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통’ 거문도 풍어제, 뱃노래꾼 ‘한숨소리’만

광주일보 2026. 5. 31.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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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통’ 거문도 풍어제 가보니
오색 깃발 아래 백 년 전통 재현했지만…인구 소멸에 전승 위기
어족자원 고갈로 위판량 ‘뚝’…해상 퍼레이드 10여 척 쪼그라들어
“400년 이어온 거문도뱃노래, 젊은 피 없어 명맥 끊길까 두렵다”
거문도뱃노래보존회가 31일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바다에서 전남도 무형문화재 1호로 지정된 거문도뱃노래를 부르고 있다.

31일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 만선과 안전을 기원하는 오색 깃발이 거문도에 정박한 어선과 마을 곳곳에 내걸렸다. 바닷 바람에 세차게 펄럭이는 깃발이 흥겨운 민요 가락을 섬마을로 실어나르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매년 음력 4월 15일 열리는 ‘거문도 풍어제’는 거문도 어민들이 거친 바다로 나가던 어선을 멈춰 세우고 다 함께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 자리다.

31일 열린 풍어제는 올해로 36회째로, 100년 넘게 이어져 온 풍어제를 거문도수협이 1985년부터 이어받아 치러지고 있다.

거문도 풍어제는 조류가 가장 센 시기에 과거 떼배를 타고 울릉도 등 먼 바다로 나가던 어민들이 풍어와 항해 안전을 기원하며 용왕에게 올리는 제례인 전통 세시풍속이다. 100년 넘은 행사지만 명맥을 이어갈 주민들이 없으니 언제 멈춰도 이상하지 않은 형편이다. 거문도수협이 이런 상황을 고려해 각 마을 단위로 지내오던 풍어제와 고두리 영감제 등을 이어받았고 지난 1985년부터 ‘거문도 풍어제’로 통합했다.

<이날 오전 7시께 제복을 차려입은 제관 등 10여 명과 거문도수협 위판장 앞 소형 어선에 몸을 실었다. 5분여를 달려 거문도 남쪽 외롭게 솟아 있는 거친 돌섬, 안노루섬(내장도)에 도착했다. 수산 풍년을 기원하는 풍어제의 첫 의식인 ‘고두리 영감제’를 지내는 곳이다.

오래전 흉어가 계속되자 주민들이 용왕제를 지냈고, 이후 바다 위로 큰 바위 하나가 떠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주민들은 이를 용왕이 보낸 것으로 믿고 안노루섬 정상에 신체로 모셔 제사를 지내자 고등어가 풍어를 이뤘다는 게 거문도 주민들 사이에 내려오는 전설이다.

거문도에서 나는 수산물인 참돔, 뿔소라와 배말·보찰(거북손)·고둥으로 만든 탕이 제단에 올랐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집례문에 따라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거문도 바다의 안녕을 빌었다.

풍어제에서 17년째 제관 역할을 맡은 배완철(69)씨는 “고두리영감제는 풍어제의 첫 순서이기도 하며 마을의 안녕과 만선을 비는 중요한 의식인 만큼 책임감과 자부심을 갖고 제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어업에 종사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까지 오색기를 내걸고 함께 만선을 기원할 만큼 풍어제는 거문도에서 가장 큰 축제”라고 말했다.

오전 11시께는 거문도수협 위판장에서 풍어제(본제)가 열렸다. 위판장 앞마당에는 전남도 무형문화재 1호인 거문도뱃노래 공연이 이어졌다. 거문도뱃노래보존회 회원 18명은 짚으로 밧줄을 꼬며 노동의 고달픔을 잊는 노동요인 ‘술비소리’를 선보였다. 꽹과리, 북, 장구 소리에 맞춰 밧줄 세 개를 하나로 엮어 이은 밧줄을 배에 싣고 어장으로 나가는 모습과 그물을 끌어올리는 모습을 재현했다.

정용현(77)씨는 거문도뱃노래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1972년부터 50년 넘게 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문도뱃노래보존회가 400여년 전부터 전해진 노동요 ‘술비소리’를 선보이고 있다.

정 씨는 “귀중한 무형문화재를 후세에 전수시키고픈 책임감과 애향심으로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며 “음악 교과서에도 실리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풍어제 전통을 이어갈 사람도, 배도, 어획량도 예전만 못하다. 볼거리 가득했던 해상 퍼레이드는 10척 남짓하게 쪼그라들었고 거문도뱃노래보존회도 과거보다 회원 수가 부쩍 감소했다. 풍어제 ‘홀기’(사회자)이자 거문도뱃노래보존회 뱃노래꾼 이강배(66)씨는 “거문도뱃노래가 400여 년 이어져 왔는데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아 명맥이 끊길까 두렵다”고 말했다.

풍어제도 기후 변화의 영향을 받는걸까. 수산업 상황도 녹록지 않다. 거문도수협 전체 수산물 위판 실적은 2020년 1136t에서 2025년 965t으로 줄었다. 김효열 거문도수협 조합장은 “어족자원 고갈로 수산업이 침체되고 있다”며 “어민들이 새로운 어장을 개척하고 수산업을 계승·발전시키자는 마음으로 풍어제를 정성껏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여수 거문도 글·사진=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여수 거문도=윤주은 기자 yu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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