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지방 소멸'과 지방선거

김정인 2026. 5. 31.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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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도 붙은 '지방 소멸'

오음봉 푸른빛이 병풍처럼 둘러싼 강원도 정선의 한 작은 초등학교.

1, 2학년 학생들이 함께하는 미술 시간,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저마다 그림 그리기에 한창입니다.

4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온 시원이는 올해 이 학교에 입학한 유일한 1학년 학생입니다.

[김시원/남평초 1학년] "여기는 정선에서 집라인 타는 곳입니다."

병아리를 돌보고, 농장을 가꾸고, 모든 학교생활이 새롭고 즐겁기만 합니다.

[김시원/남평초 1학년] "<학교생활 어때요?> 재밌어요. <어떤 게 재밌어요?> 전부. <전부 재밌어요?> 공부 빼고."

이 학교의 학생은 시원이를 포함해 단 10명.

선생님은 물론 형, 누나들에게도 시원이는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전예음/남평초 4학년] "<이번에 신입생 들어왔을 때 어땠어요?> 좋았어요. <어떤 게 좋았어요?> 한 명이라도 들어오니까 폐교 안 하는 거 같아서."

학교 동문들까지 나서 아이들에게 매년 해외 연수를 보내주고, 승마·골프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언제 명맥이 끊길지 알 수 없습니다.

[김구동/남평초 교장선생님] "주변 인근 학교에서도 입학생 없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래서 저희 시원이가 한 명 입학한 것을 학교에서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태어난 시원이의 동생.

이 마을에서 20년 만에 태어난 아이입니다.

주민들은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최옥선/주민] "기쁘지. 그럼 기쁘고 말고지. 그러니 모두 여기서 그 플래카드인가 뭔가 달아놓고 난리 났지."

지난 20년 사이, 이곳 북평면의 인구는 크게 줄었습니다.

정선은 소멸 위험 지역으로 꼽힙니다.

[김부윤/주민] "계속 아기 울음소리 들었으면 하는 그런 바람. 그 바람이, 바람이 간절한 거죠."

한국고용정보원이 전국 229개 기초자치단체를 분석한 결과, 20년 전만 해도 한 곳도 없었던 소멸 위험 지역은 지난해 62곳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소멸 위험에서 안전하다고 분류된 지역은 이제 단 5곳에 불과합니다.

[서복경/더가능연구소 대표] "지금은 '어디가 인구 소멸 지역이고 어디가 아닌가'를 따질 때가 아니고 '어디가 인구가 들어오냐'만 따지면 돼요. 나머지가 다 위험하기 때문에."

◀ 김정인 기자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뽑히는 각 지역 일꾼들 가운데, 비수도권 자치단체장과 의원 상당수는 당장 그 지역의 소멸을 막아야 할 과제를 짊어지게 됩니다.

전국 3천 6백여 개의 읍면동 중 36%가 지방소멸 '위험' 또는 '심각' 단계에 처해있는데요.

먼저, 기본적인 일상을 유지하기조차 힘들어지고 있는 소멸 위기 지역의 현실을 살펴봤습니다.

■ '식품 사막'‥무너진 일상

전북 정읍시 산내면의 한 작은 마을.

외딴집에 홀로 지내고 있는 아흔 살의 최순자 할머니가 집을 나섭니다.

주말에 찾아온다는 막내딸과 손주들을 위한 먹거리를 사러 가는 길.

불편한 허리에, 지팡이에 의지한 채 차가 다니는 곳까지 한참을 힘겹게 걸어 내려갑니다.

언젠가부터 버스조차 끊긴 마을.

[최순자 할머니] "<가서 뭐 많이 사갖고 와> 사갖고 와? 뭐 살 것이 있어야지."

대신 면내에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복지택시를 잡아탔습니다.

그렇게 15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마트.

농협 사무실 귀퉁이에 자리 잡은, 산내면에 남은 유일한 마트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파는 신선식품은 달걀과 우유 정도.

할머니가 찾는 고기나 생선, 채소류는 아예 없습니다.

