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호 "저처럼 평범한 선수도 한국오픈 우승하는 날 오네요"
예선부터 본선 우승까지 새역사
7월 디오픈 챔피언 출전권 확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최선”
“가족 덕분에 9개 버디 성공”
[이데일리 스타in 주미희 기자] 지난달 24일, 충남 천안시의 우정힐스 컨트리클럽에서 막을 내린 코오롱 제68회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에서 양지호(37)가 기적을 썼다.

그렇게 추가 합격자로 출전한 본선 무대에서 양지호는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 한 번도 선두를 내주지 않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최종 합계 9언더파 275타)을 이뤘다. 예선 통과자가 한국오픈 정상에 오른 것은 1958년 대회 창설 이후 처음이다. 양지호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한 이유다.
양지호는 31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그 어려운 우정힐스에서 3라운드까지 14언더파를 치고 7타 차 선두를 달린 것 자체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거기에 우승 상금과 보너스를 합쳐 7억 원이라는 큰 상금까지 받게 됐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우승이었다”고 돌아봤다.
KPGA 18년차…한국오픈 첫 우승

골프계에는 ‘지키는 골프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다. 추격자는 잃을 것이 없지만 선두는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수 한 번에 큰 타수를 잃을 수 있는 우정힐스 같은 난코스에서는 부담이 더욱 크다.
양지호 역시 “내가 못 치면 7타 차는 금방 따라잡힐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무너지면 내 골프 인생도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담이 컸다”고 말헀다.
양지호는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휴대전화 메모장에 스스로를 다잡는 문구를 적어뒀다. ‘후회없는 경기. 내 것을 지키자. 바람을 이기려 하지 말자. 순리에 맡기자.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아내와 가족, 무럭이(뱃속의 첫째 아이)가 있다. 침착하게 즐기자’

KPGA 투어 데뷔 18년 차인 양지호는 한국오픈 우승을 위해 평소 하지 않던 행동까지 했다. 4타 차 선두로 2라운드를 마친 뒤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끊었고, 골프 방송도 보지 않았다. 지인들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경기를 마친 뒤에는 아내 김유정 씨와 저녁 식사만 한 뒤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운동만 한 뒤 잠들었다.
양지호는 “이번에는 정말 하늘이 주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괜히 외부 이야기에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든 연결을 차단했다”고 설명했다.
정작 양지호는 자신을 스타급 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스타 선수는 아니라는 걸 스스로 잘 안다”며 “그래도 평범한 선수도 한국오픈 같은 최고 권위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우승 이후에는 오히려 더 겸손해졌다고 했다. 양지호는 “잘될수록 더 고개를 숙여야 한다”며 “일부 어린 선수 중에는 성적이 좋아지면서 건방져지는 경우도 있는데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잘될 때일수록 겸손해야 하고, 반대로 안 될 때는 오히려 어깨를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오픈 출전…부모님 꿈도 이뤄드렸어요”

양지호는 “메이저 대회는 물론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대회도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어 디오픈이 더욱 기대된다”며 “특히 아버지가 메이저 대회를 직접 가보는 게 평생 꿈이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과 아내가 함께 영국에 가기로 했다. 유럽에 사는 친누나도 오기로 했다”며 “주니어 시절부터 프로가 되기 전까지 모든 것을 희생해주신 어머니께도 최고의 효도가 될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1, 2번 홀을 연속보기로 시작했던 양지호는 이후 버디 9개를 몰아치며 단숨에 선두로 올라섰다. 그는 “아내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제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며 “정말 딸을 원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11월이면 첫 아이가 태어난다. 그 순간부터 책임감이 확실히 생겼다”며 “이제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안 돼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각오를 다졌다.
한국오픈 우승으로 양지호는 상금랭킹 1위(5억 2372만 원), 제네시스 대상 포인트 3위(1666.70점)에 오르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내고 있다.
그는 “분수에 안 맞을 정도로 큰 대회에서 우승한 만큼 더 이상 욕심을 부리면 안될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1승을 더 하고 싶다. 유럽 DP 월드투어와 공동 주관하는 제네시스 챔피언십 우승도 상상해봤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주미희 (joom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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