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하강 철책길’에서 만나는 역사와 성찰
대명항에서 문수산성까지 14km 여정
손돌 전설·병인양요·신미양요 품은 평화누리길 1코스

초여름의 문턱인 6월, 시원한 강바람과 함께 역사와 평화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길이 있다. 경기도가 추천한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 철책길’이다.
평화누리길은 DMZ 접경지역인 김포·고양·파주·연천을 잇는 국내 대표 도보 여행길로, 총 12개 코스 189km에 이른다. 분단의 현실을 체감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문화 자원을 함께 만날 수 있어 많은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도는 ‘DMZ 사색(四色)하다’를 주제로 계절별 걷기 명소를 소개하고 있으며, 6월 추천 코스로 김포 평화누리길 1코스인 염하강 철책길을 선정했다.
염하강 철책길은 김포 대명항에서 문수산성까지 이어지는 약 14km 구간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철책선 너머로 유유히 흐르는 염하강과 강화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 특유의 풍광은 이곳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여정의 출발점인 대명항은 수도권에서 가까운 서해안 대표 관광지다. 쭈꾸미와 꽃게, 전어 등 제철 수산물로 유명하며, 어촌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인근 김포함상공원은 현재 안전점검으로 휴관 중이지만, 해군 퇴역 함정인 운봉함이 전시돼 있어 접경지역의 안보 역사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길을 따라 약 1km를 걷다 보면 덕포진과 손돌묘가 나타난다. 이곳에는 고려 고종의 강화도 피난과 관련된 뱃사공 손돌의 전설이 전해진다. 몽골군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로 향하던 왕이 손돌의 항로 안내를 오해해 그를 처형했지만, 손돌이 남긴 마지막 조언 덕분에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사람들은 음력 10월 무렵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 부르며 그의 충정을 기억하고 있다.
평화로운 풍경과 달리 염하는 한반도 근대사의 격랑이 스며 있는 곳이다. 김포와 강화도 사이를 흐르는 이 물길은 오랫동안 천혜의 방어선 역할을 했지만, 19세기 들어 외세의 침입 통로가 됐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해군이 염하를 따라 강화도로 진입했다. 덕포진 일대에서는 조선군과 외세 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이후 조선은 개항과 근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냉전기를 거치면서 염하 일대는 철책으로 둘러싸인 군사 통제구역이 됐다. 오랜 세월 일반인의 접근이 제한됐던 공간은 이제 평화누리길로 다시 태어나 누구나 걸을 수 있는 역사·문화 탐방로가 됐다.
코스의 종점인 문수산성은 병자호란 이후 강화 방어 체계를 보완하기 위해 축조된 산성이다. 병인양요 당시에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격전지이기도 하다. 산성에 오르면 염하강과 강화도 일대가 한눈에 펼쳐지며, 이 물길이 품어온 수백 년 역사의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평화누리길 1코스는 단순한 걷기 여행을 넘어 분단과 전쟁, 평화와 공존의 의미를 되새기는 길이다. 철책선 너머로 흐르는 강물은 과거의 상처를 품은 채 오늘도 묵묵히 흐르고 있으며, 탐방객들은 그 길 위에서 역사를 만나고 평화를 생각한다.
경기도 관계자는 “염하강 철책길은 자연경관과 역사적 가치가 어우러진 대표적인 평화누리길 코스”라며 “초여름 햇살 아래 시원한 물길을 따라 걸으며 평화와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춘성 기자 kcs8@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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