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언박싱] “경쟁사 볼까 알프스에 공장 숨겼다”… 비욘세도 빠진 스와로브스키의 ‘마법’

김수연 2026. 6. 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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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와로브스키 홈페이지 캡처

<30> 스와로브스키


경쟁사에 기술을 뺏길까 두려워 눈 덮인 알프스 산맥 깊은 곳으로 숨어든 유리 세공 장인의 아들. 그가 남긴 1급 비밀 배합률과 정교한 커팅 기술은 평범한 유리를 마릴린 먼로와 비욘세가 열광하는 ‘크리스털계의 샤넬’로 탈바꿈시켰다. 1895년 오스트리아의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 초고가 명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대중적 럭셔리’라는 독보적 영역을 개척한 스와로브스키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다니엘 스와로브스키가 애지중지한 기술은 정밀 크리스털 절삭기술이다. 그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다 발명한 절삭기로 그간 수작업으로 해 오던 유리 장식을 기계화했다.

창업 초기 스와로브스키의 경쟁력은 디자인보다 절단 기술과 광채 구현 능력이었다. 정교한 컷팅을 통해 일반 유리보다 훨씬 강한 반사광과 굴절감을 구현했고, 이는 스와로브스키만의 시그니처가 된다.

1913년에는 다니엘이 인조 크리스털 생산에 성공하게 되고,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대량생산도 본격화했다. 다니엘은 규석, 탄산칼륨, 산화연을 배합해 인조 크리스털을 만들었다. 그 배합률이 스와로브스키의 핵심 기술이다. 크리스털의 투명도와 굴절률, 무게감을 가르는 배합률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스와로브스키의 기술력은 크리스털 커팅면에서 드러난다. 커팅면이 28개나 되는데, 이는 평균 12면 정도인 경쟁업체들의 크리스털 커팅면과 비교된다.

뛰어난 기술력으로 탄생한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은 마릴린 먼로부터 마돈나, 비욘세 등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과 팝스타들의 선택을 받았다. 무대에 오른 이들 스타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셈이다.

스와로브스키에도 위기는 있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크리스털 원료가 부족해진 것이다. 당시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 절삭기계를 변형시켜 다양한 절삭 연마기계를 만드는 것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이를 기반으로 1919년 오스트리아 슈바르츠 지방에 접합 연마기계만을 생산하는 자회사 ‘티롤릿’을 설립하기도 했다.

두 번째 위기가 온 것은 1970년대 후반 오일 쇼크 때였다. 다니엘의 손자 만프레트가 경영을 맡았던 시절이다. 오일 쇼프 여파로 매출이 급감하자 만프레트는 소비재 사업으로 눈을 돌린다.

1976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개최 시점에 맞춰 기념품용 ‘크리스털 생쥐 모형’을 출시한 것이 시작이다. 이듬해인 1977년엔 반지, 목걸이 등 주얼리 컬렉션도 출시했다. 이는 스와로브스키가 액세서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토대가 된다.

스와로브스키는 럭셔리와 대중성 사이의 경계를 절묘하게 파고든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는다. 천연 보석 브랜드처럼 초고가 전략만 고수하지 않았다. 비교적 접근 가능한 가격대의 주얼리와 오브제를 통해 ‘대중적 럭셔리’로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이를 통해 스와로브스키는 단순히 ‘반짝이는 유리’가 아닌, ‘빛을 소비하게 만드는 감성 산업’을 구축해 나갔다. 초고가 명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합리적 럭셔리’ 수요를 흡수하며 스와로브스키는 여전히 ‘빛’을 팔고 있다.

김수연 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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