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고용 재앙 없다, 내가 틀려 다행”˙˙˙말 바꾼 AI 거물들, 왜? [산업이지]

“인공지능(AI)의 영향으로 초급 사무직이 지금쯤 많이 사라졌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내가 틀려서 다행이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6일(현지 시간)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커먼웰스은행 콘퍼런스에 화상으로 참석해 “AI발(發) 일자리 대재앙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습니다. 지난해에는 “AI로 직군 전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진단했는데 입장을 바꾼 것입니다.
AI 업계에서 ‘비관론자’로 꼽히는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의 입장도 최근 미묘하게 달라졌습니다. 그는 과거 “초급 화이트칼라 일자리 절반이 사라지고, 실업률이 10~20%까지 치솟을 수 있다”며 AI 고용 충격을 경고해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5일 브리핑에서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습니다.
아모데이 CEO는 ‘제번스의 역설’을 거론하며 AI 도입으로 인한 자동화가 일자리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증폭시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는데요. 제번스의 역설은 효율성이 높아지면 사용처가 늘어나 수요가 줄지 않고 되레 늘어난다는 이론입니다.
최근 AI발 고용 충격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는 상황에서 AI업계 거물들이 잇달아 낙관론을 펼친 셈입니다. 이들의 발언을 그대로 믿을 수 있을지, 이면에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AI 고용 충격 ‘아직은 검증 안 돼’

일부 통계나 연구결과가 ‘AI 고용 재앙은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미국 예일대 버짓랩에 따르면 2022년 챗GPT 출시 후 지난해 8월까지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에서 실업률이 유의미하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버짓랩은 지난 7일 보고서에서 “현재로선 AI가 노동 시장 약화의 원인이라는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국제회계법인인 KPMG가 실시한 미국 CEO 전망조사에서도 ‘올해 AI 때문에 인력을 줄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9%에 불과했습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은 오히려 ‘올해 AI 관련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했죠.
물론 이런 보고서나 연구결과에는 대부분 ‘아직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는 거죠. 또 AI 때문이라고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 등 주요국에서 청년층 고용이 둔화된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여전히 AI로 인한 일자리 소멸보다는 창출이 많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적지 않습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AI 고용의 영향이 올해와 내년에는 혼조세(중립)를 보이다가 2028년부터는 일자리 증가분이 감소분을 앞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일부 일자리가 자동화로 사라지더라도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꾸준히 ‘일자리 창출이 소멸보다 많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죠.
기업들, 일반 해고도 “AI 때문” 주장했을 수도

최근 해외 IT업계 고용에 찬바람이 불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용정보사이트 레이오프(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 들어 현재까지 기술업종 해고는 11만5000명을 넘어 지난해(12만4000명)에 근접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정말 AI에 의한 해고인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기업의 ‘AI 워싱’일 수 있다는 것이죠.
인건비 절감이나 사업 불황을 이유로 해고를 한다면 기업 이미지가 좋아지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AI 도입 때문에 인력을 줄였다”고 말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미래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혁신 기업’ 이미지를 구축할 수도 있습니다. 올트먼 CEO도 지난 3월 블랙록 미국 인프라 서밋에서 “해고하는 거의 모든 회사가 실제 AI 때문인지와 상관없이 AI를 탓하고 있다”고 했죠.
코딩 분야에서 ‘AI로 인해 개발자가 대체될 것’이라는 공포감도 역시 과장됐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최근 개발자 채용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팬데믹 시기 온라인 수요 증가로 급격히 늘었던 고용이 정상화되는 과정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뒤따릅니다.
사실 AI의 성능이 인간 노동자를 대체할 수준에 이르렀는지도 불분명합니다. 가트너는 내년까지 AI를 이유로 고객서비스 인력을 줄인 기업 중 절반이 직원을 다시 뽑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습니다. AI가 고객 응대와 같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이죠. 어쩌면 올트먼 CEO의 입장 변화는 아직 AI의 성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겸허한 자기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IPO를 위한 큰 그림?

하지만 좀 더 신랄한 해석도 있습니다. 오픈AI와 앤트로픽은 모두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입니다. 두 기업은 기업가치가 1조달러 대에 이를 수 있다고 평가되는 ‘대어’입니다. 이들에게 IPO 흥행은 매우 중요한 이벤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일자리를 뺏어가는 기업’이라는 꼬리표는 투자 흥행에 유리할 게 없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투자자들이 선뜻 나서기 어려워질 테니까요. 정부를 자극해 규제 대상에 오를 수도 있고요.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1월 시행한 AI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 72%가 ‘정부가 AI로 인한 일자리 손실을 막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미국 온라인매체 악시오스도 지난 22일 “AI에 대한 반감이 투자자에게 비용이 될 수 있다”며 “일자리 상실 우려, 전기요금 부담, 데이터센터 반대 시위가 투자 열기를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죠.
그러니 두 CEO의 발언은 ‘기존 일자리를 보완하는 생산성 향상 도구’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적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AI 실업’은 하나의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습니다. 교황 레오 14세가 ‘노동의 존엄’ 등의 내용을 담은 AI 회칙을 만든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한국정부도 ‘AI 대응 일자리정책 로드맵’을 구축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AI 실업을 둘러싸고 역사적으로 기술혁명은 모두 일자리 증가를 불러왔다는 낙관론부터 AI로 인한 실업이 국가 경제를 흔들 것이라는 비관론까지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두 AI 선두기업 대표가 새로 내놓은 진단이 맞아 떨어질지 지켜볼 일입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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