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공개, 정확한 정보 제공해 사회 갈등 예방할 것”

한민아 기자 2026. 5.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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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공개 제도의 실무상 쟁점’ 학술대회
사법정책연구원·법률신문 공동 주최
사법정책연구원과 법률신문이 공동 주최한 '판결문 공개제도' 학술대회가 5월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열렸다. 백성현 기자

판결문 공개 확대가 정보 왜곡으로 인한 사회 갈등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법조인뿐 아니라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는 소송 당사자들 역시 판결문 공개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공유됐다.

사법정책연구원(원장 이승련)과 법률신문(대표 이수형)은 5월 27일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판결문 공개 제도의 실무상 쟁점' 공동학술대회를 열었다. 판결문 공개 제도의 현황을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개별 판결서 공개를 넘어 인공지능(AI)이 학습할 수 있는 형태의 판결서 데이터 활용 문제도 함께 논의했다. 

"판결문 통해 사건 실체 확인 가능"
1세션  '판결문 공개제도의 현황 및 개선방향'의 주제 발표를 맡은 이정현(사법연수원 40기) 창원지법 통영지원 부장판사는 판결서 공개 필요성을 사회 갈등 예방 측면에서 설명했다. 최근 우리 사회가 정치적·사회적으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고, 부정확하거나 왜곡된 정보로 상대방을 비난·공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이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형사재판, 선거재판 등에서 심화된다는 것이다.

이 부장판사는 "판결서에는 사실관계 및 법리와 판단, 결론이 담겨 있으므로 국민들이 사건의 실체와 법원 판단 근거를 직접 확인할 수 있어 왜곡되거나 단편적으로 전달된 정보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왜곡된 정보를 이용한 부당한 비난과 공격이 아니라 정확한 사실관계에 기초한 비판과 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그는 판결서 공개 제도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기존 공개 방식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그동안 판결문 공개 과정에서 과도한 비실명 처리로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며 "자연인에 대한 특정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이름·주소·전화번호·계좌번호·신용카드 번호 등) 외에는 비실명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부장판사는 판결문 공개 제도 접근성을 저해할 수 있는 수수료 제도와 판결문 공개 창구가 분산돼 운영되는 점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정한 재판에 도움"
이 부장판사는 전문가들뿐 아니라 개인정보 노출 우려가 있는 소송 당사자들 역시 판결문 공개에 대체로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도 소개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2025년 7월부터 8월까지 법조인과 소송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송 당사자의 74.8%가 판결서 인터넷 공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약 28%는 전면 공개에, 약 46%는 제한된 범위에서의 공개에 찬성했다.

법조인의 찬성 비율은 더 높았다. △법관 76.6% △검사 87.2% △변호사 96.9%가 판결서 인터넷 공개에 찬성했다. 다만 찬성 의견 중 '전면 공개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법관 13.2%, 검사 10.3%로, 소송 당사자(28.7%)보다는 낮았다. 변호사는 약 33%가 전면 공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결문 공개에 찬성하는 이유로는 '헌법상 재판 공개 원칙 및 국민의 알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기 위해', '판결서를 공개하면 공정한 재판에 도움이 되므로' 등이 제시됐다.

국가마다 상이한 법체계 반영해야
제1세션 토론에 참여한 김재남(41기) 인천지법 판사는 판결문 공개와 관련해 해외 사례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미국은 분쟁의 상당수가 중재·조정 등으로 해결돼 실제 판결로 이어지는 비율 자체가 낮다"며 "우리나라는 공개되는 판결서의 수가 외국과 비교해도 상당히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영미법계 국가와 대륙법계 국가 간 법체계, 법원의 역할에 대한 인식, 재판 구조 차이 등을 함께 고려해 판결서 공개 정책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판결문뿐 아니라 결정문 공개의 필요성도 제시됐다. 이무룡(43기) 서울대 로스쿨 조교수는 토론에서 "가처분 결정문도 판결문만큼이나 상세한 경우가 많고, 중요도나 사회적 관심이 판결에 준하는 것들도 적지 않다. 결정문 공개 제도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 쇼핑' 우려도
'판결서 데이터 및 데이터세트의 상업적 이용과 그 한계'를 주제로 열린 제2세션에서는 인공지능(AI)이 학습할 수 있는 다량의 판결서 데이터가 제한 없이 제공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 논의됐다. '판결서 데이터 세트'는 AI가 판례를 학습하거나 리걸테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법원 판결문 텍스트를 기계가 읽기 좋은 형태로 가공·구조화한 데이터 모음집을 뜻한다.

주제 발표자인 박철홍(40기) 광주지법 순천지원 부장판사는 "판결 데이터가 기계 분석 및 언어모델 학습에 활용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될 경우 법관 프로파일링이나 '재판부 쇼핑'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정 법관의 양형 경향이나 파기율 등을 분석해 사건 결과를 예측하는 서비스 구축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비실명 처리된 정보라고 하더라도 다량의 데이터가 존재하는 경우 언론 보도나 외부 정보와 결합돼 재식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판결서 데이터 세트를 제공하는 경우 기간을 정해 일정 조건을 충족한 주체에 사용을 승인하는 방식에 의해야 한다"며 "데이터 국외 이전에 대비해 일정한 라이선스를 설정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 열람에서 데이터 제공으로"
제2세션 토론에 참여한 최경진 가천대 법대 교수는 판결문 공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열람 서비스가 아닌 '기계 판독이 가능한 형태의 데이터 제공'이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AI 시대에는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정도만으로 데이터가 제공되는 것은 충분하지 않고, 검색·분석·학습·검증·서비스 개발이 가능한 구조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판결서 데이터 제공은 민간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상업적 이익 문제로만 볼 것은 아니다. 법률가, 연구자, 법률구조기관, 공공기관 등 국민 모두가 수혜자가 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공개 여부 자체보다 어떤 조건과 방식 아래 데이터를 제공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YES or NO'의 '찬반 논쟁'에서 'HOW'로 나아가는 '설계 논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진(38기) 엘박스 대표는 토론에서 "판결서 데이터 전면 공개는 해외 AI 기업에 의한 사법 주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판결서 데이터 세트가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가장 빠르게 학습할 주체는 국내 리걸테크 기업이 아니라 챗GPT 같은 해외 AI 서비스 운영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법원이 축적한 판결서가 해외 AI 서비스에 비가역적으로 흡수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해외 AI 서비스의 답변이 사실상 한국법에 대한 표준 해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며 "결국 한국 법률 영역에 대한 해석과 판단 자체가 외부 인프라에 의존하게 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