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 만에 법정에 선 미군 ‘위안부’ 여성들…“열여섯에 끌려가 사람 대접도 못 받았다”

김정화 기자 2026. 5. 30.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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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남아있는 경기도 동두천시 기지촌 성병관리소. 김창길 기자

“저는 미군 위안부입니다. 열여섯에 기지촌으로 인신매매되어 그날 처음 미군을 봤습니다. 너무 무서워 방구석에서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9일 서울법원종합청사 560호 법정. 주한미군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 A씨가 종이에 쓰인 발언문을 읽어나가자, 30여석 규모의 방청석을 가득 메운 60~70대 여성들이 덩달아 훌쩍거렸다. 머리는 하얗게 세고, 얼굴과 손에 주름이 깊은 이들은 기도하듯 손을 꼭 맞잡은 채 A씨가 한문장 한문장 말할 때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거나 “아휴…” 하면서 탄식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재판장 박정호)는 1950년대 미군 기지촌 성매매에 동원된 여성들이 대한민국과 미군을 상대로 제기한 국가 손해배상 소송의 첫 변론을 진행했다.

이 소송은 2022년 대법원이 인정한 국가 배상 책임에 더해 미군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까지 묻겠다는 취지로 청구됐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과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르면 공무집행 중인 미군 구성원 등이 법률상 책임을 지는 사고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이 우선 배상 책임을 지고, 이후 미군 측에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

원고 대리인들은 한국 정부와 미군이 1960~1970년대 ‘토벌’과 ‘컨택’이라는 방식을 통해 조직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성매매를 조장하고, 또 적극적으로 관리했다고 했다. ‘토벌’은 당시 양국이 여성들을 강제 연행한 것이 마치 대규모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는 뜻이다. ‘컨택’은 미군 병사가 성적으로 접촉한 여성을 당국에 지목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사자 동의는 물론 법적·의학적 근거도 없이 여성은 즉각 구금 대상이 됐다.

지난 4월2일 기지촌여성박물관 일곱집매의 전시실 ‘빈방있음’에 기지촌 여성이 사용하던 화장품과 소지품이 놓여져 있다. 김창길 기자

원고 대리인인 전다운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토벌과 컨택을 통해 여성들은 미 군용차에 실려 군대 내 시설로 이송됐고, 기지 내에서 성병 관리소에 감금됐다”며 “어떤 의학적 진단도 없이 미군과 접촉했다는 이유만으로 페니실린을 강제로 투여당했고, 과다 투약으로 쇼크를 일으키거나 후유증을 얻은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원고 측은 미군 사이에 있는 인종 갈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여성들이 동원됐다고 주장했다. 함승용 변호사(법무법인 율립)는 “미군 당국은 기지촌 클럽 업주들에게 접대부가 모든 인종의 미군들에게 동등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으면 출입 제한을 강제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한미가 공동으로 ‘애국 교육’을 실시하면서 미군 내 인종 갈등과 군 내 범죄를 여성들에게 떠넘겼다고도 했다.

함 변호사는 “담당 공무원들은 기지촌 여성들을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하는 한편, 성병 검진을 반드시 받도록 강제했다”며 “기지촌 관리 체계는 국가 안보와 한미 친선의 이름으로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위안부’ 당사자인 A씨도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어 1~2분간 “미군이 하루빨리 사과하도록 법원이 도와달라”고 했다. 그는 “기지촌에 갔더니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속아서 끌려온 여자들이 많았다. 우리는 미군을 접대하면서 사람 대접도 못 받고 폭행까지 당했다”며 “내 과거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미군의 잘못에 대해 알리려고 용기를 냈다”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피고 측 대리인은 “주한미군 배상사무소에서 우리가 제출한 서류를 접수했다는 회신이 왔다”며 “번역 등에 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한달 이내에 답변을 주겠다고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국가배상법과 SOFA 협정에 관한 규정에 대해 상세한 자료를 내주면 함께 판단하겠다고 했다. 다음 변론은 8월21일 열린다.


☞ “미군이 우리에게 한 일, 남김없이 밝혀주길” 기지촌 ‘위안부’ 피해 여성들 소송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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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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