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 리치 이기, 이준석 - 주류가 된 일베 멘탈리티의 삼위일체[위근우의 리플레이]

위근우 칼럼니스트 2026. 5. 3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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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광천동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지난 21일 열린 스타벅스 코리아 규탄 기자회견에서 스타벅스 텀블러와 컵 등이 깨지고 찌그러진 채로 놓여있다. 연합뉴스

정용진, 리치 이기, 이준석. 세대도 활동 분야도 다른 세 남자의 이름이 비슷한 시기, 일베라는 키워드와 함께 뉴스에 오르내렸다. 먼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5월18일 신세계그룹 계열사인 스타벅스코리아는 텀블러 홍보 이벤트를 하며 ‘탱크데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논란이 되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진압하던 신군부의 전차 진입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문구기에 다들 5·18을 비하 및 희화하기 위한 일베 밈이라는 걸 직감했다. 같은 이벤트에 사용된 ‘책상에 탁!’이란 문구에서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떠올린 것도 같은 이유다. 그리고 래퍼 리치 이기. 그의 첫 단독 콘서트 날짜와 시간은 5월 23일, 오후 5시 25분. 심지어 티켓 가격도 5만2300원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을 희화화하는 전형적인 일베 발 밈으로 가득한 이 공연은 노무현재단의 공론화와 법적 대응 시사로 취소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준석. 5월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일베를 비롯해 조롱과 혐오를 조장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폐쇄 혹은 징벌적 손해 배상을 언급하자 그는 발 빠르게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가 제 역할을 하고 국민의 삶이 풀리는 사회에서 일베식 냉소는 박멸”될 것이며 “국민이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일베 사이트 폐쇄 따위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시기적 우연보다 더 밀접하게 셋을 연결하는 고리도 있다. 리치 이기가 ‘2025 Rich Iggy는 노무현처럼 Jump’라는 노골적인 고인 모독 가사를 담아 발표한 곡의 제목은 ‘Junseok Lee’, 즉 이준석의 이름을 인용한 곡이다. 해당 곡에서 이준석은 ‘난 단일화 없이 달려, I feel like a 이준석’이라는 가사로 등장하며, 그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당 곡에 대해 ‘ㅎㅎㅎㅎ’란 반응을 남겼다. 그 이준석은 앞서의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대통령은 매일 같이 스타벅스 행사 이름을 들여다보”는 것을 비판하며 “국민들이 바라는 건 집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 마셔도 정치색으로 재단 당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라며 정용진과 스타벅스를 일베 리스크로부터 구출하는데 앞장 섰다. 온갖 패륜적인 일베 발 밈과 정서로 범벅이 된 가사로 명성을 얻은 래퍼는 정치인 이준석을 호출하고, 그 정치인은 그동안 본인 인스타그램에서 ‘멸공’을 외치고 극우 단체인 빌드업코리아의 행사를 지원하던 재벌을 옹호해준다. 그리고 다시, 그 재벌이 소유한 회사의 이벤트에서 리치 이기의 523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은밀하지만 안 보이진 않을 만큼의 일베 밈이 노출된다. 문화와 정치와 경제, 세 영역의 남자가 일베라는 키워드로 묶인 이 기묘한 조합과 상호 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정당성을 보증하고 또한 의지하는 순환 구조를 이룬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이준석이 말한 정치가 제 역할만 하면 일베가 알아서 박멸될 거라는 주장이 틀린 이유다.

이준석의 글에서 진정 전략적인 지점은 대통령에 대한 반박도, 스타벅스에 대한 변호도 아니다. 일베를 문제적 집단으로 보고 일베 박멸의 대의에는 짐짓 동의하는 척하면서도, 정작 명백히 일베로 분류해도 무방할 리치 이기 논란은 쏙 빼놓고 이야기한다는 게 그 글의 핵심이다. 본인도 연루된 인물이니 불리해질 거라 판단한 걸까. 당연히 그렇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리치 이기가 빠져야만 그 글의 논리와 목적이 완성될 수 있다. 억지로 폐쇄할 것 없이 정치를 잘하고 세상이 좋아지면 알아서 일베가 사라질 거라는 논리에서 일베는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토양 없이 정치적 불안과 불만에 기생 중인 불안정한 대상이다. 그러니 정치 권력이 괜히 열심히 일하는 재벌을 벌주고 간섭하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통제하는 건 월권이자 잘못된 해결책이 된다. 사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 시절부터 주야장천 주장하는 ‘작은 정부론’의 또 다른 판본에 불과한 이 논리는 정치가 자유 경쟁을 위한 심판 역할에만 머무르면 상품이든 사상이든 시장에서 좋은 결과가 알아서 도출된다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틀린 가정이다. 당장 그걸 가장 잘 증명하는 게 리치 이기다. 이미 많이 공론화되었듯 이번 논란이 터지기 전까진 알만한 힙합계 스타들이 그와 협업하는 걸 꺼리지 않았고 리스너들도 문제 삼지 않았다. 즉 문화 영역에서의 혐오는 시장 경쟁을 통해 저절로 자정되지 않았으며, 결국 시민사회의 직접적이고도 강경한 대응으로 겨우 억눌렀을 뿐이다.

