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의료비 지출만 따지는 희귀질환 제도···다발성경화증 '사회적 비용' 빠졌다
보이지 않는 장애 사각지대
조기 진단 및 감별 진단 필수
희귀질환관리법 개정 촉구

"대학교 3학년 때 정기적인 진료가 필요했지만 입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출석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취업 면접에서는 질환을 공개하자 '건강한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어요. 재발에 대한 불안감과 질환으로 인한 우울감·스트레스로 장기간 정신과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제도는 영구적이거나 가시적인 장애 중심이라 보이지 않는 질환은 지원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고 생각해요." ―20대 여성 신지현 씨
"2011년 스무 살이 되던 해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미각 소실을 겪었습니다. 이후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았어요.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병입니다. 때로는 아프다는 사실조차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30대 여성 전효원 씨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어려움은 진단 지연이나 치료비 부담에만 그치지 않는다. 재발과 완화를 반복하는 질환 특성 탓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장애는 학업·취업·복지제도에서 인정받기 어렵다. 또한 치료제 비용효과성 평가와 희귀질환 지원 체계가 교통비·돌봄비·소득 손실 같은 사회적 비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발성경화증은 면역체계 이상으로 뇌·척수·시신경 등 중추신경계가 공격받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시력 저하 △감각 이상 △근력 약화 △평형감각 장애 △피로감 △배뇨장애 등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재발과 완화를 반복할 수 있다. 전 세계 환자는 약 290만명, 국내 환자는 약 2000명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20~40대 젊은 층에서 발병하고 여성 환자 비율이 높아 학업·취업·결혼·출산·육아·경력 유지 등 생애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현행 제도, 보이지 않는 장애와 사회적 비용 외면
30일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는 서울 종로구 한국장애인예술원 이음아트홀에서 제18회 세계 다발성경화증의 날 기념행사를 열었다. 올해 행사는 '나의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서는 △환우 발표 △다발성경화증 진단 강의 △희귀질환 정책 강의 △협회 정책위원회 출범 등이 이뤄졌다.

권 교수는 다발성경화증이 20~40대에 발병하고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이 질환은 인생의 한복판에 찾아온다"며 "여성에게 더 많다면 취업·결혼·출산·육아·경력 과정에서 병이 생겨 삶 전체에 문제를 일으키고 그 영향을 가족 전체가 받게 된다"고 말했다.
재발과 완화를 반복하는 질환 특성은 현행 장애 및 복지 제도와도 충돌한다. 권 교수는 "현행 제도는 영구적 장애 상태를 강조하지만 질환 특성상 좋아지면 멀쩡해 보이고 나빠지면 문제가 발생해 사실상 어떤 지원도 받기 어렵다"며 "복지 지원에서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질환"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극심한 피로 △집중력 저하 △인지기능 저하 △만성 통증 △우울·불안 △방광·장 기능 이상 등은 현재 장애 기준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비용효과성을 의료비 중심으로 계산하는 방식에도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치료제가 없던 시기에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적어 건강보험 자료상 의료비 지출은 낮게 잡힌다. 반면 실제 환자와 가족은 직장 상실·돌봄 부담·교통비·보호자 동행 비용 등을 떠안는다는 것이다.
치료제 평가 과정에서 사회적 비용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사회적 비용을 계산식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회적 비용 계산을 아무도 안 해본 것"이라며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와 비용을 계산하고 추적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환자들이 질병 때문에 쓴 교통비·보호자 동행 비용·활동지원사 추가 비용 등을 입력하면 향후 희귀질환의 사회적 비용을 산출하는 근거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권 교수는 "올해 항목을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자료가 수년간 축적돼야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진단 기준 완화로 조기 진단 기대···정확한 감별 중요
진단 체계 개선 필요성도 강조됐다. 김기훈 대한신경면역학회 홍보이사(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2024년 개정된 맥도날드 진단 기준을 설명하며 다발성경화증 조기 진단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병변이 여러 부위에 나타났는지를 보는 기존 공간 파종 기준은 뇌실 주변·피질 및 피질인접·뇌간 및 소뇌·척수 등 4개 구역 중 2개 이상을 충족해야 했다. 반면 개정 기준에서는 시신경이 포함돼 5개 구역 중 2개만 만족하면 된다.

조기 진단은 치료 성과와 직결된다. 신경면역질환은 뇌·척수·시신경 등 중추신경계를 침범해 손상이 누적되면 시력 저하나 마비 같은 기능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신경은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쉽지 않아 재발을 막고 장애 진행을 늦추는 것이 치료의 핵심이다. 초기 증상이 피로감·감각 이상·시력 저하 등 흔한 증상과 겹치면 스트레스나 과로·안과 질환·디스크 등으로 오인돼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해외 연구를 인용해 새 진단 기준 적용 시 초기 평가에서 다발성경화증을 바로 진단하는 비중이 62%에서 80%로 높아지고, 진단 소요 기간도 84일에서 40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국내 다기관 연구에서도 진단 기간을 4~5개월 단축할 수 있다는 결과가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진단 기준 완화가 무조건 정확한 진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 교수는 "진단 기준의 민감도를 높이면 특이도, 쉽게 말해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새로운 진단 기준 아래 초기 오진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다발성경화증과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MOG항체연관질환 등을 감별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김 교수에 따르면 유럽의 다발성경화증 유병률은 10만명당 142명 수준인 반면 국내는 10만명당 3.5명 수준에 그친다. 서양과 달리 국내에서는 중추신경계 탈수초질환을 볼 때 다른 질환일 가능성을 충분히 배제한 뒤 진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질의응답에서도 감별진단 문제가 제기됐다. MOG항체검사를 진단 항목에 포함할 수 없는지 묻는 질문에 김 교수는 "글로벌 기준에서는 모든 중추신경계 염증성 질환 환자에게 MOG항체검사나 아쿠아포린-4(AQP4) 항체검사를 일괄 시행하도록 권고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시아권은 상황이 다르다며 "해당 질환들의 발병 비중이 비슷해 기본 검사로 진행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 우리 병원에서는 이미 기본 검사로 시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희귀질환관리법 개정해 돌봄·심리 지원 등 넓혀야"
최종철 한국다발성경화증협회 정책위원장은 검사 기술과 신약 접근성을 국제적 수준으로 높이고 △희귀의약품 연구개발 및 지원 관련 특별법 제정 △국립희귀질환센터 설립의 국정과제 반영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배우자가 다발성경화증을 진단받았다가 15년 만에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으로 다시 진단받은 경험도 공유했다. 그는 이 같은 진단 혼선 사례를 언급하며 "국내 연구 지원과 진단 및 급여 기준의 근거 체계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에는 환우와 가족을 비롯해 대한신경면역학회·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한국머크 헬스케어·한국아스트라제네카·한국로슈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다발성경화증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성 향상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애·사회적 비용·가족 부담을 희귀질환 정책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지가 향후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다발성경화증(MS)= 면역체계 이상으로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계의 수초가 손상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시력 저하·감각 이상·마비·피로감·배뇨장애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나며 재발과 완화를 반복할 수 있다.
☞시신경척수염범주질환(NMOSD)= 주로 시신경과 척수를 침범하는 중추신경계 자가면역질환이다. 다발성경화증과 증상이 비슷할 수 있지만 치료 방향이 달라 정확한 감별진단이 중요하다.
여성경제신문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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