[이민영/정읍 농협 산내지점 직원]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에 반품하는 게 훨씬 많아요. 그게 이제 계속되니까 이제 저희가 못 떼어놓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이 더 큰 마트로 향했습니다.

면 밖으론 복지택시를 탈 수도 없어 하루 8번 다니는 버스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굽이굽이 산길을 20분 정도 달렸습니다.

[최순자 할머니] "<이렇게 버스 타고 가시면 힘들진 않으세요?> 그 전에는 힘 안 들었는데 시방은 힘이 들어. 그러니까 순전 이제 잘 안 나다녀."

겨우 도착한 이 마트는 할머니가 사는 마을에서 무려 13km 떨어진 곳.

브로콜리랑 두부도 사고, 할머니가 좋아하는 코다리도 찾았습니다.

근처 정육점에 들러선 애들 먹일 고기도 충분히 샀습니다.

[오정호/정육점 사장] "한 번 사 갈 때 양을 많이 사 가요. 두 근 세 근 사가서 얼려놓고 그때그때 드시는 거예요."

이제 왔던 방법 그대로 돌아갈 시간.

버스를 기다려 타고 산내면으로 돌아와서, 또 복지택시로 갈아탑니다.

[최순자 할머니] "아이고, 우리 집 왔네요. <그러니까 이제 왔네요.> 아이고, 선생님들 욕봤어요."

간단한 먹거리를 사 오는 데 3시간이 걸렸는데, 택시를 부르고 또 버스로 갈아타는 과정이 노인들에겐 큰 고역입니다.

[최순자 할머니] "그렇게 아무리 늦게 가나 저기 일찍 가나 하루는 걸려, 나가면. <너무 불편하시겠어요.> 겁나게 불편합니다."

1백 가구 넘던 마을에 남은 건 20가구 남짓, 마을 어귀에 있던 점방도 사라진 지 오랩니다.

손쉽게 집에서 신선식품을 배송받을 수 있는 도시와 달리, 음식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강연천/정읍 백필마을 이장] "도회지하고 다르니까. 나이 먹은 것도 서러운데 뭐 먹을 것도 좀 먹어야 되는데 못 먹잖아 이걸. 먹고 싶을 때 먹어야 되는데 그런 게 굉장히 불편해요."

이처럼 인구 감소로 신선식품을 파는 상점마저 사라진 곳들을 가리키는 용어 '식품 사막'.

우리나라 '리' 단위 행정구역의 73%가 '식품 사막'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먹는 건 물론, 다른 일상생활도 쉽지 않습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면 단위 인구가 3천 명 아래로 줄어들면 병원, 약국 등 의료 시설이 사라졌고, 2천 명 아래로 내려가면 식당과 세탁소, 목욕탕, 미용실 같은 곳들까지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삶의 필수적인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 의료라든지 돌봄이라든지 먹거리라든지 교육이라든지 여러 가지 인프라들이 지금 인구 감소로 인해서 이제 무너지고 있는..."

지방에선 도시 지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1일 밤, 충북 청주.

구급차가 한 산부인과 병원에 멈춰 섭니다.

29주차 임산부가 고열로 병원을 찾았는데, 태아의 심박수가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조기 분만 수술이 필요해 소아과 의사가 있는 대형 병원으로 산모를 옮겨야 했지만, 인근 충북대병원은 당직 산과 전문의가 없다며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충청권에 있는 다른 대학병원 5곳 역시 수용 불가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전국 곳곳에 연락을 돌린 병원만 41곳.

소방 헬기로 부산까지 겨우 이송했지만, 3시간 반이나 지체되면서 태아는 숨졌습니다.

청주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지혜 씨.

지역 응급 의료 공백으로 태아가 사망했다는 소식에 불안감이 커졌습니다.

[박지혜/청주 시민] "많이 불안해하죠. 아무래도 아기 키우는 부모다 보면 주변 환경이 좀 개선이 많이 되었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대응이 안 되다 보니까."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응급의료 취약지'로 분류된 곳은 98곳에 달합니다.

