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에 쓰러지고 좀비처럼 걷고 라켓은 냉장고로…폭염에 신음하는 프랑스오픈

선수들은 경기 직후 코트에 그대로 쓰러졌다. 어떤 선수는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수는 라켓을 냉장 보관함에 넣어두기 시작했다. 메이저테니스 대회 2026 프랑스오픈 첫 주를 상징하는 장면들은 폭염과의 싸움에 가까웠다.
CNN은 31일 “유럽 전역을 덮친 이례적인 폭염이 프랑스오픈 선수들의 경기력과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기후 변화가 스포츠 현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야쿠브 멘시크(체코)에게서 나왔다. 멘시크는 지난 28일 마리아노 나보네(아르헨티나)와 4시간 30분이 넘는 접전 끝에 승리한 직후 클레이 코트 위에 그대로 쓰러졌다. 그는 “이런 날씨에서 경기하는 것은 미친 일”이라며 “태양 아래에서 4시간 이상 뛰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말했다. 멘시크는 경기 도중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전해질 보충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경기 막판에는 근육 경련까지 겪었다고 설명했다. 의료진은 휠체어를 준비했지만 그는 스스로 걸어서 코트를 빠져나갔다.
세계랭킹 16위 카스페르 루드(노르웨이)도 1회전 승리 후 “열사병에 걸린 느낌이었다”며 “어지럽고 좀비처럼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루드는 경기 중 의료진의 처치를 받기도 했다. 세계랭킹 1위 얀니크 신네르(이탈리아) 역시 경기 내내 얼음주머니를 목과 얼굴에 대고 체온을 낮추는 모습이 포착됐다. 선수들은 휴식 시간마다 그늘 아래로 뛰어가 우산을 쓰고 휴대용 선풍기를 사용하거나 얼음과 음료를 이용해 체온을 낮추고 있다.
더위는 선수들뿐 아니라 장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우승자 코코 고프(미국)는 예비 라켓을 냉장 보관함에 넣어두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고온 환경에서는 스트링 장력이 평소보다 빠르게 느슨해지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공이 평소보다 더 높게 튀고 강한 회전이 걸리는 등 경기 조건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파리는 통상 7월에 나타나는 기온을 5월에 기록하고 있다. 프랑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프랑스 일부 지역은 섭씨 32도를 넘는 고온이 이어지고 있으며, 올해 5월 최고기온 기록도 새로 작성했다. 기후 연구단체 클라이밋 센트럴은 이번 파리 폭염이 기후 변화로 인해 발생 가능성이 최소 4배 이상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 기후연구센터(ICARUS) 피터 손 소장은 “이 같은 폭염은 기후 변화 때문에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고 강도도 커졌다”며 “특히 프랑스와 영국에서 나타나는 기록적인 수치는 놀라울 정도”라고 밝혔다.
폭염은 경기장 밖에서도 피해를 낳고 있다. 프랑스 정부에 따르면 최근 폭염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망 사례가 최소 7건 보고됐다. 파리 마라톤 행사와 리옹 스포츠 이벤트 참가자가 잇따라 숨지면서 프랑스 체육부도 폭염 속 스포츠 활동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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