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법 속의 한국] 플리바게닝 뒤에 숨겨진 추방 위험

2017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재 대 미합중국' (Jae Lee v. United States, 582 U.S. 357 (2017)) 판결은 형사법과 이민법이 맞물리는 이른바 '크리미그레이션(crimmigration)' 시대의 헌법적 긴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마약 관련 범죄로 기소되고 유죄를 인정한 한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이 판결은 미국의 수정헌법 제6조가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형사 및 이민 절차 사이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점에서 중요하다.
사건의 당사자인 이재(Jae Lee)는 한국 국적의 미국 영주권자였다. 그는 열세 살 때 이민 간 후, 성인이 되어 테네시주 멤피스시에서 중식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그러나 시민권을 취득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중에서 엑스터시라고 불리는 MDMA 마약의 대량 소지 범죄로 연방 법원에 기소되었다.
당시 이재의 변호인은 유죄를 인정하더라도 추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언했고, 그는 변호인의 판단을 믿고, 조기 유죄 인정을 대가로 낮은 구형을 약속받는 검찰과의 플리 딜(plea deal)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의 조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미국 이민법상 해당 마약 범죄는 강제추방 사유였고, 결국 그는 유죄 인정 이후 추방 절차를 직면했다. 이재에게 추방은 교도소에서의 복역보다 더 치명적인 것이었다. 미국은 그의 삶의 터전이었고, 추방은 곧 삶 전체의 붕괴를 의미했다.
그는 변호인의 잘못된 조언 때문에 변호인으로부터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정 헌법 제6조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연방지방법원에 유죄 인정 취소를 신청했다. 하지만 지법은 설령 정확한 조언이 있었더라도 유죄의 압도적인 증거가 있었으므로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연방고법에서의 항소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연방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작성한 다수의견은, 이 사건의 핵심이 단지 재판 승소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형량이 아니라 추방 회피였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따라서 설령 재판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더라도, 그가 이민법과 추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받았다면 재판을 선택했을 합리적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변호사로부터 그릇된 확신을 얻은 이재는 헌법이 보장하는 충분한 변호의 권리를 침해당하였고, 그의 형사 사건은 유죄 인정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반면 토머스 대법관의 반대의견은 보다 엄격했다. 그는 하급 법원이 결정한 것처럼 유죄의 증거가 명백했던 만큼 재판을 선택했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재판을 택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의 의미는 2010년의 '파디야 대 켄터키'(Padilla v. Kentucky, 559 U.S. 356 (2010)) 판결과 함께 크리미그레이션 분야의 주요 판결로 손꼽인다. 파디야 사건에서 대법원은 형사 변호인이 유죄 인정이 초래할 이민상 결과, 특히 추방 가능성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야 할 헌법적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그전까지는 추방은 형사처벌의 단순한 부수적 결과이고, 형사절차와는 별개로 취급되었다. 파디야 판결은 이를 사실상 형사절차의 핵심 결과로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이재의 사건에서 그 원칙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 단순히 변호인의 의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잘못된 조언이 있었을 때 피고인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까지 확장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민자에게 추방이 얼마나 결정적인 문제인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오늘날 미국 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많은 이민자들에게 형사사건은 단순한 형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추방이라는 2차적 '형벌'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을 잃을 위험과 직결된다. 주로 이민자들에게 가혹하다시피 엄격한 미국 사법부가 그러한 현실을 형사법 체계 속에서 비로소 일부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결로 남는다.
줄리어스 남(Brown, White & Osborn 변호사, 전 미국 LA 연방검찰청 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