[이두영/충북 시민단체 '공정한세상' 운영위원장] "수도권에 있는 빅5 병원이라고, 이 비중이 너무 높잖아요. 의료 자원들을 사실은 중소 도시라든가 또는 농·산·어촌으로 이렇게 배분해서 거기도 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이런 그 지역 응급의료 체계들이 작동되도록 해야 되는데 그게 사실은 안 되고 있는 게 사실이고요."

국토의 11%에 불과한 서울과 수도권에 전인구의 51%가 살고, 매년 6만 명의 지방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유입되고 있는 현실.

[이재정/범청년행동 대표] "지금 진짜 좀 사회가 이상한 것 같거든요. 그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서, '서울로 진입을 하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어떤 소득도 자산도 그리고 뭐 누릴 수 있는 인프라나 기회의 자원도 너무나 이제 격차가 큰 것 같아요."

현재의 지역 소멸 문제는 지역에서도 '적정한 삶', 평범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단계에 처해 있다는 겁니다.

[신동화 /강원지역 청년활동가·'아카데미의 친구들' 사무국장] "그러니까 지역 소멸도 굉장히 오랫동안 이야기 나온 건데 수십 년 동안 그거를 막기 위한 정책으로 갔느냐, 그걸 못 했기 때문에 지금 이 소멸의 위기에 온 거잖아요. 저는 궁금한 게 '그럼 왜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안 듣지? 이 목소리는 안 듣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막 계속 외연만 확장하려는 느낌? 지금 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지속 가능하게 살아야 되잖아요."

◀ 김정인 기자 ▶

이런 상황에서 이번 6.3 지방선거 후보들은 저마다 자신이 '지방 소멸' 위기를 해결할 적임자라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지방을 살리겠다는 주요 공약을 보면 여전히 고속도로, 공항 등 SOC 위주의 대형 건설사업 그리고 특정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내용이 많습니다.

이러한 공약들이 지방 소멸을 막는 해법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 '소멸' 막으려면‥

<스트레이트>는 소멸 위기 지역 주요 후보자들의 제1 공약을 살펴봤습니다.

먼저 '치료 가능 사망률' 즉 제때 치료받았다면 살 수 있었던 사망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고, 소멸 위기 기초자치단체 5곳이 포함된 충북 도지사 후보들.

후보들의 1순위 공약은 각각 '창업특별도시' (신용한 더불어민주당 충북도지사 후보), '돔구장 건설'(김영환 국민의힘 충북도지사 후보)입니다.

산부인과나 소아과 개선을 목표로 한 직접적인 공약은 5대 공약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식품 사막'현상이 가장 심각한 전북 정읍의 경우, 1순위 공약이 '바이오 산업과 청년창업 육성' (이학수 더불어민주당 정읍시장 후보), '한국마사회 본사 유치'(김민영 조국혁신당 정읍시장 후보)였습니다.

소멸 위기 '심각'단계인 대구 군위군.

이곳 국민의힘과 민주당 군수 후보의 제1 공약은 모두 TK 신공항 착공이었습니다.

[이기만/더불어민주당 대구 군위군수 후보] "집권여당 후보인 저 이기만이 반드시 (TK 신공항) 조기 착공을 해서…"

[김진열/국민의힘 대구 군위군수 후보] "꼭 해야 될 부분이 신공항 사업의 빠른 착공입니다."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고속도로, 공항, 철도 확충 등 초대형 인프라 건설.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겠다, 돔구장이나 K팝 아레나 같은 '초대형 랜드마크'를 만들겠다는 공약들도 어김없이 반복됐습니다.

[이광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 "후보들의 공약만 더해도 1,000조가 넘는 것으로… 조 단위의 신규 철도·도로 사업들도 과거와 동일하게 또 제시가 되고 있는데요. 대부분 공통적으로 좀 세밀하지 못하고 또 자의적이고…"

대규모 SOC 공약은 막대한 예산이 필요해 재정자립도가 낮을 경우 그 이행이 쉽지 않습니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4년 전 지방선거의 공약을 분석한 결과, 당선인들의 대형 공약 30개 중 20개가 예산 확보율이 채 1%도 안 됐고, 아무 예산도 확보하지 못한 공약도 7개나 됐습니다.

