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의 일본 탐구 <82>] 시골 양조장에서 만든 닷사이, 일본 1위 사케로 우뚝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2026. 6. 1.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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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닷사이 본사가 있는 야마구치현의 닷사이 매장. /사진 최인한. 세계 최초로 우주에서 양조된 사케가 담긴 닷사이. /사진 닷사이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 현 미래에셋증권 일본리포트 연재 중, 전 일본 유통과학대 객원교수, ‘일본에 대한 새로운 생각’ 저자

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을 가는 사람은 드물었다. 1980년대 말,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데다 1인당 국민소득도 1만달러(1994년 명목 GDP 기준)에 불과해 해외여행은 특정 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일본 출장을 다녀온 사람이 사 온 사케(니혼슈·쌀로 빚은 일본 전통 술)는 아주 귀했다. 물이 맑고, 쌀 맛이 좋은 중북부 니가타현에서 생산되는 ‘고시노칸바이(越乃寒梅)’ ‘구보타(久保田)’ 등은 술 좀 마시는 사람 사이에서 최고 선물이었다.

당시 이름조차 생소했던 ‘닷사이(獺祭)’는 고급 사케 대열에 끼지 못했다. 혼슈(본섬) 서쪽 끝에 있는 야마구치현의 시골 양조장에서 탄생한 닷사이가 어떻게 짧은 기간에 1위 사케 브랜드가 됐을까. 유통∙마케팅 연구자인 최상철 간사이대 교수(상학부)는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견고한 밸류 네트워크 구축이 핵심 비결”이라면서 “사케의 주력 생산지가 아닌 지역에서 탄생한 닷사이가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한 것은 저성장기에도 신업태와 신제품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일본 사케 시장 부진에도 닷사이 성장

세계적으로 ‘사케 붐’이지만, 정작 일본 국내시장에서는 양조장의 도산과 휴·폐업이 늘고 있다. 일본 사케 시장 규모는 피크 때인 1975년과 비교해 77%(2023년 기준) 축소됐다. 제조 면허가 있는 사업장 수도 같은 기간 절반 이하로 줄었다. 최근 해외 수출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사케 업체가 경영난을 겪은 가장 큰 배경은 술 원료인 쌀값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 술병 등 다른 원가 상승 요인도 많다. 2020~2022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음식점의 영업 축소로 사케 소비량이 대폭 감소했는데, 지금도 소비량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전반적인 시장 축소 속에 야마구치현에 본사를 둔 닷사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업체는 2000년대 들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매출과 수출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소비자가격은 일본 최고 브랜드로 꼽히던 구보타, 고시노칸바이보다 두세 배 비싸다. 우리나라 고급 호텔이나 강남 이자카야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다. 최고가 제품인 ‘닷사이 23(현미에서 77%를 깎아낸 원료로 만든 술)’은 한 병(720 )에 30만~40만원에 달한다. 일본 현지 면세점 가격도 10만원 안팎이다.

닷사이 세계 최초 우주 양조 성공

닷사이는 제조 공정에 정보기술(IT)과 전통적인 장인의 기술을 통합한 제조법으로 유명하다. 올해도 술 양조에서 세계 최초 기록을 세웠다. 닷사이와 미쓰비시중공업은 4월 28일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인류 최초로 사케 양조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달에서 사케 제조를 목표로 하는 ‘닷사이 MOON 프로젝트’의 1단계로 국제우주정거장 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실험 장치에서 알코올 발효 과정을 확인했다. ISS 내부에서 발효를 마친 모로미(거르지 않은 술)는 지구로 돌아온 뒤 알코올 도수가 12%를 기록했다. 지구로 귀환한 약 260g의 모로미는 닷사이 본사 양조장에서 압착 과정을 거쳐 116의 사케로 완성됐다. 이 가운데 100 를 티타늄 병에 담은 ‘닷사이 MOON 우주양조’는 1억1000만엔(약 10억3700만원)에 팔렸다.

