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공부하라는 말은 거짓말이 되었다”…AI가 끊어버린 사다리

"챗GPT를 처음 세상에 내놓을 당시, 저와 경영진은 지금쯤 초급 사무직 일자리가 대거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예측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일자리의 종말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 "일자리의 종말은 오지 않는다"는 올트먼의 미소
인공지능(AI) 열풍의 진원지이자, 전 세계 기술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오픈AI의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지난 27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았습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챗GPT를 처음 세상에 내놓을 2022년 말 당시, 자신을 포함한 경영진은 3년 정도 지난 지금쯤에는 초급 사무직 일자리가 상당히 사라질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사회적·경제적 예측이 완전히 틀렸다는 겁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무직군에서 화이트칼라의 대량 해고 피바람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올트먼은 자신이 직접 업무용 메신저 슬랙(Slack)과 이메일 답장을 AI에 맡겨보았더니, 결국 사람이 직접 소통하는 ‘인간적 상호작용의 가치’는 대체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일자리의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직장인들에게 꽤 달콤한 안도감을 줍니다.
"그럼 그렇지, 기계가 아무리 똑똑해도 인간을 자를 순 없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집니다. 평화로워 보이는 올트먼의 낙관론 뒤에, 차마 그가 말하지 못했거나 혹은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기업들의 잔인하고도 영리한 비밀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 기업이 해고 대신 택한 '비겁한 우회로'
올트먼이 안도의 미소를 짓기 직전, 그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인 또 다른 AI 거물 ‘앤트로픽(Anthropic)’은 조용히 노동시장 보고서 하나를 세상에 던졌습니다. 자신들이 만든 인공지능 ‘클로드(Claude)’가 인간들의 일터를 실제로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조사를 해본 일종의 ‘실전 성적표’입니다.
앤트로픽은 관측된 노출(Observed Exposure)이라는 새로운 측정 방법으로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면밀히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샘 올트먼의 낙관적인 전망을 뒤집을 충격적인 반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보고서가 들추어낸 첫 번째 반전은 이렇습니다. 앤트로픽의 데이터 역시 샘 올트먼의 말대로 기존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의 실업률 곡선이 신기할 정도로 평온하다는 사실을 똑같이 증명합니다. 인공지능 코딩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고 해서 당장 내일 아침 부하 직원의 책상을 치우는 무리수를 두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피한 건, 올트먼의 착각처럼 인간적인 정(情)이나 소통의 가치를 존중해서가 아닙니다. 그저 사람을 해고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위로금과 법적 리스크, 남은 직원들이 동요하는 ‘진짜 비용’을 치르기가 싫었을 뿐입니다.
대신 기업들은 훨씬 영리하고 비겁한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기존 직원은 건드리지 않는 대신, ‘신규 채용’이라는 문을 통째로 걸어 잠그기 시작한 것입니다. "차라리 신입사원을 안 뽑고 그 자리에 AI를 앉히겠다"는 냉혹한 계산법입니다.

■ 청년 취업률 14% 폭락…사라진 건 사람이 아니라 입구였다
실제로 앤트로픽의 조사 결과, AI 기술 노출도가 가장 높은 고소득 화이트칼라 직군에서 청년층(22~25세)의 취업률은 불과 1, 2년 만에 무려 14%나 폭락했습니다.
AI는 기존 사무직들의 자리를 바로 없애고 내쫓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미래 세대가 딛고 올라와야 할 사회적 사다리를 밑바닥에서부터 조용히 치워버리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었던 셈입니다.
올트먼이 "사무직이 안 잘려서 다행"이라며 웃고 있는 그 순간에도, 아마존이나 글로벌 대형 은행들이 기다렸다는 듯 AI 도입과 함께 고용 동결 발표를 쏟아내는 진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 장벽은 얼마나 높고 단단한 걸까요? 앤트로픽 보고서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은 ‘이론과 실제의 시차’를 밝혀낸 부분입니다.

앤트로픽의 계산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이나 수학 관련 직종은 기술적으로 업무의 대부분을 AI가 당장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금융 분석가나 경영 전문가 역시 절반이 넘는 업무를 인공지능이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울 수 있죠. 기술은 이미 우리의 턱밑까지 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실제 기업 현장에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 노동자들의 오랜 관성, 복잡한 사내 정치, 그리고 "그래도 결정은 인간이 해야지"라는 사회적 방어 기제가 마지막 방어선을 치고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차는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유예기간’일지도 모릅니다. 기업들이 AI를 장부에 완벽히 녹여내고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하는 순간, 이 팽팽한 시차의 균형이 깨지며 잠재적 공포가 진짜 현실로 쏟아져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요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바이브 코딩으로 업무 자동화를 독려하며 사용한 토큰 수만큼 성과를 매기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업무들이 하나둘 자동화가 되고 나면 경영진은 어느 시점부터 슬슬 인력 감원이나 재배치로 돌입하지 않을까요?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극대화가 최우선 과제일 테니까요.
■ 가장 위험한 직업과 가장 안전한 직업은?
앤트로픽이 정리한 ‘가장 위험한 직업’과 ‘가장 안전한 직업’의 리스트를 보고 있으면, 공부를 많이 할수록 성공한다고 믿어왔던 우리 사회의 오랜 상식이 무참히 깨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장 먼저 고용의 빙하기를 맞이한 직종은 역설적이게도 지적 노동자인 컴퓨터 프로그래머, 깔끔한 셔츠를 입고 일하는 데이터 분석가, 금융 애널리스트 같은 고급 화이트칼라의 영역이었습니다. 반면, AI의 침공에서 완벽하게 비껴간 직업들은 요리사, 자동차 정비공, 바텐더, 안전요원처럼 ‘물리적인 육체와 대면 활동’이 핵심인 직종들이었습니다.

밤을 새워 코딩을 배우고 학위를 쌓은 인재들은 AI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되고, 땀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는 직업이 가장 안전한 자산이 되는 이 역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AI를 만드는 거인, 앤트로픽이 스스로 실토한 이 현실은 우리에게 서늘한 질문을 던집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책상 앞을 지키기 위해 쌓아 올린 수많은 학위와 스펙이 가장 먼저 쓸모없어지는 기묘한 문명의 교차로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정부와 사회가 고민해야 할 질문의 차원이 달라졌습니다. 굳게 닫힌 화이트칼라의 문 앞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더 공부해서 스펙을 쌓아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잔인한 기만이 될 수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유튜브, 네이버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김학재 기자 (windows@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서소문 붕괴’ 막을 기회 2번 있었다…서울시, 경고 거듭 무시
- 브런슨 “‘단검’ 발언은 인용일 뿐…맥락 봐달라”
- 사전투표율 23.51% 역대 지선 최고치…여야 “우리에게 유리”
- ‘美 모범 동맹 묻거든, 한국을 보라’…헤그세스 찬사 ‘폭격’ [지금뉴스]
- 낙상 골절 어르신 10년 추적 조사…기대수명은? [의학:너머]
- “벌금 내면 그만”…불법 대형 옥외광고물 ‘골치’
- 녹색 만리장성 쌓는 중국…모래 사막과의 사투
- 미국 법원, “케네디 센터에 트럼프 이름 빼” [지금뉴스]
- 이란의 이유 있는 불신…“UAE, 휴전 다음 날도 공습” [이런뉴스]
- “미군 잘못 알려주세요”…여성 117명 생애 마지막 소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