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이야기' 아이들이 노인이 된다면…괴물에 맞선 실버타운 오합지졸

강유빈 2026. 5. 30.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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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행의 이유]
더퍼 형제가 총괄 프로듀서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실버타운'
편집자주
매주 뭐 볼까 고민하다 지친 당신에게 한국일보 대중문화팀 기자가 정주행을 부르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실버타운'에서 샘(왼쪽·알프레드 몰리나)과 월리(데니스 오헤어)가 괴물의 피로 만든 신비로운 불빛을 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영화나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서 가장 덜 다뤄지는 세대를 꼽으라면 단연 노인일 것이다. 등장하더라도 젊은 주인공의 주변부에서 한마디씩 삶의 지혜를 일깨워 주거나, 가업 승계의 키를 쥐고 권위를 세울 때 반짝 존재감을 드러냈다 사라진다. 노인 캐릭터를 극의 중심에 놓고 입체적으로 다루는 드라마는 국내에서나 서양에서나 드물었던 게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시리즈 ‘더 실버타운(The Boroughs)’은 인물과 소재부터 일단 눈길을 끈다. 은퇴자들이 거주하는 마을을 배경으로 노인들이 초자연적 공포와 마주하며 비밀을 파헤치는 ‘노년 공상과학(SF) 호러 시리즈’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실제 인생 황혼기에 접어든 70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모험을 이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이 던지는 상실과 고통, 시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은 곧 우리에게 닥칠 일이기에 더 와 닿게 느껴진다.


노인들의 시간을 훔치는 괴물

넷플릭스 시리즈 '더 실버타운'에서 정체 불명의 괴생명체가 오븐을 통해 입주자의 집에 침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드라마는 갑작스럽게 아내를 잃은 전직 엔지니어 샘(알프레드 몰리나)이 뉴멕시코 사막 한가운데의 실버 타운 ‘더 버로우즈’에 입주하면서 시작한다. 골프 코스와 복고풍 식당으로 가득 찬 인공 낙원처럼 보이는 이곳은 슬픔에 빠진 샘에게 감옥처럼 느껴질 뿐이다. 어느 날 밤 샘은 옆집 이웃 잭(빌 풀먼)의 집에서 거미처럼 여러 개의 팔다리를 가진 괴생명체가 잭의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빨아들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로 인해 잭은 죽음을 맞고, 샘은 괴생명체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해 같은 블록 이웃인 르네(지나 데이비스), 주디(알프리 우다드), 아트(클라크 피터스), 월리(데니스 오헤어)와 팀을 결성한다.

등장인물의 속도에 맞추느라 이야기가 다소 천천히 진행되는 감이 있지만, 더 실버타운은 노화와 죽음에 대한 보편적인 두려움, 그리고 남은 시간의 가치를 SF 판타지의 소재로 참신하게 풀어낸다. 샘과 친구들은 정체불명의 괴물이 밤마다 오븐을 가장한 통로로 입주자 집에 몰래 침입해 ‘뇌척수액’을 뽑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직 의사였던 월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같은 뇌척수액 추출이 누적되면 뇌신경 질환이 생길 수 있고 결과적으로 수명이 몇 년씩 단축된다. 괴물이 훔쳐간 건 노인들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생명 그 자체였던 셈이다. 기이한 분위기를 풍기는 버로우즈의 설립자 부부는 괴물의 존재를 알면서도 쉬쉬하며 이들의 진실 찾기를 방해하는 빌런으로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실버타운'에서 르네 역할을 맡은 지나 데이비스. 넷플릭스 제공

‘노인 어벤저스’라 할 만한 베테랑 명배우들의 묵직한 연기력과 역대급 앙상블이 작품의 큰 관전 포인트로 꼽힌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닥터 옥토퍼스’로 잘 알려진 알프레드 몰리나가 주인공 샘으로 중심을 잡고, ‘델마와 루이스’의 델마였던 지나 데이비스는 빈티지 컨버터블 자동차를 타고 또 한 번 사막 위를 질주한다. 몰리나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제작진과 상실, 특히 오랜 시간 함께했던 파트너를 잃었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샘에게 동질감을 느꼈다”고 합류 배경을 설명했다. 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가진 다른 동료들 역시 시한부 암 환자나 바람둥이, 나이 든 히피 같은 다소 전형적인 설정 속에서도 유머와 절박함을 오가는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더퍼 형제’ 스타일 듬뿍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글로벌 히트작인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제작한 맷 더퍼와 로스 더퍼 형제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인 작품 분위기가 더퍼 형제의 전작을 떠올리게 한다. ‘기묘한 이야기’가 1980년대 가상 소도시를 배경 삼아 스필버그 영화의 향수를 자극했다면, ‘더 실버타운’은 그 시절 청춘을 보냈던 등장인물의 취향과 취미를 통해 옛 정서를 불어 넣는다. 앙상하고 긴 팔다리를 가진 괴생명체는 기묘한 이야기 속 괴물 ‘데모고르곤’을, 이들의 서식지는 ‘뒤집힌 세계’와 얼핏 겹쳐 보인다. 이 작품이 ‘시니어 버전 기묘한 이야기’라는 별칭을 얻은 이유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실버타운'의 주인공 샘(가운데)과 친구들. 넷플릭스 제공

괴물과 맞서는 등장인물들의 오합지졸 케미스트리도 빼닮았다. 더퍼 형제는 “더 실버타운의 주인공들은 기묘한 이야기의 10대 아이들보다 나이는 좀 더 많지만 똑같이 사랑스러운 괴짜들”이라고 강조했다. 8화 마지막 장면에서 욕실 안 거울에 비친 샘의 모습이 TV 화면의 잡음처럼 깜빡거리며 왜곡되는 장면 역시 ‘기묘한 이야기’의 오마주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1 결말 때 뒤집힌 세계에 다녀온 윌(노아 슈나프)이 민달팽이를 토해낸 것처럼, 신비한 장소에 다녀온 모험 이후 샘에게도 모종의 후유증이 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 작가 겸 제작자인 제프리 애디스의 설명이다.

시리즈 전반에 걸쳐 흘러 나오는 1970년대 올드팝도 더퍼 형제스러운 요소다. ‘기묘한 이야기’ 새 시즌이 나올 때마다 드라마에 수록된 올드팝이 빌보드 차트에 다시 진입하는 ‘역주행’이 벌어졌는데, 이번 작품에선 데이비드 보위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명곡들이 그런 기록을 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프닝엔 황금기를 노래하는 데이비드 보위의 ‘골든 이어스(Golden Years)’, 샘이 죽은 아내와 마지막 춤을 출 때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선더 로드(Thunder Road)’, 엔딩에선 다음 모험을 기대하게 하는 ‘본 투 런(Born to Run)’을 들을 수 있다.

더 실버타운
장르: 드라마, 어드벤처, 미스터리 스릴러, SF
제작: 제프리 애디스, 윌 매튜스
출연: 알프레드 몰리나, 지나 데이비스, 알프리 우다드 등
구성: 8부작
로튼토마토 지수: 96%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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