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정당은 어떻게 환경문제를 악용하는가 [평범한 이웃, 유럽]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는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 박상미 옮김, 마음산책).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인도인 아시마의 기분을 나는 안다. 스위스에 정착하고 충분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마치 방금 도착한 것처럼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원래 살던 곳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긴다.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때로 삶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환경이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만 받는다면 다행이다. 가끔은 거기에 적대적인 의문, 정당하지 않은 분노가 포함되기도 한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늘 환영받기를 기대한 적은 없지만 적어도 박대는 받고 싶지 않은데 요즘은 내가 숨 쉬는 공기에 희미한 박대가 섞여 있는 것만 같다. 스위스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 주도로 오는 6월14일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이민 제한 안건 ‘1000만 스위스를 저지하라(Keine 10-Millionen-Schweiz)’ 때문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 안건에 대한 지지율(52%)이 반대율보다 높다.
“1000만 스위스를 저지하라.” 귀에 착 감기는 구호다. 이 글을 쓰는 5월11일 오전 9시20분 현재 스위스 인구는 정확히 915만437명이다. 연방정부의 실시간 인구 계수기에 따르면 그렇다. 7분12초마다 인구가 한 명 늘어난다는 뜻이다. 한국과 비교해 보자. 한국 영토(10만363㎢)는 스위스(4만1285㎢)의 2.4배이지만 한국 인구는 스위스 인구의 5.5배다. 스위스 인구밀도가 널널한 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장의 속도와 사람들의 인식이다. 1950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반세기 동안 인구는 200만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2011년에서 2024년 사이에만 250만이 늘었다. 부동산 가격과 집세는 치솟았고 대중교통은 전에 없이 붐빈다. 병원 진료 대기 시간이 늘어났고 녹지였던 곳에 공사 크레인이 들어섰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사냥꾼 빌헬름 텔을 스위스의 정체성으로 간직하고 사는 원주민의 처지에서는 인구 급증이 국가의 위기로 느껴질 법하다. 극우정당 SVP의 정책은 그러한 심리를 겨냥한다. 인구가 1000만에 이르면 큰일 난다는 위기의식을 고조시킨 뒤 이를 막기 위해 외국인 이주를, 특히 난민 유입을 우선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 SVP가 캠페인 자금 유치 행사를 연 장소는 그라우뷘덴 산악 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 마이엔펠트였다. 요하나 슈피리의 소설 〈하이디〉(1880)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소설 속 하이디는 산에서 염소와 자유롭게 뛰어놀다가 독일 대도시 프랑크푸르트로 원치 않게 옮겨 간 뒤 향수병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마이엔펠트가 프랑크푸르트화되는 걸 막자는 게 SVP가 하려는 말이다. SVP의 캠페인 포스터에는 아름다운 산동네에 공사용 크레인들이 들어서 있다.
경제 수준 유지하며 외국인만 없애겠다?
이를 위해 SVP는 연방 헌법에 인구 상한선을 못 박고 싶어 한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규정한 헌법 제73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추가하자는 거다. “스위스의 영구 거주 인구는 2050년 이전에 1000만명을 초과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 시행 방안으로 헌법 제197조에도 아래와 같은 내용을 넣으려고 한다. “2050년 이전에 스위스의 영구 거주 인구가 950만명을 초과할 경우, 연방정부와 연방의회는 각자의 권한 범위 내에서, 특히 망명 및 가족 재결합 분야에서 조치를 취해야 한다. (···) 해당 기준을 초과하는 시점부터 임시로 입국한 사람에게는 거주 허가 또는 정착 허가, 스위스 시민권, 또는 기타 거주권이 부여되지 않는다. (···) 1000만명이라는 기준치를 초과하고 2년이 경과한 후에도 인구 기준이 회복되지 않고 이를 위한 다른 방안이 시행되지 않은 경우, 스위스와 유럽연합(EU) 간에 체결된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협약(AFMP, Agreement on the Free Movement of Persons)’은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종료된다.” 6월에 있을 국민투표는 이 같은 헌법 개정안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한 절차다.

위 내용을 좀 더 쉽게 풀어보자. 2050년 이전에 스위스 인구가 1000만을 넘어가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인데, 1000만이 된 후 조치를 취하면 너무 늦기 때문에 950만이 된 시점부터 조치에 들어간다. 통계청의 인구 증가 시나리오에 따르면 스위스 인구는 5년 안에 950만, 2041년에 1000만명에 도달한다. 즉 국민투표에서 이 안건이 통과된다면 5년 후부터 망명 희망자 수용을 제한해야 한다. 또한 가족 재결합, 즉 한 사람이 이주 허가를 받으면 그의 가족도 함께 이주해올 수 있는 제도도 없어진다.
이런 조치를 취했는데도 인구가 2년 연속 1000만을 넘길 경우 정부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 EU와 맺은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협약’(이하 자유이동협약)을 종료하는 것이 그중 하나다. 2002년 발효된 이 협약은 EU 시민과 그 가족이 특정 조건하에 스위스에서 거주, 취업, 학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보장하는 내용이다. 이것을 무효화하자는 거다. 자유이동협약은 스위스가 EU와 맺은 120여 개 양자협약 중 하나로, 일종의 패키지에 속한다. 하나가 종료되면 다른 협약도 자동으로 효력을 잃게 된다. 솅겐 협약이나 더블린 협약 같은, 역내 이동과 안보에 관련된 다른 협약이 모두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엄청난 변화다. 찬반이 격돌 중인 스위스 공론장에서 이 안건은 중국에서 시행한 산아제한 정책이나 영국이 EU를 떠나기로 결정한 브렉시트에 비교되기도 한다. 대체 SVP는 왜 이런 투표를 추진하는가. 주요 논거를 요약하면 이렇다.
