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루에서 태어나 1루로 도루’하는 남자…‘탈벅’ 키운 정용진 리스크

김은성 기자 2026. 5. 3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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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논란’ 걸러지지 않은 게 의아…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듯
스벅 매출 줄고 이마트 주가 하락·최악의 경우 6400억원 날릴 수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5월 26일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과 관련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5월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스타벅스에서 만난 A씨(33)는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 등을 포장해가고 있었다. A씨는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역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거나, 특정 정당이나 집단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 같아 테이크아웃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던 대중적인 공간이 갑자기 불편한 곳으로 바뀌었다”며 “앞으로 당분간은 사람들 만날 때 ‘스타벅스에서 보자’는 말을 못 할 것 같다”고 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탱크데이’ 행사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에 나섰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5·18 단체를 비롯한 146개 시민단체는 전국적인 불매운동에 들어갔다. 매출 악화와 기업 가치 하락은 현실화하고 있고, 경영진에 대한 형사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정 회장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를 한 5월 26일 신세계그룹도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실질적인 해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4단계의 결재 과정에서 서류의 첨부파일조차 열어보지 않은 무검증 사례가 드러나는 등 검수체계가 작동하지 않은 사실만 확인됐다. 신세계는 실무진 일부가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한 것 등을 근거로 “고의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결론 냈다. 이에 따라 신세계는 해당 실무진 5명을 직무 배제하는 선에서 인사 조처를 끝냈다. 정 회장은 행사 논란 당일 손정현 당시 스타벅스코리아 대표와 담당 임원을 해임했다. 행사의 고의성 여부 판단은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가 진행하는 수사 결과를 통해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과 중 “다른 생각” 꺼내든 정용진

정 회장은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더 나은 세상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은 같다”고 말해 또 다른 논란을 일으켰다. ‘5·18 폄훼도 용납하는 것을 다른 생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뜻이냐’라는 비판이 나왔다. 국가가 인정한 역사적 사실을 ‘생각이 다른’ 것처럼 표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신세계 측은 통화에서 “법적으로 정리가 끝난 5·18이나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것을 다른 생각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며 “이번 사태로 인해 그룹을 향한 다양한 비판과 조언이 나오는 만큼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미래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앞서 신세계는 결과 발표 당일 그간 논란이 됐던 정 회장의 극우적 발언에 대해 “회장님의 과거 발언이나 관련 부분들은 스타벅스의 부적절한 프로모션과는 관계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 마케팅 실패가 아닌, 누적된 오너리스크와 사회적 논란이 함께 소환된 결과로 보고 있다. 다수의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재계 서열 11위인 신세계의 계열사이자 커피 업계 1위 기업에서 이런 실수가 내부 시스템으로 걸러지지 않았다는 건 의아하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 B씨는 “유통가에서는 이미 여성·남성 혐오 표현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혐오 표현 등이 들어간 문구로 여러 번 홍역을 치러 엄격하게 검수하는데, 그런 실수를 (스타벅스가) 잡아내지 못한 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 C씨는 “민감한 선거 시기에 5·18이라는 숫자가 검수를 통해 걸러지지 않았다는 게 더 이상하다”며 “오너의 코드가 계열사 전반으로 확산해 역사적·사회적 감수성이 떨어진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 주요 외신도 정 회장의 과거 ‘반공 발언’을 조명하며, 스타벅스 사태 추이를 보도해 이번 사건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용진 회장에게는 많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처음 SNS를 시작할 당시에는 일상을 재치있게 공유해 ‘용진이 형’, ‘재계의 럭비공’이라는 친근한 수식어가 붙었다. 그러다 ‘멸공’(공산주의를 멸함) 챌린지에 이은 극우에 가까운 언행을 잇달아 보이며 연일 정치적 논쟁을 일으켰다. 정 회장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언행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의 밈’에 활용되며 그들의 놀이를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에 사과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스타벅스 꺾이면 신세계도 휘청

온갖 화제를 몰고 다녔던 SNS 활동과 달리 정 회장 주도로 단행된 대규모 투자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G마켓(지마켓)은 적자 늪에 빠졌고, 가전 전문점 일렉트로마트도 수익 창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 외 제주소주와 스무디킹, 반려동물 전문점 몰리스 등은 줄줄이 실패했다. 투자 사업이 대부분 실패로 끝나다 보니 ‘마이너스의 손’ , ‘3루에서 태어나 1루로 도루하는 남자’(재벌가 후계자로 태어났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고 기업 가치를 떨어뜨렸다는 풍자적 표현) 등의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반면 스타벅스는 정 회장이 투자해 성공한 몇 안 되는 기업이다. 스타벅스코리아 운영법인은 SCK컴퍼니다. 이마트는 싱가포르투자청(GIC)과 함께 2021년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보유한 지분 50%를 샀다.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은 이마트가 67.5%, GIC가 32.5%를 갖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지난해 번 돈(매출액)은 3조2380억원, 영업이익은 1730억원에 달한다. 이마트와 GIC가 받아 간 배당금은 1621억원으로, 이마트 종속 기업 중 캐시카우(현금창출원) 역할을 하는 알짜기업이다.

