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대 ‘독립운동가 22촌’ 공방에 임청각 종손 이창수 선생 “촌수 무의미한 역사적 동지”

김종하 2026. 5. 31. 15:35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1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손이자 안동 임청각 종손인 이창수 선생이 동구 이준형 선생의 피 묻은 유서를 공개하고 있다. 박찬대 캠프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의 '독립운동가 22촌 방계' 혈연관계 논란에 대해 석주 이상룡 선생의 종손인 이창수 선생이 직접 언론 앞에 나서 대를 이은 가문 간의 역사적 인연을 강조했다.

31일 오후 박찬대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손이자 안동 임청각 종손인 이창수 선생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박 후보의 외가 친척이자 서예가인 유천 이동익 선생도 함께 참석했다.

이창수 선생은 간담회에서 "박 후보의 친증조부인 손암 박규양 선생은 고조부인 석주 선생과 함께 서산 김흥락 선생의 문하에서 동문수학한 동지였다"라며 가문 간의 깊은 뿌리를 설명했다.

이어 이 선생은 박 후보의 외고조부인 이종호 선생과 석주 선생의 아들이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동구 이준형 선생의 일화를 소개했다.

이 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1932년 석주 선생이 타계한 후 안동으로 귀국한 증조부 이준형 선생 일가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임청각에서 30리 떨어진 '돗질'이라는 마을로 이주했으며, 그곳에 살던 이종호 선생이 곤궁한 증조부 일가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고 전했다.

특히 이 선생은 1942년 9월 2일 이준형 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순국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거론했다. 이 선생은 "증조부께서 순국하셨을 때, 박 후보의 외고조부인 이종호 선생이 뛰어와 직접 방을 뜯고 들어가 선혈이 낭자한 유서와 시신을 수습했다"라며 간담회 현장에서 직접 보관 중인 피 묻은 유서를 공개했다.

당시 조부인 이병휘 선생이 독립운동으로 자리를 비운 탓에 이종호 선생이 상례 전반을 주관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 선생은 야당 및 독립유공자 후손 측이 제기한 '22촌 방계' 논란에 대해서도 직접 입장을 정리했다. 이 선생은 "우리 할머니(독립운동가 허은)가 서울에 계실 때도 인천의 박 후보 집에서 며칠씩 묵고 가실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다"라며 "대를 이어 가족처럼 왕래해 온 관계를 단순한 촌수 수치로 폄훼하는 것은 역사적 인식이 없거나 사실관계를 모르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지난 29일 오후 인천 중구 동인천역 남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석주 이상룡 선생의 고손 이창수 선생(오른쪽 둘째)이 유세차에 올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인천시장 후보와 함께 단상에 서서 두 가문 간의 독립운동 역사와 인연을 설명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박찬대 캠프

앞서 지난 29일 오후 동인천역 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 현장에는 이창수 선생이 직접 참여해 유세차에 올라 힘찬 연대 발언을 진행했다.

당시 유세차에 오른 이 선생은 "찬대의 증조부 손암 박규양 선생은 석주 선생과 동문수학했고 평생의 동지였습니다"라며 "박찬대 외고조부는 석주 선생의 아드님인 동구 선생의 동지였고, 유혈이 낭자한 선생의 시신을 홀로 수습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박찬대의 외가는 임청각과 한 가족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창수 선생의 지지 발언을 받은 박 후보 역시 상대 후보 측을 겨냥해 "우리 독립운동의 역사에 어떠한 흠집이라도 내려는 시도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라며 "기필코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종하 기자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