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비서 태운 ‘더 뉴 그랜저’…기술은 진화했고 기본기는 단단했다[타보니]

현대자동차가 7세대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인 ‘더 뉴 그랜저’를 내놨다. 이번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의 진화를 선언했다. 과거의 그랜저가 크기와 안락함, 정숙성 등 하드웨어적 강점으로 ‘성공의 상징’을 대변했다면, 이번 신형은 인공지능(AI)과 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우며 차량 내 경험을 바꾸는데 주력했다.
지난 28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 더리버몰에서 출발해 강원 춘천의 한 카페까지 왕복하는 약 140㎞에 이르는 주행 코스에서 더 뉴 그랜저 가솔린 2.5 캘리그래피 모델을 시승했다. 이번 시승은 고속 주행은 물론 비가 살짝 내려 노면이 미끄러운 악조건까지 포함돼 차량의 기본기와 미래 기술을 입체적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했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기존 세단과 차별화된 실내 레이아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센터패시아 중앙의 17인치 대형 디스플레이였다. 마치 테슬라 등 최신 전기차에서 볼 수 있는 넓은 패널을 연상시키는 화면은 탁 트인 개방감과 디지털 기기 같은 직관성을 보여줬다. 화면 분할 기능을 통해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미디어 앱을 동시에 구동해도 답답함이 없었다.
반면 운전석 전면의 계기판(클러스터)을 보고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인 계기판이 사라졌고 9.9인치 크기로 매우 작아져 사실상 시각적인 존재감이 없어졌다. 대신 전방 표시 장치(HUD)가 속도와 변속단, 경로 등 핵심 주행 정보를 운전자의 시선이 닿는 전면에 뚜렷하게 제공했다. 내비게이션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뱁새눈’을 뜨고 고개를 돌릴 필요가 없어 주행 중 시선 분산이 획기적으로 줄었고 운전이 한결 편안했다.

이번 신형 그랜저의 핵심은 현대차 최초로 적용된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플레오스 커넥트’와 생성형 AI 비서 ‘글레오 AI’다. 운전 중 “글레오, 통풍시트 켜줘” 혹은 “에어컨 온도 낮춰줘”라고 말하면 별도의 물리 버튼 조작 없이 척척 기능을 수행했다. 단순 단발성 명령을 넘어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도 보였다. 운전석에서 “창문 열어줘”라고 한 뒤 동승석에서 “나도”라고 말하면 시스템이 위치를 파악해 조수석 창문을 내리는 식의 영리한 제어가 가능했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스마트폰 수준의 완벽한 AI 비서를 기대했다면 아직은 아쉬움이 남았다. 공조 시스템이나 창문 개폐 등 차량 제어 측면에서는 유용했지만, 특정 복합 명령이나 일부 서드파티 앱 연동 등 고도화된 지능형 서비스 단계에서는 다소 제한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술의 지향점은 명확했지만 아직 소프트웨어 완성도를 더 다듬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어 보였다.
주행 성능과 승차감 등 하드웨어 본연의 가치는 그랜저 명성에 걸맞게 단단했다. 시승 당일 비가 내려 노면이 다소 미끄러운 상태였음에도 고속 주행 시 차량의 흔들림이나 불안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전자 제어 서스펜션이 노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인지해 젖은 아스팔트 위에서도 시종일관 매끄럽고 안정적인 접지력을 유지했다.

시트의 안락함도 훌륭했다. 장시간 운전에도 피로감이 적었고 뒷좌석 공간은 고급 세단 느낌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리클라이닝 기능과 넉넉한 무릎 공간 덕분에 동승자에게 안락한 거주성을 제공했다. 다만 차량 외관에서 풍기는 웅장한 덩치에 비하면 실내 공간 자체가 생각만큼 아주 넓게 체감되지는 않았다. 제네시스 같은 최상위 플래그십 브랜드의 전용 고급 세단이 주는 압도적인 공간감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준대형 세단 패밀리카로서의 실용성에 방점을 찍은 모양새다.
외관 디자인은 기존 그랜저를 세련되게 계승했다. 전면부의 ‘샤크 노즈(상어 코)’ 형상이 한층 강조돼 날렵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뿜어냈다. 얇고 길어진 심리스 호라이즌 램프와 볼륨감 있는 차체 비례는 도로 위에서 그랜저 특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더 뉴 그랜저는 소프트웨어 중심의 미래차로 가는 과도기적 패러다임을 잘 보여주는 이정표로 평가된다. 현대차는 글레오 AI의 지능화 수준에는 아직 발전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넓은 패널과 편리한 HUD가 주는 직관적인 주행 환경, 악천후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탄탄한 주행 기본기는 ‘국민 세단’의 명성을 이어가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자평했다.


춘천 | 박홍두 기자 p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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