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유튜브 바이럴 영상의 공허한 허세, 영화 ‘백룸’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09번째 레터는 공포영화인 척 하는 공허한 영화 ‘백룸’입니다. 공포영화 아닙니다. 안 무서우니까요. 무섭지 않으면 다른 거라도 있어야겠죠. 없습니다. 원작인 유튜브 영상에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설계를 붙였습니다. 이 정도를 보려고 영화관에 가기엔 여러분의 시간과 에너지, 1만5000원은 너무나 소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엄청난 걸 보여줄 것처럼 잔뜩 뻐기지만 사실은 별 게 없는 ‘백룸’, 이번 레터로만 보시길 추천하며 아래에서 결말(그런 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제 의견이지만)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중에 그런 작품 있죠. 사실 감독도 각본가도 해답을 몰라요. 일단 그럴 듯한 걸 던져줍니다. 관객 반응, 즉 흥행 성적을 보고 계속 돈이 되겠다 싶으면 다음 작품을 만들어요. 그러면서 결론도 만들어가는 거죠. 애초에 하고 싶은 말이 있었거나, 보여주고 싶은 세계가 있었던 게 아니에요. ‘그 질문의 해답은 다음 편의 나에게 맡긴다.’ 이런 자세로 계속 수수께끼 떡밥을 던집니다. 뭔가 굉장히 있는 척하면서, 엄청난 비밀을 감춘 척하면서. 사실은 관객만큼이나 그도 모르면서요.
영화 ‘백룸’은 ‘나도 모르는 답을 다음 편의 나에게 미루는’ 전형적인 작품입니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뭔지 잘 알 수 없는, 비논리적인, 기이한 이미지를 계속 보여줘요. 관객은 그게 뭔지 알고 싶으니 계속 봅니다. 왜 저러지, 저게 뭐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궁리해가면서요.
이럴 때, 볼 만한 작품이라면 적어도 두 가지 중 하나는 해야합니다. 보여주는 이미지가 매우 신선하거나, 너무 끔찍해서 사로잡히거나, 그야말로 기괴하거나. 아니면 깜짝 놀랄 이야기나 생각 못했던 비밀을 드러내서 탄복하게 하거나. ‘백룸’은 둘 다 아닙니다. 이미지는 식상하고 이야기는 없다시피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의 핵심 이미지부터가 인터넷에 떠돈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유튜브 영상이 제작되면서 입소문을 타서 영화까지 된 것이니까요. 그 유튜브 영상을 만들었던 10대 크리에이터(2005년생으로 지금은 21세)가 이번에 이 영화로 감독 데뷔를 했습니다. 홍보물에 ‘할리우드 세대 교체를 알리는 감독 데뷔!’라고 하던데 정말로 이렇게 교체해버릴 수 있는 게 할리우드면 그냥 우리 한예종 영상원 학생들이 가서 단번에 접수해버리면 될 것 같습니다.

배경은 노란 방인데, 영화 제목(Backrooms)처럼 어딘가 저 너머에 있어요. 예전 가정집에 많던 노란 장판 기억나시나요. 딱 그런 장판색 방들이 계속 이어집니다. 어디서? 주인공 클락(추이텔 에지오포)이 운영하는 가구 매장 벽 너머에서요.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은 가구 매장 점장인 클락과 그가 정신과 상담을 받는 심리치료사 메리(레나테 레인스베) 두 명입니다. 클락은 건축가가 되고 싶었으나 되지 못했고, 아내와 불화하다 이혼했고, 사업은 잘되지 않습니다. 쌓인 게 많다보니 상담까지 받게 된 건데, 상담을 해주는 메리도 알고 보면 역시 쌓인 게 많습니다. 어릴 때 엄마에게 정신적으로 억눌려 살았거든요. 클락은 매장을 집 삼아 잠도 자는데 어느 날 밤, 벽을 통과하면 저 너머에 노란 장판의 방이 계속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 방의 존재를 메리에게도 알리고, 부점장과 그녀의 남자친구에게 기이한 공간을 함께 조사하자고 합니다.
클락과 동행인들이 탐사를 나선 기이한 노란 장판방에는 가구가 쌓여있고, 오물도 투척돼 있으며 두려움을 주는 괴물도 있는 것 같아보이고, 옆쪽 아래쪽 위쪽에 계속 방이 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동행인들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괴물에 끌려갑니다. 여기서 튀어나오겠구만 싶은 딱 그 지점에서 튀어나와서, 이렇게 끌고가겠구만 싶은 딱 그 방식으로 끌고갑니다. 한 명은 나중에 냉장고에 머리만 든 걸 보니 확실히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생사불명.