예산을 전혀 확보하지 못했던 7개 공약.

- 전남-광주 고속교통망 확충 (전남, 11조 원) - 도시철도망 조속 추진 (서울, 6조 원) - 철원-고성 고속도로 건설 (강원, 5조 원) - 인천도시철도 순환 3호선 추진 (인천, 4조 원) - 동부축 고속도로 건설 (충북, 4조 원) -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충북, 4조 원) -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건설 (충남, 3조 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2025년 12월 말 기준>

모두 SOC 등 대형 건설 공약으로 분류됐습니다.

지방을 살리겠다며 반복적으로 대형 건설 사업, 대규모 시설 유치에 목매기보다는 이제는 주민들의 무너진 일상을 회복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차미숙/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축소 사회로 이미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민의 삶보다는 일자리나 경제를 슬로건으로 얘기를 하면서 대규모 시설들을 유치하는 이런 공약들을 좀 더 집중하는 게 아닌가…"

부산광역시 사하구.

이곳엔 평일 출근 시간 전 문을 여는 소아과 병의원이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맞벌이 부부들의 불편과 불안이 계속됐습니다.

그러자 지역 시민단체는 지난 2024년, '출근 전 어린이 병원' 건립을 위한 주민 서명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정경애/부산여성회 공동대표] "'도와주세요' 이렇게 이게 짧지만 되게 이게 뭐라고 저한테 막 도와달라고 이렇게 얘기하시는 게 되게 울림이 있었고 아, 이건 진짜 해결해야 되겠구나."

많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면서 구 의회가 빠르게 움직였고, '출근 전 어린이 병원' 건립을 위한 조례 제정이 이뤄졌습니다.

현재 전국적 논의로 이어지면서 국회에서 관련법이 발의됐고, 보건복지부도 공공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새벽시간 소아 진료' 병원 시범 운영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정경애/부산여성회 공동대표] "아, 내가 서명한 게, 내가 투표한 게 진짜 정책으로 되고 조례도 만들어지고 '이게 뭔가 되는구나. 나도 뭐가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니까 점점 심의 회의에, 주민 대회에 많이 오세요."

이렇게 지방 의회는 지역 주민들의 풀뿌리 민심과 고충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저 청취해 제도화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부산시 사상구의 '라' 선거구.

구의원 두 명을 뽑게 돼 있는데, 후보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단 두 명입니다.

따라서 투표 없이 두 명이 그대로 당선될 예정입니다.

거대 양당이 만들어놓은 지방의회 선거 방식 탓인데, 주민들 입장에선 선택권을 침해당하는 셈입니다.

[조현자/부산 사상구 주민] "저희는 참 금시초문이네. 자동으로 됐다는 거는 참 이해가 안 된다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이 예상되는 후보자는 504명.

역대 두 번째 규모입니다.

이 중 3명은 자치단체장이고 나머지 501명은 모두 지방의회 의원들입니다.

이렇다 보니, 주민들의 무너진 일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고민보다는 소속정당 공천을 중요시하기 쉽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두영/충북 시민단체 '공정한세상' 운영위원장] "결국 정책이 실종되는 거예요. 실생활에 주민들의 삶의 질을 바꾼다든가 뭐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있다."

지방 소멸을 막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위기는 더 심각해지고 있는 현실.

성장지향 정책보다는 지역 주민들의 무너진 일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주민들에겐 너무나도 절실한,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승수/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정책이라는 게 전부 그냥 하향식 정책, 위에서 떨어진 정책밖에 안 되는데 그런 식으로 지난 수십 년간 해온 겁니다. 해온 결과가 지금 이런 거죠. 이제는 좀 패러다임을 바꿔야 되는데 바꾸는 건 간단한 거죠. 오히려 아래로부터, 풀뿌리로부터 정책이 나와야 되고."

김정인 기자(tigerji@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straight/6826578_28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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