정성을 들인 뒤제당 동자상 앞에서 제를 지냈다”며 “여신(선왕신)께 부정을 타지 않도록 제관과 화주의 집에는 제가 끝날 때까지 금줄을 둘러놓는 등 엄숙히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민 수가 줄다보니 최근 들어서는 하루만에 제를 치르게 됐다”며 “설화를 기억하고 전해줄 젊은이들은 떠난 지 오래고, 남아 있는 주민들마저 늙고 병들어 가고 있어 제사를 이어갈 후계자가 없다. 이대로라면 수백년 이어온 설화와 제례도 머지않아 사라지지 않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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