스타벅스 불매운동이 장기화하면 내부거래 축소와 현금 유동성 악화 등으로 신세계그룹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신세계푸드로부터 2135억원 규모의 원재료 및 상품을 매입했다. 신세계아이앤씨, 신세계프라퍼티 등과도 거래를 한다. 스타벅스 매출 악화는 현실화하고 있다. 5월 27일 AI 테크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주간 결제액은 논란이 불거진 5월 18일부터 24일까지 일주일간 236억9000만원으로 집계됐다. 그 전주인 5월 11∼17일 321억6000만원에서 일주일 새 약 84억7000만원이 줄어 감소율이 26.3%에 달했다.

5월 15일 10만원대였던 이마트 주가는 떨어져 8만원대에서 맴돌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의 성장이 정체되거나 꺾이면 계열사들이 연쇄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스타벅스코리아에서 시작된 불매운동은 베이커리와 각종 식음료를 공급하는 신세계푸드, 고객 응대 시스템을 담당하는 신세계I&C 등 계열사의 매출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신세계그룹 전반으로 확산할 여지가 상존한다”고 우려했다.

최악의 경우 스타벅스코리아 경영권을 본사에 뺏겨 6400억원대 자산 가치 감소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타벅스 인수 과정에서 이마트는 스타벅스 본사에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을 부여했다. 이마트 귀책으로 라이선스 계약이 해지되면 본사가 이마트 보유 지분 전량을 35% 할인된 가격에 되사갈 수 있게 한 장치다. 스타벅스 지분 인수 당시 전체 기업가치는 약 2조7100억원으로, 이마트 보유 지분 67.5% 가치는 약 1조8300억이다. 만약 콜옵션이 발동해 35% 할인율이 적용되면, 단순 계산으로 약 6400억원의 가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상진 신세계그룹 부사장은 5월 26일 열린 회견에서 “(콜옵션 행사 사안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저희 판단이다. 아직 미국 본사가 이 부분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기정 광주시장 “신세계 투자 받아야”

4200억원대에 달하는 스타벅스 선불충전금(선불금) 잔액도 변수다. 스타벅스는 오는 6월 1일부터 14일까지 충전 금액 사용 비율 조건과 관계없이 고객이 요청하면 잔액을 환급해 주겠다고 했다. 기존 약관에는 잔액의 60% 이상을 써야만 환불이 가능해 소비자가 쉽게 환불받기가 어려웠는데, 이를 완화한 것이다. 선불금은 사실상 고객이 무이자로 맡겨 둔 돈과 같다. 스타벅스는 이 돈을 운용해 약 408억원의 이자 수익을 올리고 있다.

광주 사업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광주 현지 법인인 광주신세계는 2033년까지 3조원을 들여 광주 서구 광천터미널 부지에 백화점과 버스터미널, 호텔 등이 어우러진 복합 랜드마크 조성을 추진 중이다. 또 신세계프라퍼티는 1조3403억원을 투자해 광주 어등산 관광단지 부지를 체류형 복합공간인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로 개발하는 사업도 진행한다. 이에 강기정 광주시장은 5월 26일 “잘못에는 책임을 묻겠지만 투자는 지역 발전의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업의 경우 추진 주체가 정용진 회장과 달라 연동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스타벅스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윤리 기구 등 내부 시스템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사건은 앞선 유사한 사건들과 달리 오랜 시간 누적된 오너리스크가 사태를 더 키운 측면이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기업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중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역사적·사회적 감수성 필터링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하고 강화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신세계 조사에서) 확인된 만큼 외부 ESG 전문가와 각종 밈을 아는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검증위원회나 자문단을 구성해 마케팅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세계 측은 “이번 발표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과 진상 파악을 하기 위한 과정으로, 마케팅 콘텐츠 검수 시스템을 개선하고 그룹 전체 실무진과 경영진을 대상으로 역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할 방침”이라며 “향후 적정 시점에 광주 현장 방문 부분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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