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밀어낸 나무... 그늘도, 철학도 함께 사라진다
가로수 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플라타너스가 이제는 거리에서 사라져 간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알레르기(allergy)를 잘 일으킨다는 인식 때문이다.
플라타너스는 왜 '알레르기 나무'가 됐나
꽃가루에는 면역계를 강하게 자극하는 단백질(알레르겐, allergen)이 포함되어 있다. 이 단백질들은 구조가 안정되어 점막에 잘 결합하며 면역 글로불린 E 반응을 유도하기 쉬운 표면 구조를 가진다. 이후 비만세포가 활성화되고 히스타민이 분비되어 재채기, 비염, 결막염 등 전형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다.
플라타너스는 바람으로 수분(受粉, 가루받이)하는 나무다. 꽃가루가 작고, 가볍고, 오래 뜬다. 공기 중 체류 시간이 길고 멀리 이동하여 코점막, 기관지 깊은 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 씨앗 털도 점막에 기계적 자극을 일으켜 알레르기를 더 심화시킨다.
플라타너스는 도로를 따라 밀집 식재 되어 있다. 한 그루당 꽃가루 생산량도 많지만 같은 시기에 도심 가로수들이 일체 방출하니 문제가 악화한다. 더군다나 도시에서는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대기 오염물질과 결합하여 면역계 자극이 더해진다. 실제 알레르기를 잘 일으키기도 하지만 많이 심겨 있으니 알레르기 원인 나무로 표적이 되어 애물단지로 취급받는다.
플라타너스 이름의 'plat'은 넓다는 뜻의 'platys'라는 그리스어에서 비롯되었다. 나뭇잎이 넓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광경근(Platysma, 넓은목근육)과 어원이 같다. 광경근은 목과 얼굴에 넓게 걸쳐있는 피하 근육이다. 해부학 강의와 실습 지도 초입에 광경근 어원을 설명할 때마다 플라타너스가 불쑥 생각이 났다.
나와 카뮈: 내 첫 논문은 '알베르 까뮈론'
이어서 카뮈가 등장했다. 카뮈는 플라타너스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로 1960년 세상을 떠났다.
내 마음속 제1호 논문은 엉뚱하지만 문학 평론이다. 의대 재학 중 교지 《의창》에 게재한 '알베르 까뮈론: 부조리와 반항'. 1980년의 긴 휴학 기간 넘치던 시간에 카뮈 평전들을 짜깁기하여 쓴 부끄러운 글이다.