닷사이 경영 혁신 이끄는 사쿠라이 회장

일본 1위 사케를 만든 주역은 오너 가문인 사쿠라이 히로시(櫻井博志) 회장이다. 사쿠라이 회장은 대학 졸업 후 1976년 가업인 ‘아사히주조’에 입사한 뒤 양조 방향성과 경영을 둘러싸고 부친과 대립하다가 퇴사한다. 그는 부친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1984년 복귀한 뒤 닷사이의 경영 혁신을 이끌고 있다. ‘닷사이’ 어원은 수달이 잡은 물고기를 물가 언덕에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유래한다. 시 또는 문장을 지을 때 많은 참고 자료를 넓게 펼쳐두는 것을 뜻한다. 사쿠라이 회장은 대표 취임 후 1990년 준마이 다이긴조(純米大吟釀) 닷사이를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기존 다품종 소량 생산을 포기하고, 닷사이 브랜드만 생산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기존 사케 업계에 없던 ‘사카마이’ 77% 절삭에 도전, 최고급 사케의 생산과 보급에 성공했다. 사케 업계의 전통적인 상식을 완전히 깨뜨린 발상의 대전환이다.

사쿠라이 회장은 밸류 네트워크 구축에도 성공했다. 지방인 야마구치현에서 1위 지위를 포기하고, 거대 시장인 도쿄에 과감히 진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닷사이는 기존 술 업계의 관행이던 도매상 채널 판매를 지양하는 대신,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이벤트와 온라인 등을 활용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2025년에는 1000회가 넘는 현장 판촉 이벤트를 실시했다. 원료인 쌀(山田錦·야마다니시키)의 생산량 확보를 위해 지역 협력 농가와 공존 방안도 만들었다. 경영난을 겪는 사케 소매 전문점의 존속을 위해 전국 1300여 개 제조 업체와 공조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닷사이는 2025년 6월 회사명도 아예 ‘주식회사 닷사이’로 변경하고,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적이다. 2023년에는 미국 뉴욕에 양조장을 만들어 ‘닷사이 블루’를 생산하고 있다. 2024년에는 프랑스 파리에 15개의 미슐랭 스타를 자랑하는 모던 프렌치의 거장 야이크 알레노와 협업한 ‘이자카야 닷사이’를 출범시켜 유럽 시장을 공략 중이다. 우주 양조에 나선 것도 글로벌 브랜드 파워 강화를 위한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다.

Plus Point
사쿠라이 회장,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게 성공 비결

사쿠라이 히로시 닷사이 회장 /사진 닷사이

사쿠라이 회장은 지난 5월 초 일본 언론(후진코론)과 인터뷰에서 경영 철학을 소상히 털어놨다. 다음은 일문일답.

닷사이는 여성 팬이 많다.

“흔히 ‘여성의 시선을 맞춘 상품 개발’이라고 말하지만, 그건 ‘여성’을 폄하하는 발언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달면 좋을 것’ ‘색을 넣으면 좋을 것’이라고 남성이 생각하면 안 된다. 결국은 좋은 물건, 완벽한 물건을 만드는 게 답이다. 우리 회사는 ‘맛있는 술을 만든다’는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에 ‘진품’을 선호하는 여성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성층 공략에 성공한 비결은.

“고급 일식당에서 와인잔으로 닷사이를 마시는 여성을 자주 만난다. 작은 와인잔으로 사케를 마시는 것은 우리 회사에서 적극 권유한 것이다. 나무 술잔에 사케를 부어 마시던 기존 방식은 여성에게 매우 불편했다. 그래서 와인잔을 생각해 냈다. ‘전통’이 중요하지만, ‘기능’도 매우 중요하다.”

닷사이의 경쟁 술을 꼽는다면.

“와인처럼 허리를 쭉 펴고 멋지게 마시는 덕분에 여성이 선호한다고 판단한다. 닷사이는 뒷골목의 이자카야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혼자 마시는 그런 술이 되고 싶진 않다. 슬플 때보다는 기쁠 때 함께 마시는 술이 되고 싶다. ‘축하주’라고나 할까. 따라서 닷사이의 타깃은 ‘와인’보다 ‘샴페인’이다.”

늘 패션에 신경 쓰는 것 같다.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브랜드’를 이끄는 회장이나 사장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쓴다. 해외 출장 때 파티가 열리면 가능하면 일본 전통 옷을 입는다. 패션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어서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게 맞다.”

사업 실패로 낙담한 사람에게 조언한다면.

“세상일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업에서 예측한 대로, 계산한 대로 승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진 싸움인지, 이긴 싸움인 지 잘 분간이 안 되는 게 대부분이다. 사업은 길게 봐야 한다. 그러다 보면, 뭔가 보인다. 패자부활전은 얼마든지 있다. 큰 실패조차도 ‘실패 방식이 좋았다’고 얻는 게 분명 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그런 기회가 절대적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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