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엄마인데 DNA는 달라… 법정 뒤흔든 ‘인간 키메라’
[이영완의 딥사이언스]
한 몸에 서로 다른 유전자
‘인간 키메라’란 무엇인가

중국에서 한 여성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 당국은 부검 과정에서 뜻밖의 단서를 찾았다. 피해자의 몸에서 남성에게만 있는 Y염색체가 나온 것이다. 처음에는 남성 용의자의 세포가 피해자 몸에 남은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Y염색체는 외부에서 묻은 흔적이 아니라 피해자 자신의 세포 안에 있었다.
올 초 법과학 국제 학술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피해자는 죽기 전까지 완전한 여성으로 살았다. 생전 성별이 모호했던 것도 아니고, 아들까지 낳았다. 그런데 머리카락은 남성의 성염색체인 XY를 갖고 있었다. 신장에서는 여성의 XX 세포와 남성의 XY 세포가 비슷한 비율로 나왔다. 한 사람의 몸 안에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유전자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사람을 ‘인간 키메라’라고 부른다.
키메라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인 존재다. 1830년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지방 오툉에서 거대한 로마 시대 모자이크가 발견됐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를 탄 벨레로폰이 창으로 키메라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신화 속 괴물의 이름은 오늘날 한 몸에 둘 이상의 유전자를 가진 생명체를 뜻하는 과학 용어가 됐다.

법정에서 찾은 쌍둥이의 흔적
염색체는 유전 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이 히스톤이라는 단백질에 감겨 응축된 구조다. 현미경으로 세포핵 안의 구조를 관찰할 때 염색약에 잘 물든다고 해서 염색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인간 세포에는 23쌍의 염색체가 있다. 22쌍은 남녀 모두 가진 상염색체이고, 나머지 한 쌍은 성염색체다. 여성은 XX, 남성은 XY 성염색체를 갖는다. 중국 여성의 몸에서는 XX와 XY가 함께 확인됐다.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았지만, 몸 일부는 유전적으로 남성이었던 셈이다.

