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매일 새벽 주유소 가격 살피는 사연... 은퇴했던 석유 감시단의 귀환
미시 데이터 전문가로 우연히 합류
박사학위 받고 교수 대신 시장 감시
3년 전 손 뗐지만 전쟁 나자 다시 분석

"2023년에 '석유 다신 안 해' 했는데, 이렇게 다시 하게 됐네요. 미국·이란 전쟁 터지고는 항상 새벽 4, 5시에 일어나요. 새벽에 (주유소 판매가를) 봐야 사무실에서 원래 하던 일을 하니까요. 지난주 딸이 졸업해 미국에 가야 했는데 출국 날에도, 미국 도착 직후에도 분석을 했죠."
지난 25일 만난 이서혜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 대표에게 요새 하루 루틴을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십수 년간 국제유가 등을 분석하고 석유시장을 감시한 그에게도 전쟁으로 고유가가 몰아친 요 몇 달은 더욱 바쁘고 엄중한 시기였다. '모두를 위해 누군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 없이는 못 할 일. 운명처럼 다가온 석유에 그는 진심이었다.
석유와의 동행이 시작된 그날

이 대표는 미시 데이터 분석 전문가다. 연세대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통계학, 뉴욕대에서 경제학 석사를 받았다. 두 아이 육아로 박사과정 진학을 몇 해 미뤘지만 학교로 돌아가 교수가 될 생각이었다. 잠시 쉬려던 이 대표를 다시 데이터 앞으로 끌고 온 건 그의 어머니, 당시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의 김재옥 대표였다.
그는 "공부 쉬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소시모에서 필요한 데이터 분석을 맡기셨다"며 "그날도 프로젝트 데이터 분석을 끝내 갖다주던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날'은 2009년 시민단체 차원에서 석유시장 감시단 설립을 추진 중이던 업계 및 정부 관계자들이 소시모를 찾은 날이었다. 분석틀을 논의 중이던 이들과 우연히 마주친 이 대표는 데이터 분석가로서 회의까지 참석했다. 석유와 동행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감시단 활동이 궤도에 오른 건 국내 유가 상승기였던 2011년이다. 하락세인 국제유가와 반대로 움직이는 국내 가격을 분석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5년 미국 셰일 혁명을 계기로 소시모에서 나와 E컨슈머 산하 에너지석유시장감시단으로 조직을 확대·개편했다. 마침 박사학위를 딴 이 대표는 교수 취업이 아닌 감시단 활동을 택했다.
'다시는 안 해' 했지만... 중동 전쟁에 다시 한번

사실 감시단은 2023년을 끝으로 활동을 마쳤다. 광고·후원 없이 운영했는데, 전력 대세 시대에 석유가 미운 오리 새끼 신세가 돼서다. 이 대표는 "전력 쏠림이 심해지면서 화석연료인 석유에 대한 관심이 줄고 감시단이 왜 필요하냐는 얘기도 들었다"며 "(감시단이 아닌) E컨슈머라는 단체로서 전기차 정책 등 다른 분야 데이터 분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올해 3월 중동 전쟁으로 사상 최초로 호르무즈해협이 막히고 국제·국내 유가가 급등하자 정부가 다시 그를 찾았다. 이 대표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하고 있다"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가 보기에 3월 초의 국내 유가 급등세는 과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정유사의 리터(L)당 주유소 공급가격(세후)은 2월 넷째 주 △휘발유 1,616.18원 △경유 1,545.6원에서 3월 첫째 주 △휘발유 1,766.05원 △경유 1,809.89원으로 100~200원씩 올랐다.

석유 급등세를 잡기 위해 정부가 꺼내 든 최고가격제는 의미가 있었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이 대표는 "환율도 높아 최고가격이 없었다면 경유는 L당 3,300~3,400원, 휘발유는 2,600원까지 갔을 것"이라며 "소비자가 대응할 시간을 벌어줬다"고 평가했다. 그래도 이제는 출구를 마련할 때라고 했다. 그는 "레저용이 많은 휘발유부터 두 번에 걸쳐 올리는 식으로 종료하고, 생계형 수요가 많은 경유는 다른 지원책을 고려하며 엑시트(exit)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은 '착한주유소' 선정으로도 바쁘다. 가격이 저렴하고 불법행위 이력이 없는 등 여러 요건에 맞는 주유소들을 2주마다 선정하는데, 이날도 서울 서초구 감시단 사무실에는 착한주유소에 보낼 스티커와 지관통이 쌓여 있었다. 이 대표는 앞으로도 주유소 가격을 꾸준히 분석할 계획이다. "같은 분석틀로 가격이 적정한지 일관성 있게 보는 게 무게감 있다고 생각해요. 시장의 공정성에 도움이 되는 장치만 돼도 성공 아닐까요."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투표지 노출' 이 대통령 고발당했다… 보수단체 "관리 소홀 선관위도 포함"-사회ㅣ한국일보
- '투표 새치기 논란'에 이준석 "줄 없는데 어떻게 서나"… 법적 조치 나선다-정치ㅣ한국일보
- 도경완 "주식 대폭락에 수익 반납"... 솔직한 투자 후일담-문화ㅣ한국일보
- "제가 장가를 안 가서..." 50대 미혼 대표가 만든 '육아 천국' 회사-사회ㅣ한국일보
- 부산 찾은 MB "박형준 뽑아달라"… "해수부 폐지 책임자 등판" 반발도-지역ㅣ한국일보
- '탱크데이 논란' 스타벅스 직원들, 경영진에 싸늘한 시선… 1점대 평가-사회ㅣ한국일보
- "또또또또" 태도 지적한 한동훈에... 하정우, '韓 지지자 폭행 사죄하라' 응수-정치ㅣ한국일보
- 직장인인데 '엄카' 쓰면 증여세?… 국세청이 밝힌 상속·증여세의 진실-경제ㅣ한국일보
- '나는 국힘 찍겠지만 민주당이 이길 것 같다'?...좁혀진 지지율, 안 좁혀지는 민주당 대세론 [6·3
- "놀고먹다 공고 나와 성과급 6억"… 삼전 직원 글, '역풍'에 결국 삭제-사회ㅣ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