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부진한 비트코인… 지정학적 훈풍에도 ‘워싱턴 규제’에 발목
글로벌 증시 사상 최고치 vs 유가 폭락…전통 자산과 디커플링 심화
“테헤란 대신 워싱턴 본다”…기관들, ‘클래리티법’ 정체에 투자 보류
이동평균선 하향에 ETF 수급 둔화까지…전문가들 “고위험 구간 진입”

미국과 이란 간의 임시 휴전 연장 소식에 힘입어 글로벌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국제 유가가 수개월 만의 최저치로 주저앉았으나,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은 좀처럼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의 핵심 법안인 미국 가상자산 시장구조법(일명 클래리티법) 처리가 워싱턴 정가에서 교착 상태에 빠지자, 기관투자가들의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탓이다.
가상자산 데이터 플랫폼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30일 오전 9시 기준 비트코인은 전날과 비슷한 7만3300달러 안팎에서 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주간 단위로는 약 6% 하락세를 기록 중이다. 같은 시각 이더리움도 보합세를 보이며 2000달러 선을 오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관투자가들이 글로벌 거시경제 호재보다 미국의 규제 명확성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여기면서 시장의 에너지가 고갈됐다고 진단한다.
현재 거시경제 환경 자체는 가상자산 시장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글로벌 증시의 가늠자인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전세계지수는 0.3% 오르며 역사적 고점을 새로 썼고, 아시아 증시 역시 2% 급등하며 자체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국제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0.5% 하락한 배럴당 93달러 선을 기록했다.
특히 미국과 이란이 휴전 기간을 60일 연장하고 테헤란 핵 프로그램 관련 대화를 재개하기로 잠정 합의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은 5월 한 달간 18% 넘게 폭락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인 2020년 3월 이후 가장 큰 월간 하락 폭이다. 다만 해당 합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종 승인을 남겨두고 있으며, 이란 현지 언론도 양해각서가 완전히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통상적인 시장 환경이었다면 이러한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와 증시 호황은 위험자산인 가상자산 시장에 대형 호재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조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상자산 중개 플랫폼 sFOX의 하비에르 마르티네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메일을 통해 “시장은 이미 휴전 소식에 따른 안도 랠리를 가격에 선반영했다”며 “비트코인이 저항선을 뚫고 추가 상승하는 데 실패하자 관련 매수세가 대거 되돌려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기관투자가들은 이제 테헤란발 뉴스보다 워싱턴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라며 클래리티법을 직접 언급했다. 마르티네스 CEO는 “기관들은 단순한 거시경제 지표 개선이 아니라 제도적 규제 확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적 분석 지표도 하방 압력을 가리키고 있다. FxPro 소속 분석가들은 비트코인이 단기 추세선인 50일 이동평균선 아래로 밀려났으며, 장기 흐름을 보여주는 200일 이동평균선마저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과거 이러한 이동평균선 교차 흐름은 본격적인 약세장 진입의 전조 증상이었다. 이들은 “장기 강세장이 올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가상자산 분석업체 스위스블록 역시 이번 주 초 보고서에서 비트코인이 매도 압력 심화와 현물 비트코인 ETF의 매수세 둔화 여파로 “고위험 구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현물 ETF는 지난 2024년부터 2025년까지 이어진 대형 랠리를 이끈 기관들의 핵심 수급원이다. 결국 ETF 수요가 동력을 잃은 데다 시장이 이란 관련 지정학적 헤드라인에 둔감해지면서, 가상자산 시장은 단기적으로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머물게 됐다.
주형연 기자 jh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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