당시는 실존철학 시대였다. 나도 무신론적 실존철학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학창 시절, 나는 카뮈 팬이었다.
2003년 파리에서 열린 겨울 학회에 참석하였다. 학회 출발 전 일행들과 일정을 논할 때 카뮈 사고 현장 방문 의견을 내었다. 카뮈가 탄 승용차가 플라타너스를 들이받은 사진과 사고 장소의 추념비 사진이 아른거렸다. 하지만 그곳은 방문하기에 불편하였다. 파리 시내 관광을 포기할 일행도 없었다. 쉽게 결정이 났다.
결정된 대로 시내 관광에 나선 날이었다. 우리는 '생제르맹 데 프레' 카페 거리에 들어섰다. 당시 일정으로는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없었다. 차와 의학을 연결하는, 이와 같은 글을 쓰게 되리라는 상상조차 못 할 때였다. 이 글을 쓰는 순간 카페 안으로 들어가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사진도 찍고 추억도 남기지 못한 아쉬움이 진하게 든다.
그래도 몇 카페들은 천천히 지나쳤다. 과거에는 프랑스 출신뿐 아니라 이곳을 방문한 철학자와 작가들이 머물던 카페들이다. '카페 드 플로르' 앞을 지나쳤고 몇 걸음 더 가자 '레 되 마고'가 나타났다. 사르트르와 시몬 보봐르가 '레 되 마고'에서 '카페 드 플로르'로 본 거지를 옮긴 사건도 역사의 일부로 언급된다.
카뮈와 사르트르의 만남, 그리고 결별
과거부터 현재까지 프랑스는 차(茶)가 일상 음료가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와인과 커피가 지배적인 문화였고 식민지 무역 구조도 이를 받쳐주었다. 식사에도 와인과 커피가 주된 음료였다.
마네의 그림에서 보듯 프랑스에서 차는 생활 중심보다는 사교의 매개체였다. 차는 카페에서는 토론의 매개체였다. 20세기 중반 '생제르맹 데 프레'의 카페들은 단순한 만남의 장소가 아니었다. 유럽 정신의 실험실이었다. 이 카페들은 생각이 다른 서로를 공격하고 다시 물러나는 일종의 전장이었다.
이 카페 골목에서 차와 함께 거장들의 사상과 문장이 발효되었다. 이곳에 장 폴 사르트르와 알베르 카뮈가 있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처음에는 서로를 알아보고 인정하였다. 두 사람은 2차 대전 후 폐허 속에서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이 우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정적인 균열은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었다. 카뮈는 사회주의 혁명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이 정당성을 갖지 못한다고 보았다. 반면 사르트르는 당시 진행되던 소련과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인정하려 했다. 그는 폭력도 불가피한 것으로 보았다.
이 차이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을 바라보는 방식의 차이였다. 결국 두 사람은 결별했다.
학창 시절 나는 카뮈 편이었다. 사회주의 혁명과 폭력에 대한 사르트르의 태도가 싫었다. 사르트르가 카뮈와의 경쟁에 탈락한 과거 때문에 노벨상 수상을 거부하였다는 설도 나는 믿었다.
이방인, 시시포스 신화, 페스트, 반항적 인간으로 이어지는 카뮈의 작품에 비해 사르트르 작품들이 뒤처져 보였다.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계약 결혼도, 페미니즘을 선도하던 보봐르 작품과 활동도 내게는 어색해 보였다.
60~70년대는 사르트르의 카페 전성시대였다. 사르트르가 글을 쓰면, 다음 날 아침 카페는 그 글에 관한 토론으로 들썩였다.
1960년에 죽은 카뮈는 그때 없었다. 카뮈는 노벨상 수상 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루르마랭에 머물다, 승용차를 타고 파리로 올라오는 길에 플라타너스와 충돌한 교통사고로 죽었다. 카뮈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실존철학의 무대였던 파리 카페의 주인공도 바뀌었을지 모른다.
승용차 대신 기차를 타고 싶었던 카뮈의 호주머니에서 기차표가 발견되었다는 점에도 나는 아쉬워했다.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다 돌진한 자동차와 충돌한 죄 밖에 없는 플라타너스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나무 그늘은 어떻게 헨델의 아리아가 되었나
플라타너스는 인간의 사랑을 크게 받았던 나무다. 공기정화 능력도 높고 공해에도 잘 자라 오랫동안 가로수로 도시에 그늘을 제공했다. 시인들에 의해 도시의 소음을 들어주는 경청자 혹은 사람의 벗으로 칭송받았다.
대부분 학교 교정에서도 한 두 그루는 서 있었다.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에 성악곡 한국 가사를 붙인 사람도 플라타너스를 생각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한 나무다. 어디서든 잘 자라서 꽃말이 '천재'다.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은 사람들에게 사색의 장소를 제공하였다. 소크라테스와 파이로도스가 얘기를 나눈 넓은 잎을 가진 나무도 플라타너스로 추측된다.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크세스(BC 518~465)는 플라타너스에 아주 긴 이야기를 남겼다. 크세르크세스는 마라톤 전투에서 그리스에 패한 아버지 다리우스 1세의 원수를 갚고 페르시아의 영광 재현을 위하여 분투한 왕이다. 성경 '에스더서'에서 아하수에로 왕으로 나온다.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원정에 나섰다 뜨거운 햇볕을 가려주는 플라타너스를 발견하고 나무 모습에 취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 아래 휴식으로 병사 소집의 적기를 놓쳐 크세르크세스는 전쟁에서 패한다.
작곡가 헨델은 이 이야기를 배경으로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 오페라 시작 부분에 나오는 아름다운 아리아가 '옴부라 마이푸 (Ombra mai fu)'다. "어디에도 없던 나무 그늘"이라는 뜻이다. 크세르크세스가 플라타너스에 감사하여 부르는 이 노래는 오케스트라 버전일 때는 '헨델의 라르고'라고 부른다는데, 내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독일어 성악곡 제목도 '헨델의 라르고'였다.
이 음악은 원래는 카스트라토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카스트라토는 남자 소프라노를 의미한다. 사춘기 이전에 수술이나 화학물질로 고환을 제거하여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생산을 막았다.
테스토스테론이 없으니, 안드로겐수용체가 일하지 못했다.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 신호전달이 감소하고, 이어 IGF-1와 TGF-β 신호전달이 떨어졌다. 콜라겐과 기질 분자 리모델링이 억제되고 후두 근육의 비대가 억제되었다.
결과적으로 후두는 변성기 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변성기 이전의 목소리를 그대로 내게 되었다. 현대 분자생물학 지식으로 카스트라토 탄생을 해석하면 이처럼 된다.
1903년 교황청이 거세(去勢) 금지를 명령한 이후 이제는 카스트라토 성악가는 없다. 현재는 아래 링크한 영상처럼 카운터테너나 여성 성악가가 이 아리아를 부른다.

도시는 왜 플라타너스를 견디지 못하게 됐나
플라타너스는 알러지 외의 이유로도 수난을 겪는다. 시민들은 사색을 주던 커다란 나뭇잎을 여러 이유를 들어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빨리 자란다는 이유로 가지치기해서 볼품없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서 있는 나무도 많다.
뿌리가 깊지 않아 쓰러질 위험이 크다는 결점도 제기한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뿌리가 자랄 시간을 주어 플라타너스를 공공자산으로 인정하려는 인내가 시민들에게는 더 이상 없어 보인다. 항의가 높자 당국은 알레르기 유발이 덜한 나무로 가로수를 점차 대체하고 있다.
나무는 변하지 않았으나 도시인의 기준이 변하여 플라타너스는 도시에서 밀려난다. 아쉽게도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드리운 그늘과 함께 만들어진 기억도 같이 사라진다.
유영현 티클리닉 디렉터(오디오칼럼 1+1이야기 https://www.youtube.com/@yhyoo0906)

유영현 디렉터 (yhyoo@d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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