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나의 고통이자 열정… 탈북민이 통일의 가장 큰 전략 자산”

윤동주를 사랑한 국문학도 오공단이 북한 전문가가 된 건 ‘아버지의 꿈’ 때문이다. 평양사범을 나와 중국 유학 후 남한에 정착한 부친은 전쟁으로 이북에 남은 가족과 생이별했다. 임종의 순간 딸은 아버지 손을 잡고 약속했다. “통일을 이뤄 아버지 고향 땅을 제가 꼭 밟을게요.”
랜드 연구소, 미국방연구원(IDA),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아시아 안보 전략을 연구했다. 레이건부터 트럼프 1기까지 40년간 대북정책 설계에 관여했다. “내가 하는 모든 연구가 조국의 통일에 보탬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최근 한국에 온 오 박사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할 것 같다”며 비통해했다. “평화적 두 국가? 관 뚜껑에 마지막 못질을 한 셈이죠.” 북핵 기밀 누설, 전시작전통제권 이슈로 덜컹거리는 한미 동맹에 대해서는 “안보와 국방은 정치 게임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 기밀 누설 각료에 책임 물어야
-전작권 조기 전환 이슈가 뜨겁다.
“전작권 환수는 근본적으로 국방의 문제다. 전환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한국이 한미연합군을 지휘할 능력이 있는지부터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한국군에 북핵과 미사일을 탐지하고 방어할 능력이 있는가, 한반도와 주변 안보 환경에 대한 정보력이 충분한가.”
-이재명 대통령은 ‘내일 당장 전작권을 환수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웃음). 그런데 미국이 2029년을 적절한 시기로 보고 있다면 한국도 서두르지 말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방력과 핵 견제력, 전쟁 억제력을 확장해가면 된다. 안보는 정치 게임이 아니다.”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금물’, ‘세계 5위 군사력을 갖고도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굴종적 사고’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미국에 영구 의존해서도 안 된다. 문제는 핵이 없는 한국이 독자적 군사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것이다. 북핵 정보 누설에 화가 난 미국이 대북 정보 공유 제한을 장기화하고 있다는 보도를 봤다. 북한·러시아 관련 첩보 통로가 막혔다는 얘기다. 안보, 국방의 문제는 말만 그럴 듯하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한미 동맹에 균열이 깊어지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2기인데다 한국 정부의 경솔함, 과도한 자신감이 겹쳤다. 더 나빠지기 전에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기밀을 누설한 각료엔 책임을 묻고, 미국엔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
-방위비 증액 등 일본의 재무장도 논란이다.
“대만 위기 등 중국의 군사 대국화를 바라보는 일본 지도자들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본다. 미국도 속으로는 일본의 재무장이 태평양 방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할 것이다. 한국의 입장만 미묘해질텐데, 반일 감정만 부추겨 비판하는 일은 현명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한국 또한 새로운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 北에도 ‘저항의 씨’ 있다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 됐다. 빅터 차 등 대북 제재와 압박을 강조해온 ‘매파’ 전문가들도 비핵화 실패를 인정했다.
“내 말을 듣지 않아 망했다(웃음). 나는 비핵화가가 아니라 정보전으로 뚫어야 한다고 누누이 주장해왔다. 내 말을 그때 들었으면 북한이란 나라는 현재 없을 것이다.”
-왜 정보전인가?
“핵은 북한처럼 가난한 나라가 군사적·경제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핵은 포기 안 한다. 그래서 나는 비핵화보다 북한 주민 스스로 사회혁명을 일으키도록 정보전에 집중해야 한다고 90년대부터 주장해왔다. 인터넷, 방송, 휴민트 등 모든 수단을 통해 전략 정보를 끊임없이 들여보내고 주민들 의식을 개혁하고 개방하면 핵은 무용지물이 된다. 비행기 한 대 값이면 정보전을 할 수 있다. 물론 욕만 먹다 나왔다. 그렇게 40년이 흐르는 동안 북한은 2차 핵 공격도 할 수 있는 다량 핵탄두 소유국이 됐다.”
-이란보다 폐쇄적인 북한에서 정보전이 가능할까?
“자유와 민주화를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기 때문에 더 파괴적일 수 있다. 북한 사회에 ‘저항의 씨’가 있을까라고 물으면, 나는 ‘있다’고 대답한다. 극한의 통제사회에서도 ‘왜?’를 묻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북한 현실을 소설로 폭로한 작가 반디처럼.”
-당신은 1994년 영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반대 의견을 냈다. 그때 핵시설을 파괴했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선제 공격으로 북한의 핵이 없어지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북한은 당하고만 있을까. 나는 선제공격으로 인한 콜래트럴 데미지(부수적 피해), 수천명의 민간인 살상을 감당해낼 수 있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솔직히 나는 당시 미국에게 정밀 핵 타격으로 영변을 없앨 의지와 능력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언제, 어떻게 타격할 것인지, 영변만 없애면 북핵의 뿌리를 뽑는 것인지 묻는 질문에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 탈북민도 품지 못하면서 무슨 통일
-한국 정부가 탈북민의 역량을 과소평가한다고 했더라.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정부가 통일의 가장 큰 전략적 자산인 탈북민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 나는 놀랍다. 북한을 가장 잘 알고, 통일을 위해서면 목숨도 걸 사람들 아닌가. 자유북한방송을 만든 탈북민 대부 김성민은 장성택 처형을 가장 처음 알아낸 사람이다. 첩보전에 이들만큼 유용한 자원이 없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 대통령들에게 탈북민들 만나 브레인스토밍 하라 권유했는데도 한번도 성사된 적이 없다.”
