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45조원 던졌다…'삼전·닉스' 팔고 코스닥으로 대이동
국민성장펀드 효과에 바이오·로봇·우주항공주로 자금 이동
"셀코리아 아니다"…전문가들 "반도체 비중 조정 과정" 진단

외국인 투자자들이 5월 한 달 동안 국내 증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코스피 순매도에 나섰다. 특히 매도 물량 대부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집중된 반면, 코스닥 시장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국내 증시의 수급 지형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 들어 29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44조715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는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규모다. 직전 기록인 올해 3월(35조7477억원)을 불과 두 달 만에 갈아치웠다.
외국인은 지난 7일부터 29일까지 16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가장 긴 연속 순매도 기록이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같은 기간 35조940억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 물량을 받아냈다. 이 역시 역대 최대 수준이다.
◆ 외국인 매도 82%가 '삼전·닉스'
이번 외국인 매도는 사실상 반도체에 집중됐다.
외국인 순매도 1위는 SK하이닉스로 20조7160억원, 2위는 삼성전자로 16조270억원을 기록했다.
두 종목 순매도 규모만 36조7430억원으로 전체 코스피 순매도의 82%를 차지했다.
올해 들어 코스피는 100% 넘게 상승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164%, 258% 급등하며 시장 상승을 주도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반도체 업황 기대가 커졌지만 최근 들어서는 단기 급등 부담과 피크아웃(정점 통과) 우려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외국인 매도가 한국 증시 자체를 떠나는 '셀 코리아'가 아니라 급등한 반도체 비중을 줄이는 차익실현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 코스닥은 역대 최대 순매수
반도체에서 빠져나온 외국인 자금은 코스닥으로 향했다.
외국인은 이달 코스닥 시장에서 2조837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는 코스닥 시장 개설 이후 최대 규모다.
기존 최고 기록이었던 2023년 7월(2조7923억원)도 넘어섰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파두였다. 이어 에코프로비엠, 에이비엘바이오, 이오테크닉스 등이 뒤를 이었다.
특징은 매수 종목들이 대부분 AI, 바이오, 로봇, 첨단장비 등 성장산업에 속한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최근 출범한 국민성장펀드가 외국인 투자심리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국민자금과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혁신기업에 투자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상당수 자금이 기술특례 상장사와 첨단산업 기업에 투입될 예정이어서 코스닥 시장 전반에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 "셀코리아 아닌 리밸런싱"
전문가들은 이번 수급 변화가 구조적 자금 이탈이라기보다는 포트폴리오 조정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민성장펀드가 출시된 가운데 제약·바이오, 로봇, 우주 항공 등 첨단산업에 속한 기업들로 자금 공급이 확대될 수 있다는 기대가 부각됐다"며 "코스닥은 첨단 산업 및 성장주 비중이 높아 코스피 대비 정책 모멘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의 한국 투자 비중은 여전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코스닥 시장은 유동성과 시가총액 측면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규모로 장기 체류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연말 반도체 고점론 고개
다만 증권가에서는 올해 하반기 반도체 업종에 대한 경계론도 조금씩 제기되고 있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과거 반도체 업종 주가는 영업이익 전망치가 하향 조정되기 전에 먼저 고점을 형성했다"며 "현재 컨센서스 기준으로는 내년 중 이익 사이클 정점이 예상되는 만큼 올해 말부터 내년 초 사이 주가가 선행적으로 고점을 형성할 가능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현재 시장의 핵심 변수는 AI 메모리 호황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외국인의 45조원 매도 역시 한국 증시를 떠나는 신호라기보다는,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은 반도체 비중을 줄이고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일부 자금을 이동시키는 과정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우세하다.
시장에서는 향후 반도체 조정 여부와 함께 바이오·로봇·우주항공 등 코스닥 성장주로의 자금 유입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새로운 순환매의 시작이 될지 주목하고 있다.
Copyright © E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