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없이 손만 4개…이 기괴한 휴머노이드가 우주로 올라가는 이유는? [영상]
다리에 발 대신 손 장착…물체 움켜잡고 이동
중력 없는 우주 정거장서 운영하도록 고안
많아진 손 이용해 몸통 고정 뒤 작업 용이
ISS 유지·보수 투입…인간은 연구에만 매진


#.지구의 한 실험 시설 안. 휴머노이드(사람처럼 몸통과 팔다리가 있는 로봇) 한 대가 어깨에 연결된 줄에 매달려 공중에 살짝 떠 있다. 키는 약 160㎝이고, 몸통 여기저기에는 전선과 전자 장비가 장착됐다. 그런데 이 휴머노이드, ‘매우’ 이상하다. 다리 끝에 발이 없다. 대신 손이 달렸다. 한마디로 손만 4개다.
손만 있으니 바닥을 딛고 걷기는 어렵다. 그런데 알고 보니, 걸을 필요가 없다. 휴머노이드는 작동을 시작하자 다리에 달린 손으로 실험 시설 안쪽 벽에 부착된 파이프를 움켜잡는다. 그러고는 붙잡은 부위를 순차적으로 옮겨 몸통을 슬금슬금 옆으로 이동시킨다. 손 4개 모두 바닥에 닿지 않는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연구진을 주축으로 한 로봇 기업 ‘오비트 로보틱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헬리오스’ 모습이다. 지난달 말 인터넷에 공개됐다.
일반적인 휴머노이드는 발로 지면을 걸어서 움직인다. 그래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인간이 원하는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다. 그런데도 발 없는 헬리오스는 이 세상에 버젓이 나왔다. 이유가 뭘까.
발 대신 장착한 ‘손’ 정교하게 작동
사실 헬리오스가 탄생한 이유는 헬리오스가 발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걷지 않고도 이동이 가능한 곳은 물속과 ‘이곳’뿐이다. 바로 우주다.
우주에서는 물체가 둥둥 뜬다. 우주선에서는 땅에서처럼 똑바로 걷는 방식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 이동하고 싶다면 우주선 내부의 구조물을 붙잡은 뒤 당기거나 밀어야 한다. 넓적한 발과 짧은 발가락으로는 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둥글게 말 수 있는 손과 기다란 손가락으로 훨씬 잘 할 수 있다.
동영상에 등장한 헬리오스의 손과 손가락이 바로 그렇다. 크기와 모양, 동작이 인간과 빼닮았다. 손 전체를 말았다가 쥘 수 있고, 손가락 관절도 부드럽게 움직인다.
이런 특징은 우주에서 이동할 때뿐만 아니라 무중력에서 각종 작업을 할 때도 유용하다. 다리에 달린 손 2개로 우주선 내부 파이프나 돌기를 강하게 붙잡아 몸통을 고정한 뒤 팔에 달린 나머지 손 2개로 물체를 옮기거나 정리할 수 있다.
헬리오스가 첫 번째로 투입될 곳은 고도 약 400㎞에서 지구를 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다. 임무는 ISS에 장착된 각종 시설물의 유지·보수다. 현재 이 일은 인간 우주비행사가 맡고 있다. 우주비행사들은 본인 임무 시간의 35%를 ISS 시설물 유지·보수에 쓴다. ISS에서 공기가 새지는 않는지, 태양 전지판은 잘 작동하지는 등을 살핀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일이다. 무중력에서만 가능한 특수한 신약 개발 같은 일을 하려고 ISS에 올라온 우주비행사들이 매우 일상적인 일에 세월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주비행사의 시간당 인건비 가치는 14만달러(약 2억1000만원)에 이른다. 그런 고급 인력이 ISS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인간 우주비행사는 연구에 집중
오비트 로보틱스는 “ISS 유지·보수는 헬리오스에 맡기고 인간 우주비행사들은 과학 연구에 매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우주비행사들이 뽑아내는 연구의 양과 질도 향상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헬리오스는 사람처럼 먹거나 자거나 질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오비트 로보틱스는 헬리오스의 활동 무대가 우주라는 점을 고려해 독특한 설계도 했다. 관절을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부품인 모터를 어깨 한 군데에만 설치했다.
팔꿈치나 손가락 움직임은 어깨에 달린 모터와 연결한 얇은 케이블을 감거나 풀어 통제한다. 얼레를 감거나 풀어 연 높이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지구의 일반적인 휴머노이드는 이렇지 않다. 관절마다 모터가 장착된다.
오비트 로보틱스는 기술 설명 자료를 통해 “케이블을 사용하면 로봇 전체 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비교적 무거운 장비인 모터 숫자가 적어지기 때문이다. 헬리오스의 정확한 무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운송비가 매우 높은 로켓에 태우기에 더 좋은 조건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무게 중심이 모터가 장착된 어깨 한 군데에만 집중되기 때문에 몸통 방향을 빠르게 바꿔도 자세가 여간해서는 잘 흐트러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헬리오스가 상용화하면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협력해 우주를 개척하는 새로운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비트 로보틱스는 “우주정거장에 지원 인력을 상시 배치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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