‘인구가 급증해 과밀 스트레스가 심하다. 2000년부터 2026년 사이에 인구가 30% 가까이 늘었다. 임대료가 치솟고 주택 공급이 부족해졌다. 건설 붐이 일어나 전국이 공사판이다. 매일 축구장 약 8개에 해당하는 땅이 건설 때문에 사라진다. 아름다운 스위스가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있다. 도로 교통체증이 심해지고 대중교통이 매우 혼잡해졌다.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스위스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다. 몰려드는 망명 신청자가 스위스 사회복지 시스템에 기생해 세금을 갉아먹는다. 외국인들로 인한 스위스 정체성 상실은 문화의 위기다. 무슬림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고, 스위스 언어를 제대로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시민권을 얻어 스위스 민주주의의 기반을 훼손한다. 난민과 불법 이민자에 의한 강력 범죄 때문에 스위스는 더 이상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위 주장 중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현실을 과장해 왜곡한 것이다. SVP는 캠페인에서 난민 제한을 강조하지만 전체 이민자 중 난민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그친다. 절대다수는 노동 이민이다. 스위스는 수십 년간 불황 없이 금융과 관광산업이 발전하며 안정적 성장을 계속했다. 유럽 한가운데 교통 요지에 위치한 다국어 국가라는 점이 경제 활황과 맞물려 외국의 노동인구에 매력적 요소로 작용했다. 스위스의 장점이 외국인을 끌어들인 건 맞지만, 그 외국인 덕에 스위스가 더욱 성장했다. 실업률은 3%대로 매우 낮고, 그나마 외국인보다 스위스 국적자의 실업률이 더 낮다. 이제 와서 더 이상 외국인을 원하지 않는다며 이민을 제한하면 외국인 인력에 크게 의존해온 병원, 요양원, 중소기업, 농장 등이 당장 타격을 입는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스위스인들이 선뜻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수준은 유지하면서 외국인만 없애겠다는 것은 흐르는 강물 속에서 손발을 놀리지 않고도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인구의 4분의 1이 외국인인 환경에서 다문화가 만개하는 것을 스위스 정체성 상실이라는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수도 없다.
이민을 환경 이슈로 프레이밍한 전략
SVP가 외국인을 적대시하는 내용의 캠페인을 벌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선거 때마다 외국인 강력범죄, 복지수당 도둑질 같은 프레임을 통해 이민자에 대한 반감을 앞장서 부추겼다. 그중에서도 이번 투표와 관련지어 볼 과거 국민투표가 두 건 있다. 첫 번째는 2014년에 있었던 ‘대규모 이민 반대 제안’ 투표다. 50.3% 찬성으로 가까스레 통과됐지만 당시 자유이동협약을 종료한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아 실효가 없었다. 6년 뒤인 2020년에는 아예 해당 협약 종료를 전면에 내세운 ‘종료 제안’ 투표를 실시했으나 EU와 관계가 끊어지는 데 대한 우려로 61.7%가 반대해 부결됐다. 이번 투표는 이 둘의 중간적 성격으로 인구 상한선이라는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협약을 종료하자는 내용이다. 유권자의 반감은 줄이면서 인구 급증에 대한 위기감을 자극하는 방식은 지난 투표들보다 효과가 좋다.

이번 투표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극우정당이 내놓은 안건인데도 이에 대한 찬반이 전통적 좌우파 입장이나 성별에 따라 이분법적으로 갈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SVP가 이민 이슈를 (인구 증가에 따른) 환경 이슈로 프레이밍한 전략이 먹혔다고도 볼 수 있다. 중도 우파로 분류되는 스위스 자유민주당(FDP)은 당론으로 ‘1000만 스위스 저지’ 안건에 반대하는 입장을 택했으나, 정작 이 당 지지자의 절반은 찬성 의견을 보였다. 성별에 따른 지지율도 논란이 됐다. 지난 5월 스위스 매체 〈타메디아(Tamedia)〉 여론조사에서는 여성 응답자의 54%가 이 안건에 찬성했다. 여성은 보통 남성보다 진보적 성향이 강하고 SVP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이 결과는 충격이었다. 연방의회의 여성 의원들이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SVP 소속 의원만 제외한 채) 의사당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는 일까지 벌어졌다.
양적 성장의 한계에 대한 질문은 필요하다. 그간 좌파는 화석연료를 줄이면서도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을, 우파는 대규모 이민 없이 정년 연장 등으로 가능한 성장 방식을 추구해왔다. 그러나 극우정당 SVP가 추진 중인 이번 스위스 국민투표는 그런 고민의 결과가 아니다. 환경보호의 탈을 쓰고 외국인을 내쫓기에 급급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환경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정당의 양두구육 법안이다.
취리히·김진경 통신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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