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건강보험 도입하겠다”…‘32도 땡볕’ 대전 투표소에 2만명 몰린 이유

정성환 기자 2026. 5. 3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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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공룡 대통령’ 선거 현장 가보니
육식공룡 티라노사우르스 연임 성공
브라키오사우르스 지난해 이어 2위
둘리사우루스 ‘1표차’ 3위…닭은 4위
수십명 개표 관람…접전에 재검표까지
국립중앙과학관 “팬덤과 함께 만든 행사”
5월31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3회 공룡덕후박람회에서 정호영군(9·경기 부천)이 제2대 공룡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고 있다.

6·3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5월31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 꿈이광장에 투표소와 줄이 늘어섰다. 

지방선거 사전투표소가 아닌가 착각할 만큼 그럴듯한 모습. 하지만 투표용지를 7살 아이도, 40대 중년도 들고 있다.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들 이름도 심상치 않다. 티라노사우루스, 벨로키랍토르, 브라키오사우루스…. 이곳은 공룡 대통령, 이른바 ‘공통령’을 뽑는 선거 현장이다.

5월30~31일 국립중앙과학관 사이언스터널과 꿈이광장 일대에선 6월1일 세계 공룡의 날을 앞두고 과학관 주최로 ‘제3회 공룡덕후박람회’가 열렸다. 박람회의 핵심 프로그램인 공통령 선거는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31일 대전은 낮 최고기온 32℃를 기록했지만 투표소엔 따가운 햇볕에도 아랑곳없이 30m가량 긴 줄이 늘어섰다. 주최측에 따르면 전날인 30일에만 1만2900명이 박람회장을 찾았다. 31일을 합치면 2만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임이냐, 정권교체냐” 
제2대 공통령 선거의 후보 전단지를 살펴보는 부자.
올해 선거는 두번째다. 과학관에 따르면 지난해 제1대 공통령 선거에는 4809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공룡보안전선당 소속 티라노사우루스가 1025표(21.3%)로 당선됐다. 브라키오사우루스(17.1%), 닭(10.7%), 스피노사우루스(10.3%) 가 뒤를 이었다. 당시 “조류는 현생 공룡”이라는 논리를 앞세운 지지층 덕분에 닭이 3위에 오르며 화제가 됐다. 

올해는 ‘티라노사우루스 연임 신청 결과’가 현장에서 공개되는 방식으로 진행돼 선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5월초 티라노사우르스의 연임 도전 여부에 대한 사전 온라인 투표를 실시했고, 이번에 현장에서 등록 여부를 발표한 것이다. 

공통령 후보 10종이 사전 공개됐고, 티라노사우르스는 11번째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투표는 5월30일 오후 4시30분부터 31일 오후 3시30분까지 꿈이광장과 미래기술관 3층에서 진행됐다. 

제2대 공통령 선거 투표용지

서울에서 당일 기차를 타고 내려온 이승진씨(34·서울)는 “평소 공룡 카드 게임을 즐겨 하는데 공룡 대통령을 뽑는다는 소식에 달려왔다”면서 “티라노사우루스를 뽑으려다 다른 후보 공약들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고민 중”이라고 했다. 

공룡 특성에 맞는 공약도 눈길을 끌었다. 티라노사우르스는 ‘초식공룡과의 평화 협정 체결’을 내걸었고, 목이 긴 초식공룡인 브라키오사우르스는 ‘목 긴 공룡을 위한 목 건강보험 마련’을 약속했다. 두꺼운 머리뼈로 유명한 파키케팔로사우루스는 ‘분노 충돌 휴가제도 도입’을 앞세웠다. 

행복한 공룡 덕후(마니아)들
5월31일 대전 유성구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3회 공룡덕후박람회에서 권도겸군(7·충북 청주)이 공룡 옷을 입은 아버지와 함께 뛰어다니고 있다.
현장은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로 가득했다. 공룡 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권도겸군(7·충북 청주)은 “스테고사우르스를 가장 좋아한다”면서 “등에 있는 골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권군의 아버지는 “옷에 바람이 통하지 않아 엄청나게 땀이 나지만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에 열심히 뛰어다녔다”고 전했다. 

꿈이광장에서는 초식공룡 팬과 육식공룡 팬이 각자 진영에 포스트잇을 붙여 영역을 넓히는 ‘초식 연합 vs 육식 연맹’ 전쟁, 관람객이 직접 멸종 공룡을 픽셀 아트로 복원하는 프로젝트 등이 진행됐다. 공룡 의상 대여 코너에는 직접 분장하고 입장한 코스어(특정한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놀이처럼 즐기는 ‘코스튬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눈길을 끌었다. 공룡 굿즈(기념품) 플리마켓과 쥐라기 카페, 공룡 목소리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체험 부스에도 인파가 쏠렸다. 

공룡 밈(유행어)으로 만든 스티커. 5월31일엔 대부분 품절 상태였다.

학술 강연 프로그램도 내내 이어졌다. 유명 과학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에 ‘공룡’이라는 애칭으로 출연하는 박진영 박사가 ‘둘리사우루스와 한반도의 공룡들’을 주제로 강연했다. 박 박사는 “어떻게 공룡 연구를 하게 됐냐”는 질문에 “공룡이 되고 싶었는데 될 수 없어서 연구를 하기로 했다”고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밖에도 이항재 지질박물관장의 티라노사우루스 특강, 둘리사우루스 발굴 당사자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 스페셜 토크, 공룡 영화 복원 가능성을 논한 다이노 시네마 토크 등 다양한 강연이 이틀간 이어졌다. 

‘둘리사우르스와 한반도의 공룡’을 주제로 강연하는 박진영 박사.
대망의 2대 공통령은?
오후 4시30분 미래기술관 3층에서 개표 행사가 시작됐다. 인공지능(AI) 음성으로 만들어진 후보 11명(!)의 자기 소개가 진행된 이후 30분가량 공개 개표가 이뤄졌다. 현장엔 수십명의 인원이 모여 개표를 지켜봤다. 
제2대 공통령 선거 결과 총 2834표 중 532표(18.8%)를 얻은 티라노사우르스가 당선됐다.

전통의 인기는 뒤집을 수 없었을까. 투표 결과 총 2834표 가운데 티라노사우루스가 532표(18.8%)를 얻어 연임에 성공했다. 2위는 브라키오사우루스(443표·15.6%), 3위는 2위보다 딱 한표 적은 둘리사우루스(442표·15.6%)였다. 지난해 3위였던 닭은 399표를 모으며 4위로 밀려났다. 현장에선 브라키오사우르스와 둘리사우르스가 442표로 동률로 나와 재검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권석민 국립중앙과학관장은 “공룡덕후박람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팬덤과 함께 만든 행사”라며 “공룡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단순한 관람객이 아닌 기획자와 창작자로 참여해 과학문화가 살아 움직이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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