과학자들은 이 여성이 수정 초기부터 키메라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난자 하나에 정자 두 개가 들어가면 염색체가 세 벌인 삼배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보통 이런 배아는 정상적으로 자라기 어렵지만, 초기 발달 과정에서 염색체가 다시 나뉘면서 일부 세포는 XX, 일부 세포는 XY를 갖는 방식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번 사례에서 XX 세포와 XY 세포가 같은 X염색체를 공유했다는 점은 두 세포가 같은 난자에서 유래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인간 키메라는 법정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미국의 리디아 페어차일드 사건이다. 2002년 워싱턴주에 살던 26세 여성 페어차일드는 별거 중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이와 곧 태어날 셋째 아이에 대한 양육비 지원을 신청했다. 복지 당국은 신원 확인을 위해 엄마와 아이들의 입안에 면봉을 문질러 DNA를 채취했다. 검사 결과 아이들의 아빠는 남편이 맞았지만, 엄마는 페어차일드가 아닌 것으로 나왔다.
페어차일드는 순식간에 양육비 사기범으로 몰렸다. 페어차일드는 두 아이를 임신한 모습과 아이들이 자라면서 찍은 사진들을 제출했지만, DNA 검사 결과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법원은 셋째 아이 출산 현장에 직원까지 보냈다. 직원은 페어차일드가 직접 아이를 낳는 장면을 확인했고, 출산 직후 혈액도 채취했다. 그런데 셋째 역시 DNA 검사에서는 페어차일드의 친자가 아닌 것으로 나왔다.
사건의 반전은 변호사가 그해 비슷한 사례를 소개한 의학 논문을 찾아내면서 시작됐다. 카렌 키건이라는 여성도 자녀에게 신장을 이식받기 위해 DNA 검사를 했다가 유전적으로 아이들의 엄마가 아닌 것으로 나왔다. 연구진은 키건이 태아 시절 죽은 이란성 쌍둥이의 세포를 흡수했고, 그 쌍둥이의 유전자가 남아 자녀에게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페어차일드도 키건과 같은 사례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다시 DNA 검사가 이뤄졌다. 이번에는 볼 안쪽뿐 아니라 혈액, 피부, 머리카락, 자궁경부까지 세포를 채취했다. 검사 결과 혈액과 피부 등에서는 아이들과 맞지 않는 DNA가 나왔지만, 자궁경부에서는 아이들과 연결되는 또 다른 DNA가 확인됐다. 페어차일드의 몸 안에는 태아 시절 사라진 이란성 쌍둥이 자매의 유전자가 남아 있었다.
결국 페어차일드는 아이들을 낳은 생물학적 어머니였지만, DNA로는 아이들의 ‘이모’였다. 그의 난소 일부가 사라진 쌍둥이 자매의 유전자를 갖고 있었고, 그 유전자가 아이들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페어차일드 자신의 DNA는 아이들에게 가지 않은 것이다. 법원은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사건을 기각했다. DNA는 강력한 증거이지만, 인간 키메라는 그 증거가 항상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어머니 뇌에 남은 자식의 세포
인간 키메라가 처음 의학 논문에 등장한 것은 1953년 ‘맥 부인’ 사례였다. 헌혈 과정에서 A형과 O형이라는 두 가지 혈액형을 가진 사실이 확인됐다. 한 혈액형은 맥 부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생후 3개월 만에 숨진 쌍둥이 남동생의 흔적이었다. 페어차일드처럼 자궁 안에서 쌍둥이 DNA를 흡수한 경우는 아니란 말이다. 과학자들은 태아 시절 어머니 자궁 안에서 쌍둥이끼리 혈액 세포가 오가면서 두 혈액형이 함께 남았다고 설명했다.
넓게 보면 인간은 누구나 조금씩 키메라일 수 있다. 임신 중에는 태아의 세포가 어머니 몸으로 이동하고, 어머니의 세포도 태아에게 전달된다. 이를 미세키메라증이라고 한다. 2012년 미국 워싱턴대 의대 연구진은 여성 59명의 뇌를 부검해 37명에게서 남성 Y염색체를 가진 세포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진은 이 세포가 여성이 낳은 아들에게서 온 것으로 해석했다. 어머니의 몸속에 자녀의 세포가 평생 남아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늘 어머니가 내 머릿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면, 어쩌면 어머니의 몸속에 내 일부가 존재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키메라증은 앞으로 더 자주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체외수정 시술이 늘면서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배아를 이식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러 배아가 같은 자궁에서 자라면 이론적으로 세포가 섞이거나 한 배아가 다른 배아를 흡수할 가능성도 커진다.
물론 대부분의 키메라는 자신이 키메라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간다.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모델인 테일러 뮬은 2017년 TV 토크쇼에 출연해 자신이 인간 키메라라고 밝혔다. 그는 키메라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공개했다. 그의 배는 좌우 피부색이 달랐다. 한쪽은 더 붉게 보였다. 뮬은 태아 시절 흡수한 쌍둥이의 DNA 때문에 면역체계가 자기 몸 일부를 외부 조직처럼 공격하는 자가면역반응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장기 이식의 희망이 된 키메라 배아
키메라는 인간 유전자의 복잡성과 DNA 수사의 맹점을 드러냈다. 앞으로는 장기 부족 문제를 풀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이식용 장기를 만들기 위해 인간과 동물의 세포를 결합한 키메라 배아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중국 연구진은 지난해 6월 국제줄기세포학회에서 인간 심장 세포를 가진 돼지 키메라 배아가 21일 동안 생존했다고 밝혔다.
돼지는 장기 크기와 형태가 사람과 비슷해 수십 년 전부터 이식용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아무리 비슷해도 돼지 장기라서 사람 몸에 들어가면 면역 거부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돼지 몸에서 인간 장기를 키우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인간 피부 세포를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로 역분화시켰다. iPS세포는 인체의 모든 세포로 자랄 수 있는 원시세포이지만,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난자나 수정란을 파괴하지 않고도 환자 자신의 세포로 만들 수 있다. 연구진은 돼지 배아에서 심장을 자라게 하는 유전자 두 개를 없애고 인간 iPS세포를 주입했다. 키메라 배아가 대리모 돼지의 자궁에서 자라면 다른 장기는 다 돼지 것이지만, 심장은 인간의 특성을 갖게 된다.
동물실험에서는 이미 키메라 배아를 이용한 장기 이식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2017년 미국 스탠퍼드대 나카우치 히로마쓰 교수 연구진은 집쥐 몸에서 생쥐의 췌장을 자라게 한 뒤 이를 당뇨병에 걸린 생쥐에게 이식했다. 이식받은 생쥐의 당뇨병은 치료됐다. 다른 동물의 몸을 이용해 필요한 장기를 만드는 길이 열린 것이다. 신화 속 키메라는 영웅 탄생을 위한 희생 제물이 됐다. 이제 그 자신이 질병을 치료하는 영웅으로 변신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청래 “미우나 고우나 민주당… 호남에 효도하는 심정으로 정치하겠다”
- ‘만취 상태로’… 상점 입구에 불 지른 70대 체포
- 멀티골에도 차분한 손흥민 “지금이 다가 아냐... 더 큰 무대가 기다려”
- 삼전·하이닉스 임원들, 자사주 수익률 ‘대박’…400% 넘기도
- 4월 서울 찾은 외국인 관광객 156만명…1조1500억원 썼다
- 강원 강릉에 올해 첫 열대야...작년 보다 19일 빨라
- [조수석에서] “나 좀 추운데” 한마디에 운전석만 1℃ 올려…‘AI 비서’ 탑재한 신형 그랜저 타
- “CPA 합격 후에도 백수”...‘미지정 회계사’ 동앗줄, 국회·법원·국민연금도 문 연다
- 홍명보 “평가전의 의미 찾았다... 손흥민·조규성 멀티골 반가워"
- 7월부터 24시간 원-달러 외환거래 가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