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계엄 극복 ‘소방수’ → 국가 미래 ‘설계자’… 정부 1년

김윤정 2026. 5. 3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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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불확실성 수습에 매진
파격적 정보공개·직접소통 특징
빠른 피드백 vs 보여주기식 국정
8000피 열었지만 환율·물가 부담
실용외교 성과… 대북관계 숙제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 취임 1년 국정 지지도 추이


12·3비상계엄 후유증 속에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오는 6월 4일 출범 1년을 맞는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시작된 지난 1년은 국정 공백과 정치 불신, 대외적 경제 불확실성을 수습하는 숨가쁜 ‘복구의 시간’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간 민생 안정, 권력기관 개편, 자본시장 활성화, 실용외교 복원에 전례 없는 속도전을 폈다. 흔들린 국가 시스템의 불을 끄는 첫해의 역할이 ‘소방수’에 가까웠다면, 2년차부터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리는 ‘설계자’로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4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에 도착해 침묵시위를 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 국무회의·업무보고 생중계… ‘라이브 국정’ 실험= 국정 운영 방식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파격적인 정보 공개와 직접 소통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국무회의 토론 34회, 부처 및 산하기관 회의 465회를 실시간으로 송출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11일 사상 최초로 시작된 부처 대상 ‘생중계 업무보고’는 정책 결정 과정을 국민에게 여과 없이 노출하는 이재명 정부의 대표적인 소통 브랜드가 됐다.

대국민 직접 소통도 대폭 늘었다. 전국 12개 지역을 돌며 3530명의 국민을 만나 2170건의 민원에 답한 타운홀 미팅과 1일 최대 8건에 달하는 이 대통령의 엑스(X·옛 트위터)는 대국민 직접 메시지 발신이 이어졌다. 지난해 7월 3일 취임 한 달 기자회견, 9월 11일 100일 회견, 올해 1월 21일 신년 회견 등 정례적인 기자회견도 전임 정부들보다 빈도가 잦다.

다만 회의 공개가 곧바로 숙의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중계를 통한 잦은 질책이 ‘보여주기식 국정’으로 소비된다는 야당의 비판도 잇따랐다. ‘라이브 국정’이 단순한 이벤트를 넘어 지속 가능한 소통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2년 차 운영에 달렸다.

◇ 검찰청 폐지·사법개혁 3법… 권력기관 판 바꿨다= 권력기관 개편은 이재명 정부 1년의 가장 핵심적인 제도 변화다. 168석 거대 여당의 주도 아래 전광석화 같은 입법 드라이브가 이어졌다.

지난해 9월 26일 검찰청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이 국회를 통과한 데 이어, 올해 3월 20일 공소청법까지 처리되며 기소 전담 기관으로의 전환이 1차적으로 제도화됐다.

아울러 지난해 12월 23일 내란재판부 설치법에 이어 올해 2월 26~28일 법왜곡죄, 재판소원, 대법관 증원을 담은 이른바 ‘사법개혁 3법’이 연달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형사사법 체계의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이제 쟁점은 개혁의 속도조절과 함께 이행 과정의 혼선 최소화로 넘어왔다. 급격히 재편된 수사·사법기관의 시스템이 현장에서 부작용 없이 작동할지 여부도 집권 2년차에 맞이할 최대 검증 과제다.

2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홍보관에서 정은보 이사장과 직원들이 코스피 8000포인트 돌파 기념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 닫고 프리미엄 시대로… 8000피의 빛과 그림자= 경제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띈 지표는 단연 자본시장이었다.

취임 직후인 지난해 6월 20일 3000선을 돌파한 코스피 지수는 10월 27일 4000선, 올해 1월 22일 5000선을 뚫었고, 5월 6일 7000선에 이어 급기야 5월 15일 사상 초유의 8000선 고지까지 단숨에 점령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라는 대외적 호재에 더해 지난해 8월 25일 2차 상법 개정안 통과 등 지배구조 개선을 밀어붙인 정부의 밸류업 의지가 맞물린 결과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 역시 전기 대비 1.7%로 반등하며,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를 키웠다. 그러나 8000포인트의 화려한 숫자가 전 국민의 민생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도체와 대형주 중심의 상승은 자본시장에 활력을 줬지만, 자산을 보유하지 않은 계층의 체감 경기와는 거리가 있다.

서울 주택의 전체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이 70%에 육박하며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31일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매, 월세 매물 정보가 걸려 있다. 지난 29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4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1∼4월 누계 기준 서울의 월세 비중은 70.0%로 작년 동기 대비 6.4%포인트 상승했다. [연합뉴스]


◇ 부동산·환율·물가 3고에 ‘K자 양극화’ 큰 숙제로= 서민 경제는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 등 이른바 3고(高) 현상은 국민 체감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중동전쟁 등의 여파로 1500원대를 넘나드는 원·달러 환율은 수입 물가와 생활 물가 부담을 가중시켰다.

부동산 시장은 2년 차 최대 뇌관이다. 6·27 대출 한도 축소와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으로 매매 시장의 과열은 억눌렀으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와 맞물려 매물이 잠기며 전월 세 가격 급등이라는 역효과를 낳았다. 다음 달로 예정된 세제 개편안과 주택 공급 대책이 2년 차 부동산 민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경제의 근본적 불안 요소는 ‘K자형 양극화’다. 1분기 제조업 생산은 3.0%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0.2%에 그쳤고, 청년 실업자는 27만 2000명에 달한다. 코스피와 수출 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주거비와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 국민 체감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뒤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시험대 선 실용외교… 한미동맹 재구성과 대북문제는 숙제= 외교안보 무대에서는 이념을 탈피한 ‘국익 중심 실용외교’가 돋보였다. 정부는 1년간 14개국을 방문하며 다자외교망을 복원했다. 지난해 10월 경주 APEC 정상회의는 외교전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 30일 다카이치 일본 총리, 11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연달아 정상회담을 가지며 주변 4강 외교망을 안정화 시켰다.

트럼프 미 행정부의 거센 관세 압박 속에서도 상호관세율을 15%로 방어하며 선방했고, 대미 3500억달러 투자 반대급부로 핵추진잠수함 도입이라는 안보적 성과까지 도출했다. 한일 셔틀외교 복원과 시진핑 주석과의 국빈 회담을 통한 대중 관계 회복 역시 실용외교의 결과물이다.

다만 실용외교의 진정한 척도는 후속 이행이다. 대미 투자 이행 방식과 쿠팡의 국제투자분쟁(ISDS) 제소 등 비안보 현안이 통상 마찰로 얽히면서, 6월 초 열릴 핵잠 실무 킥오프 회의 등 후속 조율은 험로가 예상된다. 대북관계 역시 뚜렷한 돌파구가 없다. 정부는 ‘한반도 평화공존’ 기조 아래 대북 확성기 중단 등 유화 조치를 폈으나,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을 헌법화하며 철저한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윤정 기자 kking15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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