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중국의 진짜 경쟁력은 속도다

임세원 기자 2026. 5. 3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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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세원 국제부장
무인약국 등 규제풀어 로봇산업 키운 中
CATL, 외면받던 LFP 배터리로 세계 1위
‘타오 법칙’ 화웨이도 혁신으로 제재 돌파
韓, 中 공격적 목표·추진속도 경계해야
갤봇의 로봇 ‘G1’이 3월 베이징 하이뎬구 소재 무인 렌즈 가게에서 렌즈를 꺼내든 뒤 포장대로 향하고 있다. 갤봇은 이 로봇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찾고 소분한 뒤 포장과 출고까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 장면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정다은 베이징 특파원

밤 11시, 베이징 시민 리(李) 씨가 침대에 누운 채 배달앱 ‘메이퇀’을 열었다. 몸이 불편해 소화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앱 안에서 의사와 실시간 상담을 마치자 주문이 자동으로 무인약국에 넘어갔다. 갤봇(Galbot)이 만든 휴머노이드 로봇 ‘G1’은 5000여 종의 약이 빽빽이 들어찬 선반에 다가가 1분 안에 소화제를 집어 포장을 마쳤다. 처방전 검토와 복약 지도만 원격 약사가 담당했고, 배달맨은 로봇이 건넨 약을 받아 집 앞에 갖다 놓았다.

이 장면은 3월 갤봇을 만난 베이징 특파원들에게는 절반만 사실이다. 갤봇은 당시 제품명과 크기가 제각각인 약이 아니라 비슷한 규격의 렌즈를 집어 포장하는 능력만 보여줬다. 약국에 있던 로봇은 멈춰 있었고 그나마 특파원들이 관심을 갖자 치워버렸다고 한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뭉툭한 손가락 두 개만 지닌 로봇이 약을 챙겨 건낼 수 있는지 못미더웠다.

이제 중국 특유의 허풍이라며 넘어가면 그만일까. 그런데 갤봇은 연내 무인 약국·편의점을 1000곳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을 짰다. 중국 정부가 2014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고 지난해 12월 무인 약국을 허가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그럼 우리는? 중국보다 10년 늦은 2025년 말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가 통과시켜 비대면 진료가 일부 허용됐지만 아직도 약사법에 따라 택배로 약을 수령할 수 없다. 규제부터 풀고 반발의 여지를 없애는 중국 특유의 속도는 어설픈 기술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배터리 산업에서도 같은 장면이 지나갔다.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고 무겁다는 이유로 한국 배터리 3사가 외면했다. 중국은 반대로 움직였다. CATL은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과 연구개발(R&D) 세제 혜택을 등에 업고 LFP 기술에 돈을 쏟아부었다. 현재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42%를 맡고 있는 CATL은 지난달 6분 충전으로 1500㎞를 주행할 수 있는 LFP 배터리를 선보였다.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교통을 바꾸는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여기서도 ‘실험실 안에서나 가능한 성능일 뿐 실제 도로에서는 약해진다’는 쓴소리가 나오지만 중국은 개의치 않는다.

중국 반도체도 일취월장이다. 대표주자인 화웨이는 최근 60년간 반도체 업계를 지배한 ‘무어의 법칙’ 대신 ‘타오(τ)의 법칙’을 선언했다. 허팅보 화웨이 반도체 사업부 총재는 현재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에서 1.4나노만큼 밀도를 구현하겠다고 말했다. 미세공정으로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드는 대신 신호가 전달되는 시간을 줄여 성능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영화 ‘인셉션’에서 세상이 접힌 장면처럼 사각형을 접어 두 꼭짓점을 닿게 만드는 ‘로직폴딩’ 기술이 핵심인데,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다.

화웨이는 그간 구글 안드로이드 대신 자체 운영체제 ‘하모니’를 만들었고,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대신 ‘어센드’ 칩으로 미국 제재에 맞서왔다. 이번 로직폴딩 기술은 미국의 반도체 장비 금수 조치에 맞선 해법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로직폴딩이 주목되는 것은 인공지능(AI) 시대에 갈수록 중요도가 커지는 패키징을 활용하는 전략인데다 향후 한국이 강한 메모리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 ‘기술의 완성’을 기다리지 않는다. 완성되지 않아도, 세계 최고가 아니어도 국가가 규제를 풀고 자본을 투입해 결국에는 밀어올린다. 민간의 창의성은 국가가 깔아준 판 안에서 움직인다. 이 판 위에는 신산업을 도입하는 데 드는 반발 같은 사회적 비용도 없다.

저들의 방식은 우리에게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이 중국식 통제를 따라할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지만 바꿔야 할 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기술의 속도보다 느린 제도의 속도, 미국이 쥔 기술주권을 보완할 공급망 자립,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급격하게 달라지는 정책은 어느 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약점이다.

중국이 위협적인 이유는 기술의 완성도가 아니다. 반쯤 된 기술,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조차 기업과 국가가 온몸으로 받아 끝까지 밀고 가는 집념이다. 우리가 제도를 논의하는 동안 그들은 이미 다음 판을 깔고 있다.

임세원 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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