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같은 ‘군체’의 삶, 과연 행복할까

정덕현 문화평론가 2026. 5. 3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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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정덕현의 컬처톡톡]
주목받는 K좀비물 신작
‘완전 소통’은 도약일까
영화 ‘군체’의 한 장면. 이 영화는 지식을 데이터화해 네트워크로 묶어냄으로써 마치 인간처럼 소통하는 인공지능(AI)이 불러올 디스토피아를 그려냈다. /쇼박스

1991년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읽으면서 이 생명체의 ‘완전 소통’에 매료된 적이 있다. 인간은 언어 같은 매개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기 때문에 완전 소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오해와 불신 같은 것들이 의외의 사건들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개미는 더듬이를 서로 연결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완전히 전달한다. 개미가 저마다의 역할이 딱딱 나뉘어 일사불란한 집단생활이 가능한 이유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의 새 영화 ‘군체’를 보면서 완전 소통을 통한 집단적인 삶이 과연 부럽기만 한 일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군체’란 조직화된 방식으로 생활하고 서로 밀접한 상호작용을 하는 한 종의 생물집단을 뜻한다. 충격적인 예고편만으로도 이미 알려진 것처럼, ‘군체’는 진화된 형태의 좀비를 소재로 하고 있다. 기존 좀비들이 무섭게 몰려다니긴 하지만 지능이나 성장과는 거리가 멀어 어딘가 바보스럽게 느껴졌다면, ‘군체’의 좀비들은 이 한계를 뛰어넘는다. “저놈들 처음엔 네 발로 걷고, 그러다가 두 발로 걷고 진화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극 중 생명공학자 권세정(전지현)이 하는 말처럼 이들은 순식간에 성장과 진화를 거듭한다. 점액질 같은 것들을 매개로 습득한 정보를 집단이 공유하는 방식으로 네 발로 걷던 그들은 직립보행을 하고 사람 형상의 사진과 진짜 사람을 구별하며 급기야는 말까지 따라 하는 진화를 이룬다. 단 하루 만에 수천만 년에 걸쳐 인류가 해온 진화를 이뤘다는 사실은 실로 이 집단 감염 사태를 야기한 미치광이 연구자 서영철(구교환)의 말을 실감 나게 만든다. “인간을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는 거야.”

하지만 그건 과연 도약이고 진화일까. 개미 같은 완전 소통을 통한 ‘집단지성’의 놀라운 결과를 보이지만, 이렇게 한 덩어리로 연결된 군체는 서영철 같은 한 명의 지배자에 의해 보다 쉽게 조종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서영철은 이제 군체를 앞세워 생존자들을 제거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 모든 인류를 군체로 만들려 한다. 그 꼭대기 위에 서려 한다. 진화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그들은 자율의지를 잃어버린 좀비들이고, 그 진화는 오히려 그들을 더 쉽게 이용하고 조종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에서 사실상 ‘퇴화’다.

좀비 장르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군체’도 이를 통한 세상에 대한 은유가 담겨 있다. 영화 ‘부산행’에서 그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는 열차에서 벌어지는 좀비와의 사투를 통해 압축 성장의 속도감 위에 자본의 폭주가 야기한 폭력과 비인간화를 꼬집었던 연상호 감독은, ‘군체’에서는 지식을 데이터화해 네트워크로 묶어냄으로써 마치 인간처럼 소통하는 인공지능(AI)이 불러올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다. 인간의 지식을 데이터로 축적해 뭐든 물어보면 순식간에 정보와 해법을 알려주는 AI 기술의 발전은 실제로 현 인류를 다음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신세계를 꿈꾸게 했다. 하지만 사실상 그 데이터화된 지식들은 우리 개개인이 갖고 있던 것들을 가져가 만들어낸 것이고, 그걸 활용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각자의 두뇌를 쓰는 일을 하지 않게 된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 세대들까지 기억력이 떨어져, 대화를 할 때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가며 이야기하는 광경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군체’가 진화인 척 보여주는 사실상 퇴화의 디스토피아와 다를 게 무엇인가.

좀비라는 존재가 공포를 주는 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죽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비물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이라는 제목에 나와 있듯이, 이들은 움직이곤 있지만 사실상 시체들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필두로 ‘킹덤’ ‘지금 우리 학교는’ 같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른바 ‘K좀비’는 이 고전적인 좀비 장르에 한국적인 색깔을 넣었다. 한국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는 좀비라는 자율 의지 없이 떼로 몰려다니는 존재로 재해석됐다. 1970~1980년대 개발 시대의 압축 성장을 이끌어낸 집단주의 문화가 그것이다. 아침 6시 마을에 울려 퍼지는 새마을운동 노래에 맞춰 모두가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6시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모두가 제자리에 멈춰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그 시절의 광경은, 저 ‘군체’의 무리들이 떼로 정보를 공유할 때 모두 멈춰 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련을 일으키는 광경과 너무나 닮아 있다. 그렇게 군체 같던 시대의 꼭대기에는 서영철 같은 권력자가 서 있어, 그 빠른 성장만큼 아픈 상처와 후유증들이 남았다.

물론 민주화 과정을 거쳐 이제는 비판적인 지성의 시대가 열린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 사회의 이 집단적인 쏠림 문화는 여전히 관성으로 존재한다. ‘군체’가 은유하는 AI만 해도, 너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 너도나도 이를 쓰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은 불안 공포를 만들고 있지 않은가. 최근에는 주식 이야기가 그 대열에 올랐다. 모이면 다들 주식 이야기다. 단 한 번도 주식 투자란 걸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무슨 이야기인지조차 잘 모르지만, 반도체주로 몇백, 몇천만원을 벌었네 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절로 마음이 초조해지는 주식시장 ‘개미들’의 마음이 된다. 나만 바깥으로 밀려나 있는 듯한 공포감마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런 걸 이른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자신만 세상의 흐름을 놓치며 소외되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의미한단다.

무력에 의해 개미의 삶을 종용받던 시대는 지났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의 욕망과 생계의 공포가 스스로를 개미의 삶으로 밀어 넣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공포가 야기하는 군체의 삶은 과연 행복할까.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이 살아가는 사회보다 다양한 다른 생각들과 삶이 공존하는 사회가 더 건강하고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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