-현 정부는 대북확성기, 대북전단을 금지했다.
“정보라는 것은 계속해서 들어가야 힘이 생긴다. 오다가 끊기면 의심이 생기고 효과가 반감된다. 정보전엔 전략적 두뇌와 자금, 국가의 지원이 절대 필요한데 현재 한국과 미국 정부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평화적 두 국가’론은 어떻게 보시나?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은 그들의 생존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거기 부합해 따라가는 건 전략적 머리라고는 없는 바보 같은 짓이다. 평화적 두 국가가 된들 북핵이 있는 한 모래성 위에 쌓아놓은 평화 아닌가. 후세에 이런 나라를 물려줄 건가?”
-‘이기적인 한국인들이 통일을 더디게 한다’고도 했더라.
“소수인 탈북민도 품지 못 하면서 무슨 통일인가. 한국에서 북한과 통일은 2차적 문제지, 국가의 전략적 문제가 아니더라. 5년마다 바뀌는 정치 리더십도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 전략적 일관성이 없다. 정권만 바뀌면 대통령이 구속되고 적폐 청산이 일어나는 너 죽고 나 살기 식 나라이니 북한도 대놓고 공갈 협박을 하는 것이다.”

◇ 평양말 하는 한반도 전문가
-국문학도가 어쩌다 정치학자가 됐나.
“서울대서 학위 받고 교수직을 찾고 있을 때 용산 미8군에 있던 메릴랜드주립대 분교에서 급히 연락이 왔다. 펑크난 한국정치입문 강의를 영어로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정치는 모르니 한국어, 한국사, 한국문화를 개괄한 한국학 강의로 진행했는데 인기가 좋았다. 정치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 싶어 UC버클리로 날아갔다.”
-미국 양대 국책연구소 중 하나인 랜드에 한반도 전문가로 발탁됐다.
“소련이 살아 있을 때고 중국과 북한 문제가 부상할 때였다. 한·중·일어에 러시아어를 구사했고, 아버지에게 배운 평양 사투리까지 하니 북한에 무슨 일만 터지면 다들 내게로 달려왔다.”
-랜드에서 쓴 1호 보고서 ‘북한 정치의 권력 승계’가 김일성 사망 직후 화제가 됐다.
“김일성이 ‘타이거’라면 김정일은 ‘도그’라고 썼다. 인물과 카리스마는 김일성을 못 따라가지만 문화예술 자본을 활용할 줄 아는 김정일이 당과 군대, 엘리트를 물리적, 심리적으로 장악해갈 것이라고 보고했다.”
-북한 초대 영국 대사였던 리용호에게 당신이 쓴 북한 책을 선물했다던데.
“브루킹스에서 출판한 ‘거울을 통해 들여다본 북한’이다. 사인을 해달라기에 김씨 부자(父子)를 비판한 내용인데 괜찮겠느냐 묻자 ‘내가 그 정도에 매일 사람은 아니’라고 하더라(웃음).”
-5년 전 미국방연구원을 떠났다.
“원장이 어디 아프냐고 묻더라.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트럼프 1기였는데, 실현되지도 않는 대북 정책을 만드느라 시간을 낭비하느니 북한 주민의 자유화와 통일을 위해 직접 뛰겠다고 했다.”
-실제로 암 투병을 했다.
“소식, 채식에 운동도 열심히 하는 내가 암에 걸린 건 북한 때문이다(웃음). 북한은 나의 고통(pain)이자 열정(passion)이었다.”
-아버지 때문인가.
“아버지는 평생을 교육자로 사셨고, 월남한 인척과 친구분들이 철마다 우리 집에 모여 식사를 했다. 나는 어머니가 만든 음식과 술을 나르면서 어른들의 진지하고 슬픈 토론을 경청했다. 임종때 제가 대신 아버지 꿈을 이뤄드리겠다고 귓속말을 하자 내 손을 꾹꾹 누르시더라.”
-IDA를 나와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과 ‘자유조선연합회’를 꾸렸다.
“미국에 합법적으로 정착한 탈북민은 300여명이지만, 고학력에 사업에 성공한 분들이 많다. 지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과 자유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버지와 남편이 인생 멘토라고 했더라. 남편을 멘토로 꼽는 여성은 처음 봤다.
“노르웨이계 미국인인 남편은 심리학자다. 배려와 헌신이 몸에 밴 사람이다. 그가 해준 말이 통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게 했다. ‘모든 인간은 자유와 행복과 쾌락을 추구한다.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통일은 여전히 당신의 꿈인가?
“1990년 10월 3일 나는 남편과 독일에 있었다. 동서독 통일을 그들과 함께 축하하며, 내가 60세가 되면 한반도 통일도 이뤄질 거라 자부했었다. 지금은 비관적이다. 그저 북한 주민들이 하루 속히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되길 바랄 뿐이다.”
☞오공단
1949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서울 계성여고, 서강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에서 국문학 석사를, 미국 UC버클리에서 아시아학 석사와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부터 랜드연구소 연구원으로, 1997년부터 미국방연구소(IDA) 동아시아 책임연구원, 브루킹스 비상임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아시아 안보와 국제관계, 미국의 대아시아 외교 및 국방정책, 한반도와 일본·중국 문제를 다뤘다. ‘코리아클럽’을 창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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