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 도면 무시한 ‘잘못된 절단’… 서소문 고가 붕괴, 예견된 인재였나
“크레인 고정도 없이 가위질”… 기본적인 안전 수칙마저 통째로 실종
‘내부 강선 파단’ 알고도 무대책 해체… 결국 예견된 ‘취성파괴’ 가능성
수사의 칼끝은 어디로… 계획서 임의 변경과 특수 구간 부실 검토 규명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의 붕괴 사고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계획과 시공 전반에 대한 부실 의혹이 거세게 일고 있다. 철거 대상이 가진 구조적 취약성을 간과했는지, 설계도와 다른 방식으로 무리한 가공이 이뤄졌는지, 그리고 붕괴 위험에 대한 안전 대책이 전무했는지 여부가 향후 수사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안전관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안전관리계획서를 분석한 결과, 사고가 발생한 ‘S9’ 구간은 길이가 총 28m에 달해 전체 철거 대상 중 가장 길고 하중이 무거운 취약 구역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원래 설계 도면대로라면 이 구간은 슬래브(바닥판)에 구멍을 뚫고 줄톱을 집어넣어 전체를 한꺼번에 절단해야 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28m를 한 번에 자르지 않고 21m를 먼저 잘라내는 등 도면 규정을 위반한 시공이 이뤄진 정황이 포착됐다. 이러한 변칙적인 작업이 구조물의 균형을 무너뜨려 붕괴의 결정적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도면상으로는 중간에 구멍을 뚫고 와이어쇼를 이용해 28m 전체를 절단한 뒤 크레인으로 고정한 상태에서 한 번에 내려야 하는 구조”라고 짚으며 “21m를 먼저 절단하고 7m를 남겨두며 오히려 떨어지기 쉬운 상태가 됐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물 내부에서 발생한 역학적 변화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도 뒤를 이었다. 현장소장 경력을 가진 A씨는 “21m를 자른 시점에서 거더(보)가 휘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거더가 아래로 휘면서 교각 쪽에 강한 전단력이 생겨 콘크리트가 버티지 못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S9은 길이도 길고 무게도 더 무거웠는데 교각 부분에 가해지는 전단력 검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라며 하중이 집중되는 가장 긴 구간임에도 다른 평이한 구간과 동일한 공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 계획서의 부실함을 꼬집었다.
기본적인 안전 수칙인 ‘선(先) 고정 후(後) 절단’ 원칙이 실종됐다는 내부 고발성 지적도 나온다. 현직 감리인 B씨는 설계 도면에 명시된 ‘부재 인양 시 반드시 크레인으로 부재를 고정한 후 절단해 안전사고를 예방해야 한다’는 필수 지침을 언급하며, 사고 당시 현장에 크레인이 배치되지 않았던 점을 문제 삼았다. B씨는 “절단 작업 과정에서 슬라브 처짐이 발생했다면 무너질 것을 대비해 크레인으로 부재를 잡는 등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조물의 기저 질환을 알고도 방치한 해체 강행이 화를 키웠다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건축시공기술사 C씨는 전체적인 작업 흐름 자체는 계획을 따랐을지 몰라도 거더의 처짐이나 갑작스러운 붕괴를 막을 세부 대책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C씨는 “2019년 정밀진단에서 이미 거더 내부 강선 파단이 확인됐고 인장력 저하와 휨 하중 증가가 예측됐는데 별도 보강 없이 사용과 해체 작업이 이뤄졌다”며 “인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절단 작업이 진행되며 취성파괴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취성파괴는 구조물이 변형 없이 순식간에 부서지는 현상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왜 이런 붕괴가 발생했는지 의아한 부분이 있다”며 “실제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절단과 인양 작업이 진행됐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사전에 정해진 안전관리계획서와 도면을 현장이 얼마나 임의로 무시했는지, 그리고 고위험 구간에 맞는 맞춤형 안전성 검토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규명하는 조사가 경찰 수사의 본궤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성원 기자 sone@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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