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기의 사이언스토리] ‘여왕벌’과 ‘수벌’로 시작한 드론의 100년 역사
회전익 드론은 취미로 대중화, 동력원과 비행 효율 문제 더 개선해야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의 명장면은 아마도 노란색 프로펠러 비행기가 홍학 떼를 가로지르는 모습일 것이다. 영화에 사용된 비행기는 영국 드 하빌랜드(de Havilland)사의 1929년형 복엽기다. 이 회사의 후속 모델 DH82는 호랑나방을 뜻하는 ‘타이거 모스(Tiger Moth)’로 불렸는데,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기(UAV)가 바로 이 비행기에서 시작되었다. 대개 드론이라면 중국 DJI 스타일의 ‘전기 회전익’을 떠올리지만, 그 역사는 훨씬 넓고 깊다. 한국 드론 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비행기가 무기로 사용되며 무인기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가장 절실한 곳은 대공 사격 훈련이었다. 사람이 조종하는 비행기를 표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1935년 영국은 DH82에 무선 조종 기능을 더해 세계 최초의 무인기를 탄생시켰고, ‘퀸 비(Queen Bee·여왕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 미군도 독자 무인기 개발에 성공하는데, 퀸 비에서 영감을 받아 ‘드론(Drone·수벌)’이라 불렀다. 이들은 모두 내연기관을 사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격추 훈련용 드론 수요가 폭발했다.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드론 공장에는 여성까지 투입되었는데, 1945년 미군 홍보 사진사의 눈에 유독 띄는 한 여성이 있었다. 공장에서 드론을 조립하던 ‘노마 진 도허티’라는 19세 소녀였다. 그녀는 사진사의 권유로 카메라 앞에 서며 모델로 데뷔했고, 훗날 이름을 바꾸어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녀가 바로 마릴린 먼로다. 이처럼 무인기의 출발은 군의 표적기(Target Drone)였으며, 그 유산은 지금도 군용 드론 시장의 핵심 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초기 무인기는 당시 비행기 형태를 그대로 따랐다. 양쪽에 고정된 날개(고정익)로 양력을 얻고, 앞의 프로펠러로 전진하는 구조였다. 요즘 드론이라 하면 헬리콥터처럼 고속으로 회전하는 날개(회전익)를 떠올리기 쉽지만, 고정익 무인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고정익은 효율이 높아 적은 연료로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 현대 전장의 핵심인 순항 미사일 토마호크도 기술적 원리로 보면 고정익에 제트 엔진을 얹어 수천㎞를 비행하는 자폭 드론의 원형 격이라 할 수 있다.

회전익 드론이 대중화된 것은 취미용 전기 드론 때문이다. 배터리와 모터로 구동되는 전기 드론은 가격이 낮고 조작이 간편했으며, 높은 곳에서 촬영한 생생한 영상은 직접 비행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회전익 전기 드론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바퀴로 지면을 달리는 전기차와 달리, 회전익 드론은 공중에 떠 있기 위해 무거운 배터리를 모터 힘으로 버텨야 해 체공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 차이는 실전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심 전력으로 부상한 튀르키예의 바이락타르는 소형 내연기관으로 최대 27시간을 비행했고, 이란의 샤헤드는 저가 내연 기관으로 수백㎞를 날아 후방을 타격했다. 둘 다 고정익 무인기다. 샤헤드 한 대의 가격은 약 2만달러(약 3000만원)에 불과하지만, 이를 격추하려면 수십억 원짜리 대공 미사일이 필요하다. 수량 면에서는 전기 회전익 드론이 많을지 몰라도, 핵심 작전에서는 내연기관과 고정익 드론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 생생한 전장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배터리로 구동하는 회전익 드론에 머물러 있다. 이는 국내 드론 산업의 큰 걸림돌 중 하나로 작용한다. 상당수 국내 드론 스타트업이 회전익에 집중한 나머지 체공 시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광범위한 산업·군사 임무를 소화하려면 고정익 설계 기술과 함께 가솔린 엔진이나 제트 엔진 같은 강력한 내연기관 동력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 편향된 인식은 UAM(도심항공교통) 분야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회전익 전기 드론을 크게 키우면 하늘을 나는 택시가 될 것이라는 일차원적인 접근이 시장의 눈을 흐리고 있다. 현재 배터리 에너지 밀도의 한계 내에서는 비행시간이 여전히 짧고, 소음과 도심 추락 안전 대책도 마땅치 않다. 실제로 항공 당국의 높은 ‘감항(항공 안전성) 인증’ 장벽 앞에서 우리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이 상용화 목표 시점을 잇달아 늦추며 속도 조절에 나선 이유다.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무인기 100년의 헤리티지다. 최근 개발되는 UAM 기체들은 회전익의 수직 이착륙 기능과 고정익의 비행 효율을 결합하고 있다. 이륙할 때는 회전익으로, 비행 중에는 고정익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UAM 선두 주자로 꼽히는 조비 에비에이션(Joby Aviation)의 틸트로터(Tilt-rotor) 기체가 대표적이다. 동시에 항공 업계는 배터리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연기관 발전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수소 연료전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수소 드론으로 12시간 이상 체공 기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여왕벌과 수벌로 시작한 무인기의 역사는 드론이 단순히 하늘을 나는 카메라가 아님을 보여준다. 비행 효율과 동력원 문제는 미래 모빌리티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과제다. 결국 미래 모빌리티의 돌파구는 정통 항공공학이 다져온 100년의 기반 기술에서 찾아야 한다. “드론은 곧 전기 회전익”이라는 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나 미래 모빌리티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무인기의 역사적 계보를 다시 들여다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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