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보다 10배 빠른 눈과 팔… AI, 두뇌 넘어 육체 스포츠까지 접수[Science]

조재연 기자 2026. 6. 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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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탁구선수도 꺾은 판단·반응 속도
일본 소니AI 탁구 로봇 ‘에이스’
9대 카메라·3대 센서가 공 추적
자체 학습해 8개 관절 팔 움직여
인지·자율제어기술로 효율 높여
통제된 환경서 반복작업 벗어나
재난현장 구조분야 등 활용 열려
그래픽=김유종 기자

“경기 중 공이 네트 상단을 때리는 찰나의 순간, 공은 네트를 넘어갈 수도 있고 다시 떨어질 수도 있다. 운이 조금 따른다면 공은 네트를 넘어가고, 당신은 승리한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공은 떨어지고, 당신은 패배하게 된다.”

인생이 우연과 운의 연속이란 것을 보여주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매치 포인트’(2005)의 극 중 대사다. 배구와 테니스·탁구 등 구기종목에서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마지막 1점을 의미하는 매치 포인트는 주인공의 직업(선수 출신 테니스 강사)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의 운명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표지에도 매치 포인트가 등장했다. 다만 스포츠나 영화 얘기는 아니다. ‘소니 AI’가 개발한 탁구 로봇 에이스(Ace)가 인간 탁구 선수를 꺾었다는 소식을 매치 포인트란 표현으로 전한 것이다. 에이스의 이번 승리는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바둑으로 꺾은 지 약 10년 만의 일이다. 그간 체스·바둑 등 마인드 스포츠에서 인간을 격파했던 인공지능(AI)이 이젠 육체 스포츠 분야에서도 인간을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순간 탁구공이 어디로 향할지는 더 이상 고된 훈련이나 운이 아니라 AI의 계산과 통제의 영역이 됐다. 피지컬 AI는 탁구 정복을 넘어서 제조업과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등으로 무궁무진하게 뻗어 나갈 전망이다. AI가 기술적 장벽을 돌파하고 매치 포인트만을 남겨둔 상황, 마지막 서브는 인류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

◇인간을 능가하는 눈과 팔=인간이 즐기는 스포츠 중에서도 탁구는 고도의 반사 신경을 요구한다. 선수들은 강한 회전이 걸린 채 고속으로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예측하고, 동물적 감각을 발휘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동안에도 탁구 로봇이 등장한 적은 있지만, 이들은 대개 공식 경기 규칙과 장비 규정을 따르지 않은 환경에서 아마추어 수준의 선수들과 겨뤄 왔다. 그러나 에이스는 ‘초저지연 인지 시스템’과 ‘강화학습 기반의 자율 제어’로 탁구란 난제를 풀어냈다.

무엇보다 인간을 뛰어넘는 것은 에이스의 눈이다. 9대의 동기화된 프레임 기반 카메라뿐만 아니라 3대의 ‘이벤트 기반 비전 센서’가 움직임·밝기 변화를 마이크로초 단위로 감지한다. 초당 200회(200㎐)의 속도로 ㎜ 단위의 공 위치를 추적하며 초당 700회(700㎐)의 속도로 공의 회전을 정밀하게 추적한다. 프레임 전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픽셀 단위의 밝기 변화와 움직임만을 밀리초(㎳·1000분의 1초) 이하 단위로 포착하면서 잔상 없는 정밀 추적이 가능해진 것이다. 인간 탁구 선수는 시각적 인지 및 반응 속도가 통상 230㎳ 수준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에이스의 시스템 종단 간 지연 시간은 단 20.2㎳에 불과하다. 인간보다 10배 이상 빠른 속도로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뜻이다.

이에 더해 2개의 직동(prismatic) 관절과 6개의 회전(revolute) 관절 등 총 8개의 관절로 이뤄진 에이스의 팔은 인간이 프로그래밍한 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알파고처럼 강화학습을 거친 결과물이다. 가상 시뮬레이션에서 수백만 번의 랠리를 거치며 스스로 터득한 전략은 물리적 로봇에 그대로 이식되고 현실 세계와의 오차를 스스로 보정한다.

◇엘리트 선수와 3승 2패=에이스가 국제탁구연맹(ITTF) 공식 규칙에 따라 일본탁구협회(JTTA) 공인 심판 주관하에 실제 인간 선수들과 대결을 진행한 결과, 에이스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엘리트(최상위 아마추어급) 탁구 선수 5명과 맞붙어 3승 2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프로 선수 2명과의 대결에서는 한 세트를 따내는 성과만 거둔 채 패배했지만, 소니 AI는 논문을 제출한 이후인 지난해 12월 진행한 추가 경기에서 4명 중 3명을 이겼고 올해 3월에는 프로 선수를 꺾었다고 밝혔다. 성능 향상을 거친 에이스가 더 빠른 템포와 공격적인 능력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에이스가 인간 선수들을 이긴 비결은 놀라운 수준의 적응력이다. 인간 선수들은 서브 모션을 교묘하게 숨기는 등의 변칙 기술을 구사했다. 하지만 에이스는 공에 새겨진 로고의 움직임을 통해 회전 방향과 속도를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등, 단순한 기계적 반응을 넘어서 고도의 자율적 적응력을 보여줬다.

◇탁구대 넘어 산업과 일상으로=에이스의 등장은 체화된 AI(Embodied AI)의 완성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평가받는다. 기존의 산업용 로봇은 대부분 통제된 공장 환경에서 정해진 동작만 반복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탁구 경기는 예측 불가능한 타구와 공기 저항, 라켓의 각도 등 무수히 많은 변수가 존재해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비정형 환경에서 수많은 불확실성을 딛고 승리한 에이스는 인지·판단·행동을 지연 없이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음을 입증하며 피지컬 AI의 지평을 확장했다는 게 학계와 외신들의 평가다.

일본의 전 탁구 국가대표였던 나카무라 긴지로(仲村錦治郞)는 에이스의 샷을 보고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샷”이라며 “그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인간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의 목표가 바둑 세계 챔피언이 아니었듯, 에이스를 개발한 소니 AI의 목표 역시 탁구 챔피언에 그치지 않는다. 에이스가 입증한 초고속 인지 및 자율 제어 기술은 향후 다양한 산업에 거대한 파급력을 미칠 전망이다. 무엇보다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움직임에 안전하고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협동 로봇, 정밀 의료 및 수술 보조 로봇, 가사 도우미 로봇 등의 효율성이 크게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실 환경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로봇들의 성능 개선도 예상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자율주행 자동차, 재난 현장에서의 구조 로봇, 초고속 물류 분류 시스템 등은 찰나의 판단과 물리적 제어가 필수적이다. 소니 AI의 수석 과학자인 피터 스톤 박사는 “정밀성과 속도가 요구되는, 복잡하고 급변하는 실제 환경에서 AI가 전문가 수준의 능력을 발휘하면 이전엔 도달할 수 없었던 새로운 유형의 응용 분야로 가는 문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조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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