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3대 강국' 하이브리드 전략에 길이 있다

2026. 5. 3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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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등 솔루션 수출하고
오픈소스 생태계 동참해야
규제 풀되 데이터 보안 강화
핵심 산업 버티컬AI 선점을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8세기 돌궐의 명재상 톤유쿠크는 비문에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내는 자는 흥한다"는 문구를 남겼다. 이는 유목민족이 생존을 위해 폐쇄적인 성벽 대신 유연한 네트워크 확장을 택해야 한다는 통찰을 담고 있다.

이러한 지혜는 현대 기술사에서도 증명된다. 내수 시장에 안주한 일본 전자산업의 '갈라파고스화'와 독자 운영 체제를 고수한 노키아·블랙베리의 몰락은 폐쇄적 성벽이 초래한 고립의 위험을 여실히 보여준다. 데이터 연결과 생태계 확장이 본질인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이 진리는 유효하다.

현재 글로벌 AI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길을 내는 전략'과 '성을 쌓는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고 있다. 미국은 막대한 자본과 클라우드로 세계를 유인하는 동시에 첨단 칩 수출을 차단하는 '작은 마당·높은 울타리' 전략을 구사한다. 반면 중국은 미국의 통제에 맞서 고성능 모델을 무료로 배포하는 '극단적 개방'으로 신흥국 개발자들을 자국 생태계로 빠르게 흡수하며 새로운 길을 내고 있다.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하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어와 내수 시장 방어라는 좁은 성벽에만 안주한다면 글로벌 생태계에서 고립될 위험이 크다. 기반 기술과 플랫폼은 길을 내어 생태계를 키우고 핵심 데이터와 특화 지식은 보호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이 절실하다.

첫째, 방어형 소버린 AI를 넘어 '수출형 소버린 AI'로 진화해야 한다. 빅테크의 데이터 종속을 우려하는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 비영어권 국가에 각국 문화와 언어에 맞는 AI를 구축할 수 있도록 우리 기술을 수출하는 것이다. AI 모델만 수출하는 게 아니라 각국 문화와 언어에 맞는 AI를 구축해주는 AI 턴키 솔루션을 제공한다면 새로운 연대의 길을 낼 수 있다. 둘째, 범용 AI 경쟁을 우회하는 버티컬 AI와 신경망처리장치(NPU) '특화 도로'를 건설해야 한다. 범용 AI 모델은 국가 안보 자산이자 공급망 자립의 핵심인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을 지속하고 제조, 통신, 의료, 금융 등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산업 분야에 특화된 버티컬 AI 생태계를 선점해야 한다. 여기에 전력 효율이 극대화된 국산 AI 반도체(NPU)를 결합하면 대체 불가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셋째, 글로벌 오픈소스 생태계에 적극 합류해야 한다. 핵심 데이터는 철저히 보호하되 기반 기술과 연구용 모델은 전략적으로 개방해야 한다. 전 세계 인재들이 한국 AI 생태계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API를 개방하고 산학 협력을 주도해야 갈라파고스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넷째, 정부는 규제 성벽 대신 '혁신 고속도로'를 깔아야 한다. AI 기술 생태계의 빠른 발전 속도에 맞춰 포괄적 규제보다 유연한 규제 샌드박스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컴퓨팅 인프라스트럭처와 전력망을 조기에 확충해 민간의 혁신 속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가진 반도체 역량, 통신 인프라, 소버린 AI 구축 경험을 하나로 연결할 때다. 고정된 성을 넘어 전 세계와 연결되는 넓고 빠른 길, 'K-AI 실크로드'를 개척해 나갈 시점이다.

[박윤규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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