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코냑이 세계 무역전쟁의 단골 표적이 된 이유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2026. 5. 3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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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욱의 위스키 도슨트] 지역 경제 책임지는 상징재… 분쟁마다 협상 레버리지 역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오른쪽)과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4월 28일(현지 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국빈 만찬 중 건배를 하고 있다. 뉴시스
4월 말 위스키 애호가들이 주목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30일(현지 시간) 스카치위스키 관세를 철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나흘간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귀국길에 오른 찰스 3세 영국 국왕에게 건넨 뜻밖의 선물이었다. 미국은 지난해 4월 영국과의 무역 합의로 대부분 상품에 10% 관세를 부과해왔다. 스카치위스키와 관세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스카치위스키의 미국 수난 역사

1920년 금주법으로 미국 땅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된 스카치위스키는 밀주 루트를 통해 오히려 프리미엄 이미지를 굳혔다. 시카고 마피아 조직의 수장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밀주업자들은 철저하게 희소성을 관리했고, 1933년 금주법 폐지 후 스카치위스키는 이전보다 강한 브랜드 파워를 갖춘 채 미국시장에 돌아올 수 있었다. 1930년대 후반 미국은 스카치위스키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1930년 스무트 홀리 관세법이 위스키산업에 타격을 가했다. 대공황 속에서 미국은 수입품에 평균 59% 관세를 매기는 초강력 보호무역 조치를 단행한다. 여기에 각국이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면서 대공황과 보호무역의 악순환이 벌어졌다. 스무트 홀리 관세법 도입 이후 세계 교역 규모는 60% 이상 감소했다. 경제학자들이 트럼프 관세를 "스무트 홀리 이후 100년 만에 최고 수준"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유럽 전선에서 귀환한 미군들이 다시 위스키 시장을 키웠다. 그 후 또다시 위스키가 관세 분쟁의 한가운데에 선 것은 21세기 들어서다. 2004년 미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보잉-에어버스 불법 보조금 분쟁이 시작됐다. 2019년 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 손을 들어주면서 합법적으로 징벌적 관세를 매길 수 있게 됐다. 당시 트럼프 1기 정부는 스카치위스키에 25% 관세를 부과했고, 트럼프 2기 들어 미국이 영국산 제품 전반에 10% 기본 관세를 적용하면서 스카치위스키 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스카치위스키협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카치위스키 수출액은 54억 파운드(약 11조 원)로 스코틀랜드 전체 식음료 수출의 77%를 차지하고, 영국 경제에 연간 71억 파운드(약 14조3000억 원)의 부가가치와 6만6000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지난해 관세 부과 이후 약 10개월 동안 대미(對美) 수출이 약 15% 감소했으며, 위스키 업계는 주당 400만 파운드(약 81억 원) 손실을 보고 있다.

무역전쟁에서 위스키를 비롯해 각국을 대표하는 술이 반복적으로 표적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 켄터키주의 버번위스키, 영국 스코틀랜드의 스카치위스키, 프랑스의 코냑 등은 모두 지역 경제와 문화적 정체성이 깊이 결합된 상징재다. 이런 술에 관세를 부과하면 해당 지역 정치인들에게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무역협상의 레버리지로 이보다 효과적인 카드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2018년 트럼프 정부의 철강 관세에 맞서 "할리 데이비슨, 리바이스 청바지, 버번위스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미국이 비행기와 무관한 스카치위스키에 25% 관세를 매긴 이유도 같다. 스카치위스키가 영국의 정치적 급소이기 때문이다.

코냑은 더 극적인 사례다. 코냑 생산량의 97% 이상은 해외시장에 수출된다. 프랑스 코냑 생산 지역 7만2500명의 생계가 이 산업에 달려 있다.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최대 45%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전기차와 무관한 프랑스 코냑에 최대 39% 보복 관세를 부과했다. 코냑업계 노동자들과 생산자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대중 수출량은 24% 폭락했다.

스카치와 버번위스키의 공생 관계도 흥미롭다. 스카치위스키는 미국 버번위스키를 담았던 중고 오크통에서 숙성된다. 버번위스키는 미국법상 반드시 새 오크통에서만 숙성시켜야 하기에 한 번 쓴 오크통은 처분해야 하고, 스코틀랜드 증류소들이 이를 사들인다. 보잉-에어버스 분쟁에서 스카치위스키와 버번위스키가 함께 피해를 입은 이유다.

위스키 등 각국을 대표하는 술에 관세를 매기는 것은 무역분쟁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이다. GETTYIMAGES

그래서 내 위스키 가격도 싸질까

이번 트럼프의 발언은 의사 표명 수준이고, 실제 관세 철폐까지는 행정 절차가 남아 있다. 관세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한국 수입가에는 즉각 반영되지 않는다. 수입사 계약, 재고, 환율 등 여러 변수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 위스키 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수요 급감과 재고 과잉이라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다. 미국 켄터키주의 위스키 재고만 1610만 배럴에 달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은 위스키 입문자에게 기회다. 대미 수출이 줄어 재고를 소화해야 하는 스카치위스키 업계는 한국을 비롯한 여타 시장에서 가격을 낮추거나 프로모션을 강화해야 하는 유인이 생겼다. 실제로 최근 국내에서 일부 스카치위스키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거나 할인 행사가 늘어나는 것도 이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관세 전쟁이 만든 반사이익인 셈이다.

스카치위스키는 100년간 금주법, 대공황, 세계대전, 무역분쟁 등 미국 정치의 파고를 넘었고,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았다. 이번 트럼프의 위스키 관세 철폐 선언이 가격 안정의 시작일지, 또 다른 변수의 출발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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