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개팅, 또 소개팅…연애 부스가 점령한 대학 축제 [세상&]
학과·동아리 특성 살린 이색 소개팅 부스들도 인기
작년에 소개팅 부스 손님으로 왔다가 지금 여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연세대 축제 소개팅 부스 ‘연플리’ 스태프 이연호(22) 씨

[헤럴드경제=전새날 기자] 지난 29일 오후 1시께 찾은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확성기를 든 학생들의 호객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러브레터를 전해 드려요”,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전해 보세요” 같은 외침 사이로 밴드 동아리의 공연 음악과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초여름 날씨 속 축제를 찾은 학생들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부스에 붙잡혔다. 도서관으로 향하던 학생들마저 홀린 듯 줄 앞에 멈춰 섰다.
이날 일자로 약 800m가량 뻗은 백양로 양옆에는 축제 부스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대동제 기획을 맡은 연세대 총학생회에 따르면 올해 설치된 부스는 총 110개. 이 가운데 상당수가 소개팅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주점에서는 술과 안주를 판매하면서도 서버를 통해 다른 테이블에 쪽지를 전달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비주점 부스들은 아예 소개팅 자체를 전면에 내세웠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직접 축제 현장을 둘러본 결과 체험형 비주점 부스 절반가량이 매칭 콘텐츠를 운영 중이었다. 만화 동아리는 좋아하는 캐릭터가 같은 사람끼리 연결해 주는 부스를 열었고 상담 관련 동아리는 연애에 서툰 참가자들을 앉혀놓고 무전기로 대화 미션을 내려주는 아바타 소개팅을 진행했다.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대화만으로 데이트 여부를 정하는 블라인드 소개팅 부스도 눈에 띄었다.
연세대 동아리 관설차회가 운영한 차 소개팅 부스는 축제장 한복판에서도 유독 차분한 분위기였다. 진행 요원들은 작은 테이블에 참가자들이 마주 앉자 찻잔을 하나씩 내려놓았다. 처음에는 찻잔만 바라보던 참가자들도 “어떤 차 좋아하세요”, “축제는 많이 둘러보셨어요” 같은 질문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대화를 이어갔다. 차가 식기 전까지 이어지는 20~30분의 대화가 끝나면 참가자들은 다음 상대를 만나기 위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로테이션 소개팅에 참여한 신지인(23) 씨는 “술을 잘 못 마시는데 차를 마시며 사람을 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며 “다들 공부나 대외활동으로 바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적은데 학교 안에서 신원이 보장된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소개팅 부스 운영진들은 모두 “올해 축제 분위기를 보면 소개팅 콘텐츠가 확실히 하나의 흐름처럼 자리 잡은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관설차회 측은 “차를 마시는 시간이 짧다는 점에 착안해 로테이션 소개팅을 기획했다”며 “30쌍 모집이 선착순으로 조기 마감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년 차 시음 부스만 운영했는데 이런 매칭 프로그램은 처음”이라고 했다.

언론홍보영상학부가 운영한 영화 소개팅 부스 앞에서는 참가자들이 영화 제목 앞에서 한참 고민하는 모습도 보였다. 로맨스·액션·독립영화 등 여러 작품 가운데 마음에 드는 영화를 고르면 같은 작품을 선택한 사람끼리 매칭되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은 “이 영화 고르면 너무 감성적인 사람 같아 보일까”, “무난한 걸 골라야 하나”라며 웃다가도 신중하게 한 작품을 골랐다. 매칭된 학생들은 “왜 이 영화 골랐어요?”라는 질문으로 어색한 첫 대화를 시작했다.
학교 안에서 가장 유명한 소개팅 부스 중 하나로 꼽히는 ‘연플리(연애 혹은 연세 플레이리스트)’도 올해 다시 등장했다. 부스 안에는 음악 취향별로 나뉜 다섯 개의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좋아하는 노래를 고른 뒤 MBTI, 자신을 표현하는 키워드,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적은 쪽지를 공 안에 넣어 해당 바구니에 담았다. 이후 같은 노래를 선택한 다른 참가자의 공을 하나씩 뽑아 연락하는 방식이다.
성준(23) 씨는 소개팅 부스 앞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다시 자신의 공을 음악 바구니 안에 넣고 있었다. 전역 후 처음 맞는 대학 축제라는 그는 “입대 전 축제와 비교하면 분위기가 훨씬 핑크빛이 된 느낌”이라고 웃었다. 그는 전날에도 ‘연플리’ 부스에 참여해 같은 노래를 고른 여성과 매칭됐다고 했다. “같이 축제 돌아다니면서 닭꼬치도 사 먹고 놀았는데 집에 잘 들어갔냐고 연락했더니 답장이 없더라고요. 그래도 같은 음악 취향이라는 게 좋아서 오늘 또 왔어요.”
이날 성씨는 플레이리스트 가운데 걸그룹 프로미스나인의 곡 ‘DM’을 골랐다. 그는 “군에서 생활할 때 이 노래 듣는 게 낙이었다”며 “원래 공 한 번 넣는 데 2000원인데 어제도 왔다고 하니까 오늘은 1000원 할인도 받았다”고 말했다.

소개팅형 축제 콘텐츠 열풍은 다른 대학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서울대 축제에서도 다양한 매칭 부스가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서울대 재학생 이동기(25) 씨는 “금붕어를 잡아 같은 번호가 나오면 매칭되는 부스가 특히 인기가 많았다”며 “그 외에도 소개팅 콘셉트 부스들이 꽤 많았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소개팅 콘텐츠 쏠림 현상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일부 학생들 사이에서는 “축제가 지나치게 연애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지난 22일까지 진행된 중앙대학교 축제에서는 소개팅 관련 부스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학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축제 콘텐츠가 획일화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중앙대 재학생 이석현(24) 씨는 “작년만 해도 체험형이나 게임형 부스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었는데 올해는 소개팅 콘텐츠 하나로 몰린 느낌이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전문가는 코로나19 이후 단절됐던 대면 교류 문화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관계 맺기를 전면에 내세운 콘텐츠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기 어려워진 세대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며 “축제처럼 자리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성을 만날 기회 자체가 줄어든 세대적 특성도 반영돼 있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는 ‘동질 연애’ 경향이 강해진 데다 검증되지 않은 외부인보다 학교 안에서 신원이 어느 정도 보장된 사람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커졌다”며 “로테이션 소개팅 같은 방식도 이제는 연애 예능과 지자체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하나의 자연스럽고 ‘힙한’ 만남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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