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스》, 왜 한국 히어로들은 하나같이 짠할까
모지리 초능력자들이 보여준 한국형 영웅의 조건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무빙》 《하이파이브》 《캐셔로》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그리고 《원더풀스》…. 이제 한국형 슈퍼히어로물도 하나의 계보를 이룰 만큼 많아졌다. 그런데 이들 작품 속 초능력자들은 어째서 하나같이 짠내 가득한 모지리에 가까울까.
"내가 쓸모가 생겼어." 넷플릭스 시리즈 《원더풀스》에서 강로빈(임성재)은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자신이 구했다는 생각에 그렇게 감격한다. 자신도 모르게 괴력을 발휘하는 초능력을 갖게 됐지만, 그는 여전히 그 사실을 믿지 못한다. 그가 지금껏 '왕호구'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은채니(박은빈)의 소꿉친구이면서 채니의 할머니가 운영하는 큰손식당에서 양파를 까는 등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는 늘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왔다. 자존감이 낮은 그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유다.
강로빈이 그렇듯, 《원더풀스》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은 어딘가 어수룩하고 바보스럽다. 순간이동 능력을 갖게 된 은채니는 어린 시절부터 심장병을 앓으며 오늘내일하지만, 특유의 까칠한 성격과 직설적인 화법 때문에 동네에서는 '개차반'으로 통하는 인물이다. 써먹을 데가 애매한 '접착 능력'을 갖게 된 손경훈(최대훈) 역시 악성 민원을 끝없이 제기해 공무원들에게 요주의 인물로 찍힌 '개진상'이다.

유인식의 휴머니즘과 허다중표 코미디의 조화
이러니 어느 날 우연히 괴력을 갖게 된 강로빈이나 순간이동 능력을 지닌 은채니, 접착 능력을 갖게 된 손경훈이 위기에 처한 마을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행동들이 저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들과 같을 수 없다. 이들은 일단 자신들의 초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조차 몰라 엉뚱한 해프닝들을 벌인다.
《원더풀스》라는 제목은 그래서 '원더풀한 사람들'이라는 뜻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놀라운 바보들(wonder+fools)'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바보'일까. 여기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있다. 일단 한국인들은 대단한 영웅들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에 시큰둥한 편이다. 그런 이야기는 저 할리우드 슈퍼히어로물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긴다. 태생적으로 힘을 가진 자들이 결코 서민들의 편에 설 것이라고 쉽게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 사정을 더 잘 안다'는 정서 위에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이 선다. 《원더풀스》의 초능력자들이 어딘가 중심에서 밀려난 비주류이자,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소외자들로 그려지는 이유다. 그렇게 밀려나 있기 때문에 이들은 누구보다 밀려난 서민들 입장에서 싸울 수 있게 된다.
슈퍼히어로물의 외형을 갖고 있지만, 소수자들의 의도치 않은 영웅적 행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원더풀스》는 이 작품을 연출한 유인식 감독의 전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박은빈이 출연하기도 했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장애인, 성소수자, 어린이,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이야기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세상에서 소외받는 인물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이야기 구조는 《원더풀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원더풀스》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물론, 유인식 감독의 대표작인 《낭만닥터 김사부》와도 어딘가 연결고리가 있어 보인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변방의 돌담병원을 배경으로, 김사부(한석규)라는 초인적인 의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인물이 펼쳐내는 낭만적인(?) 인술을 다룬 작품이다. 역시 변방의 서민적 영웅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것은 어쩌면 한국인들이 원하는 영웅이 지구를 구하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인 냄새를 풍기는 휴머니즘에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대목이 아닐까.


한국형 슈퍼히어로의 짠내 가득한 계보
《원더풀스》에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괴력을 발휘하며, 순간이동을 하는 초능력이 등장한다. 하지만 더 도드라지는 건 이 인간적인 '모지리' 초능력자들이 마을 사람들과 얽히며 벌어지는 휴먼드라마와 코미디다. 여기에 영화 《극한직업》으로 익숙한 허다중 작가의 코미디가 더해지고, 《낭만닥터 김사부》의 휴먼드라마적 색채가 짙은 강은경 작가가 대본 작업에 함께했다. 초능력의 블록버스터에 가까운 볼거리만큼이나, 한국적 정서가 깃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이유다.
《원더풀스》에서도 느껴지듯,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은 초능력 자체보다 그 능력을 갖게 된 자의 짠내 가득한 서사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원더풀스》의 '놀라운 바보들'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엘리트주의적 영웅 서사에 대한 반기에 가깝다. 실제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 자신들이 가진 힘만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이 서사에는 깃들어 있다. 그러한 하향식 구원이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소외되고 무시당하던 이들이 연대를 통해 보여주는 상향식 구원에 대중은 더 깊이 공감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본주의와 학벌주의, 스펙 중심 능력주의가 고도화된 한국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한국 사회의 진짜 초능력이란 슈퍼히어로들이 가진 괴력이 아니라, 막대한 재력과 화려한 스펙, 태생적인 계급 같은 것들이라는 이야기다. 《원더풀스》의 모지리 초능력자들이 맞서 싸우는 대상이 막대한 재산을 갖고 생명 연장을 꿈꾸며 생체실험까지 자행하는 엘리트들이라는 점이 이를 말해 준다.
《무빙》 《하이파이브》 《염력》 《캐셔로》 그리고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에 이르기까지, 이제 하나의 계보를 이루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면면이 이처럼 일관된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무빙》의 초능력자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숨어 지낸다. 그들이 결국 세상에 나와 초능력을 쓰는 것도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초능력을 꺼내놓는다.
《하이파이브》에서 아버지를 위해 초능력을 쓰는 태권소녀 완서(이재인)가 그렇고, 《염력》에서 철거민들을 위해 싸우는 석헌(류승룡)이 그러하며, 《캐셔로》의 여자친구를 위해 초능력을 쓰는 강상웅(이준호)도 그렇다. 그래서 이들에게 초능력은 축복이라기보다, 자신도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갖게 된 형벌에 가깝다. 세상 따위는 구하고 싶지 않지만, 가족마저 위기에 처하자 결국 그 능력을 꺼내드는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독특한 면면이다.
그래서 한국형 슈퍼히어로물을 보다 보면, 그들은 그저 시원시원한 액션 히어로라기보다 각박한 세상을 풍자하는 짠내 서민의 대표자들처럼 느껴진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처럼 현대병에 걸려 초능력을 상실한 가족의 이야기가 슈퍼히어로물을 뒤틀어낸 블랙코미디처럼 보이는 이유다. 우울증과 불면증, 비만, 왕따 같은 현대병에 걸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영웅들이라니. 기막힌 블랙코미디 아닌가.
《원더풀스》도 이 기막히고 짠내 가득한 한국형 슈퍼히어로들의 계보를 잇고 있다. 초능력자들을 앞세워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결국 맨 마지막의 짧은 내레이션 속에 모두 담겨 있다. "다른 사람이 있다. 조금 늦은 사람도 있다. 애초에 한가한 언저리 쪽이 좋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결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은 없다." 밀려난 비주류들에 대한 헌사. 《원더풀스》가 초능력까지 가져와 하려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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