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로봇의 라보나킥

한국 축구대표팀의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전. 전반 38분 기성용이 상대 문전으로 올린 프리킥에 수비수인 이정수가 달려들어 머리를 갖다 댔다. 그러나 볼은 머리가 아닌 이정수의 오른발 정강이에 맞은 뒤 골문으로 빨려들어갔다. 경기는 2 대 2로 끝났고, 한국의 사상 최초 원정 16강 진출에 온 국민이 환호했다. 이정수의 독특한 골에 축구팬들은 ‘헤발슛’(헤더와 발의 합성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헤더를 하는 순간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는 모습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슛’이라는 별명까지 더해졌다.
축구 경기는 득점이 많지 않다보니 골은 어떻게 들어가든 대단한 업적이다. 그래도 멋진 킥으로 골망을 흔들면 금상첨화다. 몸을 뒤로 눕히면서 머리 위로 발을 휘둘러 공을 차는 바이시클킥(오버헤드킥)이나 몸을 앞으로 숙이면서 발뒤꿈치로 날아오는 공을 차는 스콜피온킥 골을 직관했다면 관중들은 입장료의 몇배를 뽑은 셈이 된다. 고난도 킥 중 또 하나가 라보나킥이다. 공을 차려는 발을 디딤발의 뒤로 꼬아 공을 차는 기술이다. 수비수를 완벽히 속일 수 있는 멋진 발재간이다.
라보나킥이 처음 선보인 것은 1948년 아르헨티나 리그다. 리카르도 인판테라는 선수가 이 킥으로 골을 넣었다. 라보나(Rabona)는 스페인어로 무단결석이라는 뜻이다. 경기 후 한 축구 잡지가 이 골을 보도하면서 ‘어린이가 학교를 빼먹다(El infante que hizo la rabona)’라는 제목을 달았다. 인판테가 수비수들을 속이고(선생님을 속이고), 변칙적인 기술을 쓴 것(무단결석)이라는 뜻이다. 이 기술은 이후 ‘라보나킥’으로 불리게 됐다.
현대자동차가 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앞두고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라보나킥을 멋지게 해내는 장면을 지난 29일 유튜브에 선보였다.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어지간한 선수보다 잘한다”며 감탄할 정도다. 현대차는 2028년부터 생산 현장에 로봇을 도입할 예정이다. 프로선수들도 쉽지 않은 고난도 동작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로봇이라면 생산 현장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건 시간문제다. 그때쯤이면 인간보다 뛰어난 기술을 뽐내는 아틀라스를 보고 감탄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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