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아직도 설명 못한 도서관의 가치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며 문득 도서관이 떠올랐다. 도서관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류와 목록만으로 존재 이유가 설명되던 시대가 지나자 존재(being)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이제 도서관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doing) 기관이 됐다.
행정조직에서 도서관은 비주류다. 불특정 다수가 매일 방문하는 곳이지만 각각의 요구는 너무 다양해 하나의 성과로 정의되기 어렵고 ‘모두’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작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대부분은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다. 너무 많아 보고서에 들어가지 못하고 너무 작아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속도와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대규모 예산과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일상을 담당하는 도서관의 일은 행정의 언어로 잘 표현되지 못한다.
도서관의 일은 본래 정량적으로 설명되기 힘들다. 한 권의 책이 삶의 방향을 바꾸고 한 번의 만남이 고립을 덜어내며 작은 프로그램 하나가 다시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도서관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바로 그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해 있다. 도서관의 일이 ‘행정의 언어’로 치환되는 순간 변화의 서사는 사라지고 방문자 수, 프로그램 횟수, 대출권수만 남는다. 정책은 측정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예산은 설명 가능한 영역에 배분되기에 사서들은 오랫동안 도서관의 일을 설명 가능한 언어로 만드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서관의 무가치함을 극복하는 데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결산 검사가 끝나고 민선 9기를 준비하면서 재정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재정이 어렵다고 한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선택과 집중이 강조된다. 그때마다 도서관은 쉽게 축소 가능한 영역으로 취급된다. 필수적인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체 가능한 서비스라는 오해 속에서 존재 이유를 반복해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오늘도 스스로의 일을 설명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존재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가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모르지만 당당한 사람들을 친절한 언어로 설득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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