클락도 정체 모를 존재에게 끌려갔다가 나중에 다시 나타나는데, 매장을 찾아온 메리를 기절시켜 끌고갑니다. 클락은 메리와 대면해서 이전에 했던 정신 상담을 억지로 다시 해요. 당신이 틀렸다면서요. (이때 주변에 일그러진 이미지로 주변인들이 등장하는데 아이디어의 빈곤이 역력. 눈 여러 개, 얼굴 여러 겹. 제작진의 상상력은 어디에)
클락의 상담은 아내에게 쌓인 감정을 풀어내는 건데 메리는 결국 아내가 아니라 클락이 문제라면서 본심을 드러냅니다. “아내가 왜 떠났는 줄 알아? 당신이 징징대서 그래. 맨날 세상 탓 아내 탓만 하잖아!” 한 방 얻어맞은 클락. 그는 갑자기 나타난 괴물에게 먹힙니다. 그 괴물은 메리를 쫓아오고요. 괴물을 자세히 보면 얼굴이 클락을 닮았어요. 즉, 클락은 자기 자신에게 먹힌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 현실을 부정하고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잠식당해버린 것이죠.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들은 인간의 잠재의식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무의식의 총합인거죠(최대한 그럴싸하게 해석해보았어요).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장면이 있었는데 노란 방이 X축으로도 이어지지만, Y축으로도 계속 하강하면서 생겨나거든요. 같은 방이라도 아래로 갈수록 점점 비워지는데, 점점 파고드는 잠재의식을 표현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더군요. 이런 관점이면 뭐든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해석을 그럴싸한 걸로 뭐든 갖다붙이면 되니까요. 편리하죠.
‘백룸’을 보다가 떠오른 미드가 있었습니다. 명작 미드 ‘로스트’. 물론 ‘로스트’와 ‘백룸’은 차원이 엄연히 다릅니다. ‘로스트’는 끝내 회수하지 못한, 연출가와 각본가가 감당하지 못한 떡밥이 있긴 했어도 인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작품이었으니까요. 6년간 이어진 드라마와 2시간 영화를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호기심을 유발하는 숫자와 이미지, 상징을 여기저기 투척해놓는 방법은 유사하더군요.
방법 이상의 의미로 나아가려면 그게 뭔지 이야기와 긴밀하게 연결돼야 하는데, ‘백룸’은 그렇지 못합니다. 긴밀하게 보여줄 게 없다는 게 일차원적인 대사에서 드러납니다. 노래는 가사, 영화는 대사가 중요하다고 보는 저로선(그래서 제가 레터에 대사를 많이 넣는 편) 설정과 줄거리를 입으로 설명해주는 ‘백룸’의 얄팍한 시나리오에 점수를 주기 어려웠습니다. 등장 인물이 입으로 백룸 공간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단순 반복하는데(“여긴 정말 거대해요!” “여기 정말 엉망이에요! “여기 공간들!!” “여기 매일 왔는데 너무 방대해요!” “여긴 아름다워요!!”), 말로만 그러지 말고 실제로 거대하고 엉망이고 방대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좀 보여주셨으면 좋았을텐데요.

첫문단에서 말씀드렸듯, ‘백룸’은 결론이랄 게 없습니다. 결론이 없는 게 결론이에요. 메리는 클락의 무의식 괴물을 벗어나 탈출한 줄 알았지만 어떤 사람들한테 잡힙니다. 이 작품의 흑막인 배후 조직이에요. 이 역시 너무나 익숙한 설정. 예전에 MRI 기계 만들던 회사가 이 공간을 발견해서 조사 중이라면서 메리를 붙잡아두고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저를 또 실망시킨 대사가 나옵니다. 메리에게 질문하던 사람이 백룸이 뭔지 본인도 모른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인생, 인류 전체의 역사에 있어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어요. 여긴 알 수가 없어요. 설명이 안 돼요.” 네, 설명 못하시겠죠. 몰라도 됩니다. 그저 미지의 이미지만으로도 때론 충분하니까요. 그런데 모른다면서 왜 중요하다고 하시는지. 이렇게 식상한데요. 설명 안 되는 걸로 설명을 갈음하실 줄 너무 짐작이 됐는데요.
끝없이 결론을 지연시키면서 돈을 끌어모으는 작품, 제작사 입장에선 이익이 되겠지요. 하지만 관객은 언제까지 기다려야할까요. 그러다 몇 년후 뜬금없는 결론으로 마무리하게 되는 걸까요. 그럴 때의 허탈함, 당해보신 관객이라면 아실 겁니다. ‘백룸’이 그렇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흥행이 잘되고 있으니 아마 속편 제작을 할 것 같네요.
혹시 ‘블레어 위치’(1999) 기억나세요? 페이크 다큐로 유명했던 공포 영화. 그 영화도 사실 내용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엄청나게 입소문 타서 흥행 대박이 났죠. 물론 속편 나왔고 물론 잘 안 됐습니다. 애초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었으니까요. 전 텅 빈 공갈빵 같은 영화가 흥행 잘될 때마다 ‘블레어 위치’가 떠오르는데 ‘백룸’도 그랬습니다. ‘백룸’을 돈 내고 보느니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한 점을 골똘히 바라보는 게 지적인 자극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제 의견 말씀드리며, 전 다음 레터에서 뵐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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