일베에 대한 정치의 책임을 묻지만 정작 정치인인 본인의 정치적 무책임과 방기를 정당화하는 이준석의 주장은 단순히 지방 선거를 앞두고 대통령과 여당을 깎아내리려는 키보드 배틀용 궤변이 아니다. 정치인 이준석으로선 제목과 노랫말에 자신의 이름을 인용하는 젊은 남자 래퍼와 그 리스너들이라는 정치적 추종자를 포기할 수 없으며, 본인의 능력주의 비전에서 이상향으로 제시할 자유롭게 할 말 다하는 재벌 회장님의 상징성도 포기할 수 없다. 523과 탱크와 민주화 등의 일베 발 사회방언을 사용해 소속감을 얻는 문화 집단과 그들이 혐오하는 위선적인 종북 좌파의 대척점에 있는 동시에 동경하고픈 자본가, 그러한 욕망을 능력주의와 공정이라는 키워드를 활용해 나름 그럴싸한 정치적 담론과 비전으로 정리해 제시할 줄 아는 정치인. 문화, 경제, 정치로 구성된 이 셋은 일베라는 특정 사이트와 온라인 하위문화를 벗어나 주류화된 일베 멘탈리티의 삼위일체다. 이것은 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자신의 정의론에서 현대 사회의 부정의를 문화적 무시,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대표 불능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구분한 것과 흥미로울 정도로 유사하다. 호남과 여성 등 특정 범주를 비하하고 혐오하는 무시, 오너리스크의 경제적 피해가 오롯이 노동자들에게 전가되지만 재벌가 회장님의 지위와 재력은 그대로인 불평등, 정치를 공정 경쟁과 승복의 문제로 축소하는 대표 불능은 각 영역에서 일베 멘탈리티가 정당화하는 부정의의 양상이다.

세 가지 전선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고 통합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던 프레이저의 통찰은 그래서 최근의 일베 관련한 논의에서도 중요하게 기억해 둘 만하다. 이준석이 리치 이기의 존재를 일부러 지우는 건, 그와 리치 이기의 사이의 공생 관계를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그가 해당 글을 통해 구제하려는 정용진과 리치 이기의 공생 관계, 자신과 정용진의 공생 관계를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준석이 대통령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일베라는 기표를 국가 권력으로 쉽게 폐쇄 가능한 하나의 사이트이자 타자화된 작은 서클로 표상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주류화된 일베는 문화, 경제, 정치 세 영역에서 각각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기반을 갖추고 서로 연결되어 전방위적 헤게모니를 발휘하는 군체다. 이러한 군체의 존재를 감추고 단지 일베 사이트 폐쇄가 정당하냐 아니냐는 범위로 논쟁을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이준석과 일베가 가장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준석이 한 말 중 단 한 가지는 맞았다. 대통령에게 원하는 것은 일베 사이트 폐쇄 따위가 아니다. 이미 다 죽어가는 그깟 사이트 하나가 아니라 그들이 온오프라인에 뿌려댄 혐오의 언어와 동력을 뿌리 뽑는 걸 원한다. 약자 혐오와 차별을 막는 강력한 제도적 보완과 공정을 가장한 불평등의 개선과 옳고 그름에 대한 논의가 왜곡되지 않는 공론장을 원한다. 그리고 아주 개인적인 바람 한 가지 더. 영 마뜩잖은 수준이지만 어쨌든 정용진도, 리치 이기도 본인들의 과오에 대해 명목상 사과는 했다. 하지만 이준석은 그동안 꾸준히 일베 멘탈리티를 주류화된 정치 담론으로 끌어올린 것도 모자라 리치 이기의 고인 모독 노래에 호응했음에도 사과는커녕 여전히 온라인을 통해 이죽대는 중이다. 그런 이준석이 제대로 말의 무게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개를 숙이는 순간을 원한다. 여전히 뻗대는 그의 존재야말로 일베 멘탈리티가 사회에서 리스크 없이 통용된다는 증거이므로.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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