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자하 하디드… 거장의 건축을 품고 문화가 된 와인

아르떼 2026. 5. 31.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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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동훈의 Digital eXperience아웃룩
CREATIVE CITY ROADMAP - ② 리오하

▶▶[①편] 랜드마크 건축을 넘어…시드니가 사랑받는 진짜 비밀

두 번째로 살펴볼 도시의 테마는 미식과 건축의 만남이다. 스페인 최고 등급의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인 리오하는 단순히 와인을 맛보는 것이 아닌 세계적인 건축계 거장의 작품을 체험하는 와인 관광의 ‘데스티네이션’으로 거듭났다. 프랭크 게리를 비롯한 스타 건축가들이 설계한 건축물들은 리오하의 와인을 문화예술의 한 영역으로 확장시킨다.

보데가스 이시오스 와이너리(Bodegas Ysios Winery)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2001년

자연과 생물의 형상을 디자인 영감으로 풀어내는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이시오스 와이너리는 리오하 건축 여행의 시작점이다. 와이너리의 이름 ‘Ysios’는 이집트 신화 속 여신 이시스(Isis)와 남신 오시리스(Osiris)에서 가져왔다고 알려져 있다. 신전에 비유되기도 하는 이 공간은 건축적 울림을 지니고 있다. 칸타브리아 산맥(Sierra de Cantabria)의 능선을 닮은 금속 지붕의 곡선은 와이너리의 배경이 되는 풍경과 부드러운 조화를 이루고, 수공간에 지붕의 곡선이 반사된 모습은 둥근 와인 배럴을 닮기도 했다.

와인 생산 과정을 연결성 있게 가져가고자 긴 형태로 설계되었는데, 생산 공정의 기능을 고려했을 뿐 아니라 방문자 센터에서는 높은 창을 통해 포도밭을 조망할 수 있어 건축적 감동을 극대화했다. 이처럼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건축 디자인은 포도밭이라는 맥락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Hotel Marques de Riscal)
프랭크 게리, 2006년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은 빌바오 이펙트의 주인공 프랭크 게리가 리오하에 세운 와인의 물결이다. 와인 생산을 처음 시작한 1860년대 이래 매년 와인을 보관해 오고 있는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이너리는 게리를 설득하기 위해 그가 태어난 해의 와인 코르크를 열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해진다.

오래된 와이너리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지어진 이 호텔은 와인에서 영감받아 외관을 디자인했다. 와인의 버건디 색이 포인트 컬러로 사용되었고, 코르크를 감싸는 호일과 같은 은빛, 그리고 마르케스 데 리스칼 와인의 병을 감싸는 메쉬와 같은 금빛의 금속 리본이 건물 전체를 감싼다.

내부에는 포도를 활용하는 스파 비노테라피(Vinothérapie®)와 고급 레스토랑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건축, 와인, 미식, 숙박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어낸 마르케스 데 리스칼 호텔은 2024년 World's Best Vineyards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

톤도니아 와이너리 파빌리온(Tondonia Winery Pavilion)
자하 하디드, 2006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설계한 톤도니아 와이너리 파빌리온은 와인을 따르는 디캔터의 형상을 띄고 있다. 국내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설계자로 잘 알려진 그녀는 로페스 데 에레디아 와이너리(Bodegas López de Heredia) 창립 125주년을 맞이해 이 전시 및 시음 매장을 디자인했다. 하디드 특유의 유동적인 디자인 언어를 통해 공간 자체를 오브제로 만든다.

현대적인 구조물 내부에는 1910년 브뤼셀 세계 박람회 당시 사용했던 나무 소재의 앤티크 매대가 보존되어 있어 오랜 전통을 현대적으로 감싸 안은 파빌리온이 완성되었다. 작은 규모이지만, 리오하 건축 순례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이다.

보데가스 포르시아(Bodegas Portia)
노먼 포스터, 2010년

리오하를 지나 인근 와인 산지인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로 향하면, 하이테크 건축의 거장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포르시아 와이너리가 나타난다. 외관의 코르텐강 소재는 인근 지역 토양과 와인의 붉은 빛깔을 닮아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세 개의 날개를 펼친 듯한 '트레포일(Trefoil)' 구조이며, 이는 와인 제조의 핵심 단계인 발효, 숙성, 저장을 각각의 구역에 배치한 기능적 설계이다.

노먼 포스터는 대지의 높이 차이를 이용해 포도 수확 트랙터가 옥상으로 진입하여 포도를 공급하고, 중력을 활용해 즙을 짜내는 시스템을 구현했다. 방문객은 와이너리 중심부에 위치한 퍼블릭 갤러리를 비롯한 공간에서 와인이 생산되는 현장을 살펴보고, 외부의 포도밭의 풍경을 눈에 담게 된다.




리오하 지역의 건축 프로젝트는 와인 애호가를 넘어 건축과 예술에 관심 있는 전 세계 관광객을 주요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산간 지역으로 불러 모은다. 스타 건축가들의 참여는 리오하 와인에 ‘럭셔리’라는 이미지를 덧입혀 프리미엄화해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강력한 거점이 되었다. 추가적으로,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호텔 마르케스 데 리스칼과 같은 고부가가치 숙박 시설은 단순 당일 관광에 그치던 방문객들을 지역 내에 체류하게 만들었다.

이곳의 와이너리들의 힘은 거장의 건축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넘어, 방문객이 와인의 본질을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경험의 이음새를 유연하게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포도밭의 흙내음에서 시작된 여정은 거장의 건축물이 주는 놀라움을 만나고 그 안에서 와인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지나 그 특별한 결실을 호텔과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문화적 레이어로 마무리된다. 방문객은 이 흐름을 따라가며 와인 한 병에 담긴 자연과 사람의 손길, 그리고 예술적 영감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햇볕과 땅, 그리고 농부가 빚어낸 와인이 건축을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위한 공간이 되었듯,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자산들도 이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서사를 담은 건축적 그릇을 만난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다음 CREATIVE CITY ROADMAP에서는 또 다른 감각이 깨어나는 도시로 발길을 옮겨보겠다.

Special Thanks to SK

이동훈 디스트릭트 공동 창업자·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