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피터 하윗 브라운대 명예교수 초청 강연] “AI·인구 위기 맞은 한국, 기득권 허물고 벤처·인재 키워라”

박근태 선임기자 2026. 6. 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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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하윗 브라운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제학 박사, 미국 경제학회 석학회원, 전 미국 ‘경제학리뷰’ 편집위원,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사진 KDI

“이윤 추구를 향한 동기를 먼저 존중해야 한다. 다만 기존 기업은 물론 성공한 혁신기업조차 새로운 혁신에 맞서 기득권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202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피터 하윗(Peter Howitt) 브라운대 명예교수는 5월 1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에서 경제· 인문사회연구회와 한국개발연구원 주최로 열린 ‘성장 추세 반전을 위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한국이 가야 할 혁신의 본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윗 교수는 1987년부터 평생 연구 동반자이자,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필리프 아기옹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와 함께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현대 수학적 모델로 만든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 분야 세계적 석학이다.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는 하윗 교수는 ‘한국 경제가 5년마다 성장률이 1%포인트씩 계단식으로 하락해 왔다’는 ‘5년 주기 하락설’에 대해 “불가피하지만 체질 개선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진통”이라고 진단했다. 또 인공지능(AI) 혁명, 보호주의 확산, 급격한 인구 변동, 중진국 함정을 한국이 직면한 4대 도전 과제로 꼽았다. 하윗 교수는 그러면서 “이제는 과거의 추격형 제도를 모두 폐기하고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 전략으로 거시 정책의 나침반을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과거 한국은 ‘후진국 이점’을 활용하며 성장했다. 이는 세계시장의 기술을 모방하고, 대규모 제조 시설을 구축해 저비용 대량생산으로 빠르게 따라잡는 ‘따라잡기’ 전략의 전 세계 최고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하지만 하윗 교수는 “한국이 모방할 대상이 없는 세계경제의 ‘최첨단 프런티어’에 진입한 순간,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한 현상이 된다”고 했다. 하윗 교수에 따르면, 성장은 새로운 혁신이 오래된 기술을 도태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이 다시 혁신의 동기가 되는 선순환 구조를 갖는다. 여기에는 치명적인 딜레마가 있다. 파괴적 혁신을 통해 시장을 장악한 기득권 기업마저도 자사 지위를 잃지 않기 위해 혁신 기업을 억누르려 하기 때문이다.

하윗 교수는 “한국이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려면 기득권의 저항을 이겨내고 중소 기업과 창업 초기 기업이 끊임없이 창조적 파괴를 일으킬 수 있는 투자와 사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윗 교수는 AI를 과거 성장을 촉진한 증기기관이나 전기 같은 ‘범용 기술’이라고 진단했다. 전기가 도입된 후 생산성이 폭발하기까지 30년이 걸린 것처럼, AI 역시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경제활동 전반에서 조직적 변화가 일어날 때 비로소 혁신이 완성될 것이라고 했다.

어제의 혁신도 오늘의 걸림돌 된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AI에 의한 일자리 소멸’ 공포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AI는 루틴한 인지 업무를 대신 수행함으로써 인간이 더 창의적인 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저숙련 노동자의 생산성을 높여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파괴적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희생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는 성장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하윗 교수는 한국이 주목해 볼 모델로 덴마크의 ‘유연 안정성(flexicurity)’ 시스템을 꼽았다. 1990년대 등장한 이 모델은 유연한 해고·고용과 후한 실업급여, 적극적 재취업 지원을 결합한 노동시장 제도다. 하윗 교수는 “무엇보다 사람이 기술혁신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안전망이 있어야 국가 전체의 혁신 속도가 빨라진다”고 강조했다.

AI가 정답을 찾아내는 평상적인 업무를 선점한 시대에 암기 위주 교육은 설 자리를 잃었다. 하윗 교수는 “교육 분야는 원래 혁신이 가장 느린 영역으로, 현재 교육을 비판적 사고와 창의성 등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강연 이후 이어진 하준경 대통령비서실 경제성장수석과 대담에서는 최근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오갔다. 하 수석은 2003년 브라운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는데, 그곳에서 논문을 지도해 준 사람이 바로 하윗 교수다. 하윗 교수는 “과거 이스트먼 코닥은 세계 최고 사진 기술로 세계를 선도했지만, 디지털카메라 기술을 외면하다가 결국 파산한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거대 기술 기업은 자사의 핵심 사업이 위협받을 것을 알면서도 오픈AI, 앤트로픽 등 신생 AI 스타트업에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며 “한국이 선도 국가로 도약하려면 대기업 위주 자원 배분에서 벗어나 창조적 파괴의 궁극적 원천인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윗 교수는 ‘AI세’ 도입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하윗 교수는 “AI는 아직 초기 단계 기술이며 미래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다”며 “당장 급진적인 과세보다 기업의 성과와 임금 보상을 연동하는 방식이 현재로서 더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하윗 교수는 또 “추가적인 수익 공유제나 임금 인상 요구에는 대칭성이 필요하다”며 “좋은 시스템은 임금 보상이 기업 수익성과 연동되는 체계이며, 기업 이익이 올라갈 때 노동자가 이득을 본다면, 이익이 줄어들 때 보상이 감소하는 위험도 공평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가 반도체 등 특정 분야에 의존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AI 시대에 반도체는 필수 인프라”라며 한국이 보유한 강력한 생태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선 특정 산업에 안주하지 말고 전략적인 산업 정책을 통해 새로운 표준을 세우는 리더 기업이 다양한 분야에서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윗 교수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에 대해 “인구 규모보다 중요한 것은 인적 자원의 질”이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인재 한 명이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에는 높은 교육 수준을 갖춘 창의적 인재가 혁신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등 선진국이 이민 장벽을 높이는 지금이 오히려 고숙련 인재를 흡수할 기회라고 조언했다.

Plus Point
기술혁신은 어떻게
지속 성장을 이끄나

2025년 노벨 경제학상은 이른바 ‘창조적 파괴’로 불리는 기술혁신을 통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의 메커니즘을 규명한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필리프 아기옹 프랑스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피터 하윗 교수에게 돌아갔다. 모키어 교수는 경제사적 관점에서 인류가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정체기를 깨고 어떻게 ‘지속적 성장’을 이뤄냈는지 증명했다. 그는 유용한 지식을 자연계의 법칙을 설명하는 ‘명제적 지식’과 실무적인 지침이 되는 ‘처방적 지식’으로 분류하고, 두 지식 간 긴밀한 피드백이 일어나고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혁신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아기옹 교수와 하윗 교수는 ‘창조적 파괴’를 현대 거시경제학적 수학 모델로 제시했다. 1992년 발표한 공동 연구는 새로운 기술과 고품질 제품을 개발한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고, 기존의 선두 기업은 도태되는 역동적인 사다리 오르기 과정을 명쾌하게 입증했다. 세 학자는 정부, 대학, 기업 간 긴밀한 협력과 학문의 자유,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를 장려하는 환경을 유지할 때만 성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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