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발탁서 깜짝 선물로…'물건' 이기혁이 등장했다 [임성일의 맥]
대범하고 영리한 플레이…에너지 달라진 스리백

(솔트레이크시티=뉴스1) 임성일 스포츠전문기자 = 5-0 대승으로 끝난 트리니다드토바고와의 평가전은 오랜만에 내린 단비같은 경기였다. 얻은 게 많았다.
우선 본선 성패의 중요한 열쇠가 될 '고지대 경기장'에 꽤 적응한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들 모두 입을 모아 "해볼 만하다" 했고 실제 움직임도 원활했다. 골 침묵이 길어져 팀에 고민을 안겼던 손흥민과 조규성이 나란히 득점포를 가동했으며 여유 있는 리드 덕분에 다양한 선수들을 점검할 수 있었다. 건강하게 돌아온 황인범도 반가웠다.
경기 후 홍명보 감독도 "월드컵 체제의 시작을 알리는 경기였는데 결과도 내용도 좋았다. 상대 전력이 조금 약하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필요하고 원했던 평가전의 의미를 잘 찾았다"며 "손흥민이 골을 넣은 것, 부상에서 돌아온 황인범, 사실상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기혁 등 전체적으로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날 빼놓을 수 없는 소득이 바로 '깜짝 발탁'이라 평가된 이기혁이다. 이전까지 A매치는 2022년 동아시안컵이 유일했던, 홍 감독 표현처럼 사실상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기혁은 국제무대 초짜가 맞나 싶을 정도의 대범함과 이 팀에 꾸준하게 승선한 것 같은 호흡으로 지켜보는 이들의 탄성을 끌어냈다,

트리니다드토바고전에서 왼쪽 스토퍼로 나선 이기혁은, 이날 후방의 키맨이었다. 이기혁이 일반적인 형태의 스리백보다 더 넓은 공간을 영리하고 효과적으로 커버하면서 그 앞에 배치한 윙백 옌스 카스트로프의 공격적인 장점이 보다 빛날 수 있었다.
공격 시 이기혁이 포백의 풀백처럼, 옌스는 윙어처럼 움직인 덕분에 지나치게 수동적이라던 홍명보호 스리백이 능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었다. 특히 반대편 라인을 치고 올라가는 김문환을 겨냥한 왼발 롱패스는 백미였다. 마치 과거 대표팀에서 기성용이 보여주던 '대지가르기' 패스가 연상될 정도였다.
홍 감독은 경기 후 "이기혁과 옌스의 장점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역할과 움직임을 주문했다. 전체적으로 좋았다, 뒤에서 나가는 정확한 왼발 패스도 우리가 살리고자 하는 의도적인 작업이었다"면서 새내기에게 별도의 '지시'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가진 장점을 봤기에 첫 경기부터 많은 것을 주문했는데, 무리 없이 소화했다. 스스로도 즐겼다.
경기 후 만난 이기혁은 "내게 주어진 공간이 넓었고 때문에 공을 잡았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생각했다. 우리 공격수들의 움직임이 좋아 최고의 선택을 내리려 신경썼는데 그 선택이 오늘 좀 잘 되지 않았나 싶다"는 당찬 소감을 밝혔다. 역할 비중이 컸던 게 부담 아닌 즐거움으로 다가왔다는 의미다.
뱃심이 두둑한 선수다. 경기 중 '마르세유 턴'까지 선보였다. 안정이 기본인 수비수 입장에서는 '통통 튀는 플레이'가 과하면 독이 될 수 있고 때문에 홍 감독도 "아직 고쳐야할 점이 있다"고 짚었으나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깜짝 발탁'에 이어 '깜짝 선발'까지 훌륭하게 소화한 이기혁은 곧바로 다음을 이야기했다.
그는 "큰 실수를 하진 않은 것 같아 기쁘지만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다음 경기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으며 "체력적으로 잘 준비됐다 생각했는데 막상 경기에 들어가니 부침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더 신경 써야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 같다"고 했다.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는 그릇이다.
90분 풀타임을 뛰었는데 흡 잡을 게 많지 않았다. 후반 16분 수비라인의 기둥 김민재가 들어가 함께 뛰었는데, 경기 후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괴물' 대신 이기혁에게 향했을 만큼 존재감이 컸다.
무언가 계속 아쉬움이 남던 홍명보호 수비라인이 오랜만에 호평을 들었던 날, 그 중심에 이기혁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깜짝 선물처럼, '물건'이 등장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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